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명의 외국인 유학생·교수가 다녀보니… (상)

중앙일보

입력 2009.04.02 10:57

업데이트 2009.04.02 11:27

월간중앙 외국인의 눈에 비친 한국의 대학·대학생은 어떤 모습일까? <월간중앙>이 수도권 소재 5개 대학 현장에서 외국인 학생과 교수를 만났다. 어처구니없는 장면의 연속. 놀란 그들의 시선을 담았다.

중국인 유학생 C씨

“건물 짓기 전에 훌륭한 교수 데려오는 데 더 노력해야”

[대학이 없다] 시리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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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로는 외부의 시선이 더 정확하다. 한국 대학에 다니는 외국인들은 상상하지 못했던 황당한 경험을 겪기도 한다.
“제가 어제 맡겼던 <고전국어> 교재는 다 복사됐나요?”
“네, 여기 있습니다. 7,000원입니다.”

대학교 내 도처에서 쉽게 볼 수 있는 복사실 풍경이다. 지난 3월5일 오전 10시께 서울 소재 A대학. 중국에서 온 교환학생 C씨(22·여)를 도서관 앞에서 만났다. 강의에 들어가기 전, 복사한 책을 찾으러 가야 한다며 발걸음을 바쁘게 옮긴다.

복사실에 들어서니 여러 대의 복사기가 쉴 새 없이 흰 종이를 토해낸다. C씨에게 “불법복제라는 사실을 아느냐”고 물었다. “대부분의 학생이 교재를 복사해 제본하고, 교수들도 맡기는 경우가 많아 불법인 줄 몰랐다”며 깜짝 놀란다.

좁은 복사실 안은 C씨 외에도 교재를 복사하거나 미리 부탁한 복사본을 찾으러 들른 학생들로 북새통이다. 어느 누구도 불법행위에 대해 죄책감을 느끼지 않는 표정이다. 다시 C씨에게 왜 교재를 복사하는지 물었다.

“사야 하는 책은 많은데, 책값은 엄청 비싸다. 그런데 도서관에는 전공 서적이 너무 부족해 대출하지 못하면 사야 한다. 미국 대학에 다니는 친구는 ‘우리 대학에는 도서관에 과목별 전공서적이 많이 구비돼 있어 꼭 사야 할 책만 구입하고, 아니면 도서관에서 대출하면 된다’고 하더라. 하지만 한국에서는 진도를 끝까지 안 나가는데도 무조건 책을 사야 한다. 너무 아깝다.”

그는 조금 화난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물론 전공 책을 사는 것은 학생이라면 당연하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대학생들의 불만은 학교에서 많은 등록금을 받으면서 정말 학생들이 필요로 하는 것은 제공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게다가 교수들은 자신이 쓴 책을 교재로 삼는 경우가 많아 꼭 사라고 강요하기도 한다.”

모두 사기에는 아깝고 돈도 많이 들어 대부분의 학생이 복사를 한다는 말이다. 타지에서 유학생활을 하는 외국 대학생들. 그들이 보는 한국 대학의 등록금 부담은 어느 정도일까? “한국에서 대학교에 다니려면 돈이 많이 드느냐”는 질문에 C씨는 이내 불만을 털어 놓는다.

“학교가 등록금을 받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받은 만큼 학생들에게 돌려주지 않는 것 같다. 내가 낸 만큼 돌려받는다면 대출받아서라도 비싼 등록금을 지불할 의향이 있다. 그런데 현실은 그렇지 않다. 500만 원을 내면 시간당 십 몇 만 원이 되는 셈인데 그 정도를 얻지 못한다. 등록금이 싸고 비싸고를 떠나 그만큼의 가치가 없다는 것이다.”

“왜 가치가 없다고 생각하느냐”고 재차 묻자 기다렸다는 듯 입을 열었다.

“한국의 대학들은 겉모습을 중요하게 생각해 시설투자에만 돈을 쓰는 것 같다. 그것 외에는 신경 쓰는 것이 없다. 보통 교수 1명에 학생 70~80명이 수업을 듣는다. 교수가 적으니 수업도 적고, 학생들은 들어야 하는 수업을 신청하지 못하는 경우도 많다. 내실이 없다는 말이다. 대학은 건물을 짓거나 엘리베이터를 설치하기 전에 훌륭한 교수를 데려오는 노력을 더 기울여야 한다.”

한국 대학 비판에 열을 올리던 C씨가 다음 수업 장소가 어디인지 모르겠다며 당황한다. 급하게 컴퓨터를 찾아 다시 도서관으로 들어가 한참 홈페이지 여기저기를 살펴보다 결국 옆의 학생에게 도움을 청한다.

“처음에 수강신청할 때 많이 힘들었다. 처음 해보는 것이기도 하고, 익숙하지 않아 듣고 싶은 수업, 들어야 할 수업을 신청하지 못한 것도 있다. 어디에 물어봐야 할지, 또 이런 문제에 대한 불만이 있어도 어디에 말해야 할지 잘 모르겠다. 학사 안내도 잘 모르겠다. 한국 대학들마다 국제화한다고 말은 많이 하는데, 제대로 준비도 안 된 영어전용수업만 잔뜩 늘리지 말고 외국 학생들도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학사 안내나 강의실 위치 같은 것도 글로벌 시대에 맞게 준비해놨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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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대학들이 너도 나도 늘리고 있는 영어전용수업에 대해서도 C씨는 할 말이 많다고 했다. C씨는 “글로벌 시대에 맞게 영어전용수업이 늘어나는 것은 좋지만 외국 학생 눈으로도 허울뿐이라는 생각을 감출 수 없다”고 한다.

영어를 모국어로 사용하는 외국인 교수가 가르치면 좋겠지만 교수 인력이 턱없이 부족하다 보니 한국인 교수가 영어전용 수업을 맡는 것이 문제라는 지적이다.

“한국인 교수는 얼떨결에 전공수업까지 영어로 진행해야 한다. 이럴 때는 교수도 힘들어하는 기색이 역력하고, 강의를 듣는 학생들도 어색하다. 그러다 시간이 지나면 영어보다 한국어로 더 많이 진행하는데, 글로벌 대학이라는 말이 무색하다.”

인도네시아인 유학생 A씨

“한국이 동방예의지국? 오 노(Oh, No)!!!”

지난 3월4일 오전 9시50분. 서울 소재 B대학교의 강의실은 고요하다. 인도네시아에서 온 유학생 A씨(23)와 몇 명의 학생이 앉아 있을 뿐이다. 호들갑스러운 목소리가 복도에 울리더니 대학생들이 삼삼오오 들어와 자리를 조금씩 채운다.

“어제 ‘꽃남(드라마 <꽃보다 남자>의 줄임말) 봤어?”
“나 OO랑 저녁 먹었다. 저녁 먹고 영화 보러 갔는데….”
“너 오늘 수업 끝나고 뭐 하니? 나랑 어디 좀 가자.”

어제 저녁에 무엇을 먹었는지, 애인과 어디에 갔다 왔는지, TV에서 무엇을 봤는지, 학교 오는 길의 지하철에서 어떤 일이 있었는지 신나게 주고받는다. 마치 여고생들이 잔뜩 모여 있는 고등학교 자습시간을 연상시킨다. 주위를 둘러보니 어느 새 80명이 넘는 학생이 빽빽하게 자리를 메웠다. 잠시 후 교수가 문을 열고 들어온다.

하지만 학생들은 본체만체 하며 하던 말을 계속 이어나간다. 교수가 미간에 ‘팔(八)’자를 그리며 헛기침을 몇 번 하고서야 시선을 교수에게 돌린다. 교수는 무미건조한 목소리로 차례차례 출석을 부른 후 강의를 시작한다. 교수의 입에서 강의 첫 마디가 나오는 순간 학생들의 ‘예의 없는 행동’이 시작됐다.

책상에 엎드리며 눈을 감는 학생, 휴대전화를 쉴 새 없이 두드리며 문자를 보내는 학생, 소곤소곤 옆에 앉은 친구와 낙서까지 해가며 잡담하는 학생, 화장실 간다는 핑계로 강의실 밖으로 나가버리는 학생…. 복도에서는 지나가는 한 학생이 큰 소리로 누군가를 부른다. 어이없다는 눈빛으로 이 상황을 지켜보던 A씨가 갑자기 일어서더니 복도로 나가 “조용히 해달라”고 말하고 들어온다.

강의실 안의 80여 명 중 수업에 집중하는 학생이 몇이나 될까? 교수도 학생들을 포기한 듯 몇 번 주의를 줄 뿐 무심하게 강의를 이어나간다. 그러다 교수가 한 학생을 지목해 질문을 던졌다. “내가 지금 설명한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순간 강의실에는 정적이 흐른다. 질문을 받은 학생은 애써 눈을 피하며 이 순간이 빨리 지나가기만 기다리는 듯했다.

교수는 다른 학생을 둘러보며 “대답해볼 다른 학생은 없느냐”고 묻는다. 학생들은 서로 눈치만 볼 뿐 침묵한다. 교수의 눈에는 무안함과 함께 실망이 가득하다. A씨는 이런 분위기가 어색하고 불편하기만 하다. 그는 “아무도 대답을 안 하니 나도 대답을 못 하겠다”며 한숨을 쉬었다. 강의가 끝난 후 A씨에게 물었다.

“학생들과 교수님의 이런 모습을 보면 어떤 생각이 드나?” 노기(怒氣)를 띤 A씨의 대답이 돌아왔다. “상상도 할 수 없는 모습이다. 한국은 동방예의지국이라고 들었는데, 실제로 보니 그 말은 잘못된 것 같다. 이런 모습은 수업을 준비해온 교수님에 대한 예의가 아니다. 내가 다녔던 미국의 대학에서는 교수님이 굉장히 엄해 수업시간에 떠들거나 딴 짓 하는 학생은 가차없이 쫓아낸다.”

파키스탄 유학생 D씨

“성적은 교수 마음먹기 나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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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월6일 정오. 경기도 소재 C대학. 파키스탄에서 온 D씨(25·교환학생)와 학생식당에서 마주앉았다. 마침 점심 때여서 식사를 하면서 대화를 나눴다.

“학교에 다니면서 힘든 점은 없나?”

“교수들이 학생들에게 너무 신경을 쓰지 않는다. 내가 외국인이어서 내게만 신경을 쓰지 않는 줄 알았더니 한국 학생들에게도 신경을 잘 안 써주더라. 과제만 내면 그것으로 끝이고, 어떤 도움도 받을 수 없어 우리 스스로 다 해야 한다. 수업에 성의가 없는 것처럼 느껴진다. 한국 대학의 교수와 학생 관계는 우리나라(파키스탄)와 정반대다. 파키스탄에서는 수업에 참여하는 모두가 서로 소통하고 친밀한 관계를 맺는다. 물론 수업을 듣는 인원이 적어 가능한 것일 수 있지만….”

점심 식사를 마치고 강의실로 걸음을 옮겼다. 강의실에는 이미 많은 학생이 들어와 있어 시끌벅적하다.

“수업 듣는 데 불편한 점은 없느냐”고 묻자 D씨 역시 중국인 유학생 C씨처럼 교수가 학생 수에 비해 턱없이 부족한 것이 문제라고 꼬집었다.

“한국은 대학생들이 많은 데 비해 학생을 지도하고 담당하는 교수가 너무 적다. 그러다 보니 교수가 학생들에게 세심하게 신경 써 주지 못한다. 학생들도 문제다. 수업 내용 중 이해가 가지 않는 부분이 있어도 교수를 찾아가지 않는다. 불만이 있으면 고치려고 해야 하는데 학생 스스로 그런 환경을 만든다. 서로 소통하지 않으니 점점 멀어지고, 수업의 질도 나빠질 수밖에 없다.”

D씨는 교수들의 공평하지 못한 편애도 문제라고 덧붙였다. D씨는 “모든 학생을 끝까지 끌고 가려는 것은 좋지만 그 결과 좋지 않은 문화가 생겨버렸다”며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교수들이 성적을 배정하는 실태를 보면 잘 알 수 있다. 성적에 엄격한 외국 대학과 달리 한국은 소위 ‘성적 인플레’(‘성적 인플레이션’ 현상의 줄임 말. 모두에게 점수를 잘 줘 전체 평점이 올라가는 현상)가 만연해 있다.”

그의 설명에 따르면 모든 대학이 다 그렇지는 않겠지만 한국 대학은 외국 대학에 비해 좋은 성적을 받기가 훨씬 수월한 것이 사실이고, 그것이 전체적인 분위기라는 것이다.

“수업에 제대로 참여하지 않아도 B학점을 받고, 한 반의 70~80%가 A 이상의 성적을 받는 일도 비일비재하다. 정말 성실하고 열심히 공부하는 사람에게는 불공평한 일이다. 대부분의 학생이 성적을 잘 받는 것은 열심히 공부하는 학생들의 노력을 무시하는 일이다. 한국 학생들은 자기들끼리 경쟁하는 것이 아니라 전 세계의 학생들과 경쟁한다는 것을 인지해야 한다.”

한창 수업이 진행되고 있는데 한 여학생이 조심스레 문을 열고 들어온다.

“죄송합니다.”
“다음부터는 늦으면 결석처리 할 거야.”

그러고는 수업이 다시 진행된다. 교수는 별로 개의치 않는다는 표정이고, 학생 또한 아무 일도 아니라는 듯 샐쭉한 얼굴로 빈자리에 앉는다. ‘팔이 안으로 굽는 한국문화’. 대학이라고 예외는 아니다. 이는 외국 학생들과 교수들이 가장 이해하지 못할 뿐 아니라 싫어한다고까지 말하는 문화다.

“저렇게 지각을 자주 해도 교수와 친한 학생은 많이 봐준다. 성실하지 못한 점을 제대로 혼내거나 지적하지도 않는다.”
D씨의 목소리에는 짜증이 잔뜩 섞여 있었다.

글■박미숙 월간중앙 기자 [splanet88@joongang.co.kr] / 전유나 월간중앙 인턴기자 [jangwh_35@naver.com]

[월간중앙 4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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