[사설]빨리 최악에 대비하자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6면

엉망진창의 경제를 놓아두고 국가전체의 지도력이 공백상태에 빠졌다.

이대로 가면 국제통화기금 (IMF)에 긴급 구제금융을 신청해야 할 사태가 뻔히 보이는데도 대통령 이하 경제각료 누구 하나 책임있는 해결방향을 제시하지 않고 있다.

국회는 국회대로 당리당략과 대선게임에 휘말려 국가 중대사를 조령모개 (朝令暮改) 식으로 바꾸고 있다.

금융위기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물론이고 위기를 틈타 재정경제원이나 한은 (韓銀) , 그리고 국회가 모두 기득권 다툼에만 매달려 있다.

그러다 보니 외국투자자나 금융기관에는 한국이라는 나라는 스스로의 힘으로는 위기탈출을 위한 금융개혁을 시도할 의지도, 능력도 없는 것으로 비쳐지고 있다.

외국인이 다투어 한국에서 손을 빼는데도 국내기업과 금융기관의 부실정리는 진척이 안되고 금융시장은 거의 기능을 상실해가고 있다.

외환시장은 연일 장 (場) 이 열리자마자 환율이 상한가까지 치솟아 거래가 중단되고 있다.

그런가 하면 환율급등이 뻔히 예상되니 외국인의 철수가 가중되고 주가도 하루가 멀게 빠지고 있다.

종금사가 긴급한 외화자금의 결제를 위해 원화로 달러를 매입하다 보니 달러 가수요는 늘어 환율은 더 오르고 금리도 덩달아 오르고 있다.

이렇게 하루가 다르게 급변하고 한치 앞을 못볼 정도의 오리무중 (五里霧中) 의 경제에서 어떻게 기업을 하고 장사를 할 수 있을지 갑갑하기만 하다.

IMF에 구제금융을 신청하는 것은 우리 모두가 달갑지않게 생각하는 방안임에 틀림없다.

그 경우 극단적인 표현을 하자면 '경제신탁통치' 가 불가피해 당분간 IMF의 요구사항을 충족시키자면 거시경제의 운용에 상당한 제약이 있을 것이다.

불과 몇달 전만 해도 정부나 대선후보나 얼마 안 있으면 선진국으로 발전한다는 장밋빛 환상을 국민에게 주었는데 이런 청천벽력이 어디 있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다.

그렇더라도 IMF의 긴급융자가 없으면 더 큰 낭패를 당할 것이라고 판단되면 주저하지 말고 당장 IMF에 도움을 청해야 한다.

그러자면 대통령을 위시한 정부가 다음 몇가지 사항을 점검해야 한다고 본다.

첫째, 기왕 IMF에 협조를 구할 수밖에 없다면 가급적 우리에게 여력이 있을 때 우리 스스로 만든 금융위기의 해결방안과 금융개혁안을 들고 가야지 조금이라도 유리한 조건으로 융자를 받을 수 있다는 점이다.

불필요하게 갈듯말듯 연막을 치거나 결국 그나마 얼마되지 않는 보유외환을 전부 소진해 그야말로 무방비상태에서 항복하는 것보다 낫다.

둘째, IMF에 가려면 공개적으로 명분을 갖고 가야 한다.

결국 외국 투자자들이 어떻게 한국경제를 평가하느냐가 단기적인 외환위기에서 벗어나는 관건이므로 투명하게 우리의 의도를 밝힐 필요가 있다.

셋째, 마지막으로 한은과 산은을 통한 직접 해외차입에 최선을 다하는 동시에 미국의 금융 지도자들에게 공식적 혹은 비공식적으로든 모든 채널을 동원해 협조를 구하는 노력을 해야 한다.

IMF의 도움을 청한다는 어려운 결정을 하자면 어떻든 현재의 경제팀으로는 힘들어 보인다.

남은 기간이나마 일을 매듭지을 수 있는 팀으로 교체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러나 팀을 바꾼다는 것도 끝까지 대통령이 국가경제에 대해 책임을 진다는 각오로 뒤를 밀어주는 환경에서라야 가능하다.

그러자면 대통령은 현재 상황을 일단 비상사태로 선언하고 대선후보를 비롯한 지도자와 협의해 경제위기 극복문제에 관한한 당쟁을 중지하고 중지를 모아 필요한 법제도 정비와 구조조정의 실천에 동참해 달라고 손을 내밀어야 한다.

국민과 기업에게도 진솔하게 어려움을 설명하고 재정을 통해 금융기관의 부실채권을 덜어주고 시장에서 인수.합병이 이뤄지도록 혁신적으로 규제를 없애는 등 가시적인 개혁조치를 당장 발표해야 한다.

내일이면 이미 늦는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