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손민호 기자의 레저 터치] 노란 동백꽃 보셨나요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10면

봄은 여행기자에게 성수기다. 시차를 두고 피어오르는 봄꽃을 따라다니느라 여행기자의 봄은 늘 바쁘다. 올봄엔 의외의 수확이 있었다. 뜻밖의 장소에서 동백나무 군락지를 만났다. 전남 완도군의 작은 섬 장도 안에는 10m 가까이 자란 동백나무가 울창한 숲을 이루고 있었다. 이렇게 큰 동백은 기억이 없어 도감을 뒤져 보니 18m까지 자라는 것도 있단다. 여태 꽃만 보고 나무는 보지 못한 탓이다.

눈으로 보는 동백꽃(下)은 화려하고 강렬하다. 하나 사진으로 담으면 영 밋밋하다. 잎사귀 때문이다. 짙푸른 잎사귀 안에서 외따로 피는 붉은 꽃은 초라하다. 차(茶)나뭇과에 속하는 터라 남도지방에 주로 핀다. 우리나라에서 동백나무 군락지의 북방한계선은 충남 서천의 춘장대로 알려져 있다. 거기서도 키 높은 동백나무는 기억에 없다.

여기서 의문 하나가 불거진다. 김유정 소설에 등장하는 ‘동백꽃’의 정체다. 김유정은 강원도 춘천에서 작품 대부분을 생산했다. 춘천시 신동면 실레마을에 가면 김유정문학촌이 조성돼 있고, 문학촌 안에는 공들여 단장한 선생의 생가가 있다. 이 동네는 기차역으로도 유명하다. 국내에서 유일하게 사람 이름이 붙은 기차역 ‘김유정역’이 예 있다. 김유정문학촌은 24일부터 사흘간 김유정문학제를 진행한다. 시간 되면 꼭 가보시라. 이처럼 흥겨운 문학축제도 드물다. 각설하고, 소설 ‘동백꽃’의 말미를 인용한다.

‘나의 몸뚱이도 겹쳐서 쓰러지며 한창 피어 퍼드러진 노란 동백꽃 속으로 폭 파묻혀 버렸다. 알싸한 그리고 향긋한 그 냄새에 나는 땅이 꺼지는 듯이 온 정신이 고만 아찔하였다.’

어린 나이에 제법 가슴이 설렜던 구절이다. 여기서 주목할 건 두 구절이다. ‘노란 동백꽃’과 ‘알싸한 냄새’. 남도 곳곳에서 조우했던 그 많은 동백 중에서 노란 동백은 한 송이도 없었고, 알싸한 냄새 또한 맡은 적 없다. 그럼 이건 뭘까.

결론부터 말하면 김유정의 동백은 생강나무(上)다. 고기 삶을 때 넣는 생강은 풀이고, 이건 나무다. 생강나무란 이름이 붙은 건 나무 안에서 알싸한 향기가 풍겨서다. 이 나무를 강원도 사람들은 동백나무라 부른다. 붉은 꽃 터뜨리는 동백처럼 생강나무에서도 기름이 나와서다. 동백을 본 적이 없는 강원도에선 생강나무에서 짠 기름으로 머리를 만졌다. 이 생강나무가 요즘 한창 꽃을 피운다. 김유정 생가 뒤란에도 생강나무가 노란 꽃망울을 터뜨렸다. 언뜻 산수유 같다. 어지럽다.

그러면 이미자의 ‘동백아가씨’에 나오는 동백은? 정답은 가사에 나온다. ‘그리움에 지쳐서 울다 지쳐서 꽃잎은 빨갛게 멍이 들었소’. 꽃잎이 빨갛단다. 내친김에 ‘아리랑 목동’의 ‘아주까리 동백꽃’도 알아보자. 아주까리의 다른 이름이 피마자다. 피마자랑 동백은 옛 처녀들 머릿기름으로 유용하게 쓰였던 미용제였고. 그러니까 이미자의 동백과 같은 동백이다.

손민호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