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3회 삼성화재배 세계바둑오픈] 천하 명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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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면

'제13회 삼성화재배 세계바둑오픈'

<준결승2국>
○·이세돌 9단(한국) ●·황이중 9단(중국)

제5보(65~70)=경제가 보여 주듯 흐름이란 참으로 예측 불허다. 일순간에 먹구름이 몰려온다. 전보의 흑▲를 둘 때 황이중 7단은 정수라고 확신했을 것이다. 하지만 이세돌 9단의 백△가 놓이면서 바둑은 때 아닌 급류를 타고 아주 먼, 아득한 곳으로 둥둥 떠내려가고 만다.

흑▲는 백이 이곳을 둔다고 가정할 때 말할 수 없이 좋은 곳이다. 하지만 이 수는 훗날 돌아보니 단지 실리에 대한 욕구에 굴복한 수였다. 1국을 지고 벼랑 끝에 몰린 황이중, 그는 상대가 ‘이세돌’이기에 미생마를 잔뜩 걱정하면서도 국면을 넓게 보지 못했다. 실리에서 앞서지 못하면 이길 수 없다는 강박관념을 떨칠 수 없었다. 하지만 이 수는 ‘참고도’ 흑1로 좌변부터 차지하는 게 급선무였다. 백은 물론 2로 오겠지만 좌하는 아직 A가 남아 있다. 이 그림은 흑이 3으로 전개하는 정도로 계속 유유한 흐름을 유지할 수 있었다.

백△로 좌변에 백 돌이 놓이자 흑은 서둘러 귀를 정리하지 않을 수 없다. 선수를 잡은 백은 여기서 70으로 날아갔는데 놓이고 보니 이 수가 천하 명점이었다. 대마를 은은히 노리는 70에서 만근의 힘이 느껴진다. 70과 백△ 단 두 수뿐인데도 좌변은 마치 백의 대군이 에워싼 깊은 계곡처럼 보인다. 이 판을 정밀 분석한 박영훈 9단이 “중요한 곳은 좌변이었다”며 거듭 흑▲를 지적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었다.  

박치문 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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