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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생색뿐인 '암정복계획'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7면

우리나라에서는 매년 24만여명 (남자 13만6천여명, 여자 10만4천여명) 이 생명을 잃는다.

이를 사망률로 계산해보면 남자는 1천명당 5.9명, 여자는 1천명당 4.6명으로 나타난다.

이처럼 매년 되풀이되는 통계숫자지만 이들이 과연 사망할 수밖에 없는 이유로 사망한 것인지, 혹시 미리 막을 수 있었던 죽음은 아닌지 의문을 갖지 않을 수 없다.

우리나라 국민의 사망원인 통계자료를 보면 막을 수 있는 죽음이 많다는 것을 쉽게 알 수 있기 때문이다.

즉 75세 이후 사망자가 남자의 경우 22%에 불과하고 여자는 48%로 남자에 비해 높지만 여전히 절반을 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연령별로 사망률을 살펴보면 남녀 모두 35세 이후부터 급격한 상승곡선을 그리고 있다.

이는 우리나라 사망의 상당 부분이 예방 가능한 이른바 조기 (早期) 사망임을 의미한다.

이중에서도 특히 주목해야 할 것은 40~60대의 사망이다.

이 시기는 인생의 황금기며 사회적 기여도가 가장 높은 기간이기 때문이다.

한국인의 최대 사망원인은 암이다.

우리나라 사람 5명중 1명은 궁극적으로 암으로 생명을 잃는다.

그러나 예방의학을 전공하고 있는 필자는 암이 한창 일해야 할 나이인 중.장년층에게 특히 가혹한 질환임을 강조하고 싶다.

40~60대의 경우 3명중 1명꼴로 암으로 사망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과연 암은 불치의 병이며 예방이 불가능할까. 문제는 그렇지 않다는데 있다.

공포의 대상인 암도 종류에 따라 예방 가능함은 물론 설령 걸렸다 하더라도 조기발견으로 완치할 수 있는 암이 많기 때문이다.

다행히 우리나라는 선진국과 달리 비교적 예방과 치료가 손쉬운 종류의 암이 흔하다.

남자의 경우 위암.간암.폐암.대장암이, 여자는 자궁경부암.위암.유방암.대장암.간암이 전체 암의 3분의2를 차지하고 있다.

이중 위암.자궁경부암.유방암.간암은 모두 조기발견에 이은 조기치료로 완치할 수 있는 대표적 암들이다.

달리 표현하면 이들 암의 경우 예방교육과 조기발견을 통해 충분히 관리할 수 있다는 뜻이다.

B형 간염백신으로 예방할 수 있는 간암이 좋은 예다.

우리는 이미 우리나라 간암의 70%가 B형 간염에서 비롯되며 예방접종으로 간암을 예방할 수 있다는 역학 (疫學) 증거를 세계 최초로 보고한바 있다.

위암과 자궁경부암.유방암.대장암에 대해서도 발생률을 현저히 떨어뜨릴 수 있는 의학적 방법들이 속속 제시되고 있다.

우리나라 사람들, 특히 중.장년층의 최대 사인이 바로 암이며 대부분 예방교육과 조기 검진을 통해 막을 수 있다는 결론이다.

그렇다면 국가가 무엇을 해야할지는 절로 자명해진다.

필자는 보건복지부가 추진하는 암정복추진기획단의 위원으로 참여하고 있다.

암정복추진기획단은 96년부터 2005년까지 10년동안 우리나라의 암발생률을 현재의 절반 이상으로 줄이고 조기 진단율을 3배이상 끌어올리는 것등을 목표로 시작된 '암정복 10개년 사업' 을 추진하고 있다.

그리고 이를 위해 10년동안 모두 7천억원의 예산을 투자하기로 했다.

이는 일본이 대암 (對癌) 국가전략을 위해 집행한 95년도 1년 예산에 해당하며 미국정부의 1년 암연구 예산인 1조2천억원의 절반에 불과한 수준이다.

그러나 그나마 실제 집행된 예산은 96년 10억원, 97년 17억원에 그쳤으며 최근 국회에 제출된 내년 예산안도 17억원으로 책정됐다.

총사업기간 10년중 3년째 접어들고 있는데 원래 계획된 예산의 0.7%만 투자된 셈이다.

연간 70조원이 넘는 예산을 집행하는 국가에서 가장 많은 국민들을 죽음으로 이끄는 이른바 '넘버원 킬러' 에 대해 고작 17억원만을 지불하겠다는 것이다.

국민의 안위와 생명을 보호하는 것은 국가의 주요 책무이자 국가가 존재해야 할 이유기도 하다.

그리고 암은 더이상 속수무책의 불치병이 아니며 국가의 적절한 개입으로 발생률을 현저히 떨어뜨릴 수 있는 충분히 예방 가능한 질환이다.

시작부터 차질을 빚고 있는 암정복10개년사업에 대해 정부와 정치인들의 관심을 촉구하는 바다.

안윤옥 <서울대 교수,예방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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