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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인자가 살아남는 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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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7면

그에게 회사 오래 다니는 비결을 물은 적이 있다. 의외로 답은 평범했다. 꼭 필요한 존재가 되라, 이거였다. 오너와의 관계도 중요했다. 그는 초저온 가스산업 같은 대형 투자사업이 성공할 수 있었던 힘으로 ‘오너의 신뢰’를 꼽았다. 김영대 회장 특유의 ‘조용한 리더십’이 2인자가 제대로 일할 공간을 만들어줬다는 평가도 있다.

성공한 2인자는 많다. 빌 게이츠와 함께 마이크로소프트(MS)를 키운 스티브 발머 최고경영자(CEO)가 대표적이다. 프로그래머가 아닌 MS 최초 입사자였던 발머는 게이츠와 긴밀한 협력관계를 유지하면서 MS를 거대 기업으로 키웠다. 때론 게이츠와 격론을 벌이기도 했지만 발머가 ‘결혼관계’라고 말할 정도로 둘 사이는 평등했다. 워런 버핏 버크셔해서웨이 회장의 성공 뒤에는 버핏의 투자에 따따부따 시어머니 역할을 해온 찰리 멍거 부회장이 있었다. 마오쩌둥(毛澤東)을 홍군 사령관으로 추대하고 뒤로 물러앉은 저우언라이(周恩來)도 성공한 2인자였다.

이들은 모두 경영학자 데이비드 히넌과 워런 베니스가 쓴 책 『위대한 이인자들』에 나오는 모범사례다. 이 책에는 성공한 2인자가 되려는 이들이 귀담아 들어야 할 만한 조언이 나온다. 몇 개를 추렸다.

‘너 자신을 알라’. 1인자보다 2인자 되는 게 더 어려울 수 있다. 성공한 2인자는 자신이 만든 최고 작품의 영예가 타인에게 돌아가는 상황을 조용히 지켜볼 만큼 강한 자아를 가진 사람이다. 그래서 2인자에겐 ‘소박한 자아’가 필요하다. 저우언라이는 마오쩌둥의 ‘가정부’라는 놀림까지 받았다.

‘보스가 원하는 것은 물론 필요한 것까지 제공하라’. 2인자의 가장 중요한 책임은 1인자에게 진실을 말하는 것이다. 2인자는 권좌에 있는 1인자에게 언제나 접근이 가능한 사람이다. 고언을 하려면 용기가 필요한데, 이는 보답받을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리더가 다 현명한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냉혹한 진실을 듣기 좋게 말하는 능력도 필요하다.

‘모셔야 할 리더를 잘 정하라’. 아무리 재능 있고 열심히 일하는 2인자라도 보스의 암묵적 지원 없이는 성공할 수 없다. 보스를 선택할 때 신중해야 한다는 얘기다.

이런 점을 감안하면 1인자의 자세도 중요하다. 권력을 흔쾌히 나누려는 1인자 곁에 괜찮은 2인자가 몰릴 것이기 때문이다. 재계든 정치권이든 얼마나 많은 ‘보스’가 성공한 2인자를 거느릴 수 있을지 한번쯤 따져볼 일이다.

서경호 중앙SUNDAY 경제부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