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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명의 외국인 유학생·교수가 다녀보니… (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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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중앙 외국인의 눈에 비친 한국의 대학·대학생은 어떤 모습일까? <월간중앙>이 수도권 소재 5개 대학 현장에서 외국인 학생과 교수를 만났다. 어처구니없는 장면의 연속. 놀란 그들의 시선을 담았다.

미국인 E교수
“대학을 왜 왔는지 모르는 나라”

[대학이 없다] 시리즈

같은 날 오후 4시께. 경기도 소재 D대학. 열정적 눈빛으로 수업을 진행하는 미국인 E교수(31·영어전용강좌)의 강의실에 조심스레 들어갔다. 맨 뒷자리에 앉아 수업을 듣는 학생들을 유심히 관찰했다. 빈 자리가 유독 많다. 수업이 모두 끝난 뒤 E교수에게 다가갔다.

“빈 자리가 많네요? 소수의 학생과 수업하시나 봐요?”

“강의를 듣는 학생도 많지 않지만, 결석하는 학생도 있고 수업 도중에 나가는 학생도 몇 명 있다. 그런 경우 내가 문자를 보내거나 전화를 한다. 그러나 그들은 전화도 받지 않고 다시 연락도 주지도 않는다. 결석하거나 나가서는 애인과 데이트하거나 술을 마시거나 놀러 다닐 뿐이다. 학생들이 대학 1학년이라는 시간을 친구들과 놀거나 술 마시는 일로 모두 보내버린다. 물론 스트레스를 푸는 것은 좋다. 하지만 학업보다 노는 것을 우선시해서는 안 된다.”

E교수와 함께 학교에서 나와 한 건물 앞을 지나가는데 책가방을 멘 고등학생들이 줄지어 학원차에 오르는 모습이 보였다. 그들을 보며 E교수가 말을 꺼냈다.

“한국 학생들은 미국 학생들에 비해 매우 근면하다. 미국 학생들은 하루에 6시간 정도 공부할 뿐이지만 한국 학생들은 하루에 13~14시간 공부한다. 하지만 부럽지 않다. 오히려 안쓰럽다. 한국은 학벌문제가 여전히 심각하다. 예전에 외국인들을 위한 행사에 초대받아 갔을 때 자원봉사하던 한국 대학생들을 본 적이 있다. 그런데 그들 학생은 봉사자 중 몇 명을 무시하는 태도를 보였다. 알고 보니 학벌에서 차이가 난다고 하더라. 그런 모습을 보니 화가 났다.”

“미국에서는 학벌문제가 심하지 않은가?”

“미국에도 학벌문제가 있기는 하다. 하지만 한국만큼 심하지 않다. 미국은 20~30%만 열심히 공부하고, 소위 말하는 ‘명문학교’에 들어간다. 나머지 70~80%는 파티나 즐기고 여행을 다닐 뿐, 이에 개의치 않는다.”

E교수로부터 한국의 입시제도와 학생들에 대해 좀 더 자세한 생각을 듣기 위해 한 카페로 들어갔다. 주위를 둘러보니 4~5명의 대학생이 모여 두런두런 이야기하고 있다. 표정이 자못 진지하다. 언뜻 취업이니, 토익이니 하는 말이 들렸다. E교수가 그 모습을 유심히 바라보더니 잠시 생각에 잠긴다. 그러다 이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다.

“미국 학생들은 진로를 언제 정하는가?”

“고등학교 때 정한다. 미국의 시스템은 한국과 반대다. 한국의 고등학교 3년은 너무 어렵고 힘들다. 미국은 그렇지 않다. 미국의 고등학교는 4년이다. 3년간 놀고 4학년 때 6개의 수업을 듣는데, 그 중 하나만 통과하면 된다. 하지만 그 자유로운 시간에 미국 학생들은 많은 생각을 한다. 내가 무엇을 하고 살아야 할지, 앞으로 무슨 공부를 할지, 대학에 가서 무슨 전공을 할지에 대한 것들 말이다. 하지만 한국은 고등학교 3년 동안 너무 바쁘다. 마지막인 3학년 때는 자신의 전공에 대해 생각할 시간이 없다. 어쩔 수 없이 대학에 와서 전공을 정한다. 전공에 대해 생각하는 데는 매우 긴 시간이 필요하다. 자신이 무엇을 위해 대학에 가는지 알 필요가 있다.”

학벌을 지나치게 중시하는 문화가 야기한 문제라는 것이 그의 분석이다. 결국 자신이 무엇을 원하는지도 모른 채 대학에 오는 사람이 많아 보인다는 것. 일단 목적도 없이 무조건 자신이 원하는 대학에만 입학하면 그 해방감에 풀어져 노는 데만 치중한다는 것이 E교수의 눈에 비친 한국 대학생들의 모습이었다.

인터뷰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그의 마지막 말이 자꾸만 귓가를 맴돈다.
“한국을 좋아하지만 자녀를 낳으면 절대 한국에서 교육시키고 싶지 않다.”

캐나다 유학생 B씨
“부어라! 마셔라! 장렬하게 전사하라!”

같은 날 저녁 어스름. 서울 소재 E대학을 찾았다. 학교 주변 거리에는 많은 학생들이 한량처럼 어슬렁거리고 있었다. 대학 정문에서 캐나다에서 온 여학생 B씨(21·유학생)가 누군가 기다리고 있었다. 같은 과 친구·선배들과 함께 술을 마시러 갈 것이라고 걱정스러운 얼굴로 말한다. 삼삼오오 무리를 지어 가는 학생들의 틈에 끼어 따라갔다.

잠시 후 취기가 오른 사람들의 목소리로 어수선한 한 술집으로 들어섰다. 자리를 잡자마자 학생들은 게임을 시작한다. 분위기가 한창 무르익었을 무렵 한 학생이 벌떡 일어난다. 벌겋게 상기된 얼굴로 앞에 있는 큰 맥주잔에 맥주와 소주를 마구 부어 섞는다. 옆자리에 앉은 후배에게 자신이 선배라는 것을 상기시키더니 협박 아닌 협박을 하며 벌칙으로 술을 권한다.

긴장한 얼굴로 눈치를 살피며 조용하게 앉아 있는 B씨에게 “이렇게 술 마시고 게임 하는 것이 힘들지 않느냐?”고 물었다. B씨는 귓속말로 “한국인들은 술을 너무 좋아해 힘들다. ‘OT(오리엔테이션)’ 때 처음으로 한국의 술문화를 겪었는데, 너무 힘들었다. 한국말이 서툴러 게임도 너무 어렵다”고 말했다.

실내를 둘러보니 다소 선정적 장면을 연출하는 학생들도 눈에 띈다. 같은 자리에 있던 학생들에게 “이렇게 여럿이 모여 술을 마시는 이유가 무엇이냐”고 물으니 모두 멋쩍은 미소를 지으며 말을 흐린다. 그 중 한 학생이 “이렇게 모여 술을 마셔야 친해진다. 평소에는 친해질 기회가 거의 없다. 수업시간 때조차 친해지기 힘들다”고 말했다.

B씨가 다시 조용하게 귓속말을 건넨다. “선배가 부르면 싫어도 나와야 하는 분위기도 있다”는 것. 이런 이유로 외국 학생들까지 한국문화에 적응하고 친구를 사귀기 위해 억지로 참석하기도 한다. 갑자기 한 학생의 휴대전화가 울린다. 힐끗 넘겨다본 그 학생의 휴대전화 액정에 ‘엄마’라는 두 글자가 찍혀있다.

그 학생은 검지 손가락을 입술에 대며 주변 사람들에게 조용히 해달라고 부탁하고는 전화를 받는다. “지금 뭐하고 있어” 하는 목소리가 전화기 너머로 들린다.

“친구들과 저녁 먹고 있어. 밥 먹으면 도서관 가서 공부할 거야.”

몇 마디 대화가 더 오가다 그 학생의 어머니는 “밥은 꼭 챙겨먹고 다녀”라는 말을 남기고 전화를 끊는다. 전화를 끊자마자 학생은 다시 술잔을 집어 든다. 대학생들은 따뜻하고 푸짐한 밥 대신 알코올과 얼큰한 부대찌개로 위를 채운다. 머리는 학문이나 지식 대신 많은 사람의 이름과 얼굴과 전화번호로 채운다.

“이렇게 밤 늦게까지 마시면 내일 수업시간에 피곤하지 않느냐”고 물었다. 한결같은 대답이 돌아왔다.

“내일 수업시간은 외국인 교수 수업이어서 괜찮다.”
“수업시간에 좀 졸아도 괜찮다.”
“내일 수업 안 들어가지 뭐. 그냥 밤새워 놀자!”

B씨는 “나는 수업을 빠지면 따라가기 힘들어서 빠지면 안 되는데, 혼자 집에 간다고 빠져 나가기도 눈치가 보인다”며 곤란한 표정을 짓는다. 양해를 구하고 B씨와 함께 자리에서 일어났다. 오후 9시가 조금 넘은 시각이었지만 술집 주변에는 벌써 술에 거나하게 취해 비틀거리는 학생들이 여기저기서 눈에 띄었다. 누군가의 토하는 소리도 들려왔다.

글■박미숙 월간중앙 기자 [splanet88@joongang.co.kr] / 전유나 월간중앙 인턴기자 [jangwh_35@naver.com]

[월간중앙 4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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