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계 왼쪽에 류성룡 ? 김성일 ? 위패 자리 400년 다툼 마무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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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400년 동안 안동지역에서 이어져 온 풍산 류씨와 의성 김씨 가문의 자존심 대결이 일단락됐다.

안동 호계서원 이석희(84) 원장은 31일 “앞으로 복원 작업에 들어가는 호계서원의 위패 서열이 좌 서애(西厓· 류성룡·영정), 우 학봉(鶴峯·김성일)으로 확정됐다”고 말했다.

호계서원은 1573년 조선 선조 때 퇴계 이황의 제자들이 스승을 기려 안동에 세운 것으로 이후 퇴계를 중심으로 왼쪽에 누구를 모시느냐로 400년 동안 두 가문과 제자들이 자존심 싸움을 벌여 왔다.

안동에서 나고 자란 서애 류성룡(1542~1607)과 학봉 김성일(1538~1593)은 둘 다 퇴계의 수제자다. 학봉은 임진왜란 직전에 조선통신사 부사로 일본을 다녀왔으며 임진왜란 당시 경상우도 초유사로 적과 싸우던 중 병사했다. 서애 류성룡은 임진왜란 당시 영의정으로 선조를 모시면서 국난을 극복하는 데 공을 세운 인물로 널리 알려져 있다.

그러나 두 사람 가운데 누구를 윗자리인 퇴계의 왼쪽에 모시느냐를 놓고 두 거두의 제자들과 가문끼리 세기에 걸쳐 한 치의 양보 없는 신경전을 벌여 왔다. 이른바 병산서원과 호계서원의 앞글자를 딴 ‘병호시비’다.

조정의 서열로 보면 영의정 다음이 좌의정, 그 다음이 우의정이므로 퇴계 다음의 윗자리는 왼쪽 자리였던 것. 그래서 서애 문중과 제자들은 벼슬로 보아 영의정을 지낸 서애를 왼쪽에 모시는 것이 합당하다고 주장했다. 반면 학봉 문중과 제자들은 나이나 학문으로 미뤄 학봉이 그 자리를 차지해야 한다고 맞섰다.

퇴계를 모신 호계서원에서 이들의 서열은 1800년대 초까지 200년가량 시비가 되면서 임금에게까지 상소가 올라가는 등 논란에 휩싸였지만 결론을 내지 못했고 류성룡의 위패가 병산서원으로 옮겨가면서 다툼은 사실상 끝났다.

그 후 200년 동안 이 문제는 수면 아래에 머물러 있었다. 그리고 최근에 안동시가 대원군 때 철폐한 호계서원의 사당을 복원하기로 하면서 극적인 합의에 이르렀다.

두 문중의 류영하 종손과 김종길 종손은 지난 2월 말 퇴계의 주손인 이근필씨와 함께 안동시청에서 만나 복원될 호계서원의 위패 봉안 순서에 기꺼이 합의했다. 벼슬 서열에 따라 서애 류성룡을 퇴계의 왼쪽에, 학봉 김성일을 퇴계의 오른쪽에 모시기로 한 것.

이석희 원장은 “두 사람 모두 퇴계의 수제자로 영남 유림의 큰어른들이다 보니 본의 아니게 자존심 싸움이 이어져 온 것 같다”며 “누가 어느 자리를 차지하느냐보다는 위대한 학자의 사상을 기리는 일이 더 중요한 만큼 계속되는 논란은 무의미하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안동=송의호 기자

◆호계서원(虎溪書院)은=경북 안동시 임하면 임하리에 있으며, 조선 선조 6년(1573)에 건립되었다. 처음에는 여강서원이라 하였으나 숙종 2년(1676)에 현판을 하사 받아 호계서원으로 이름을 바꾸었다. 경북도 유형문화재 제35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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