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가벌]30.태자당(下)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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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혈연의 강력한 응집력과 이를 바탕으로 한 종족 (宗族) 구성체의 활발한 전개는 중국사회가 가진 커다란 특징이다.

이에 따라 중국사회에서는 혈연을 바탕으로 한 권력과 부의 세습이 다른 어느 사회보다 만연했던게 사실이다.

그러나 '가벌' 의 대명사처럼 떠오른 중국 태자당의 앞길은 밝지만은 않다.

이들에 대한 부정적 여론을 배경으로 중국 지도부는 지난 8월 공산당 내부 태자당 출신자들의 승진을 늦추도록 결심한 것으로 알려졌다.

'열린 사회' 로 나아가기 위해선 혈연을 뒤에 업고 있는 태자당의 역할이 당연히 제한받아야 한다는 인식 때문이다.

그러나 이같은 국가지도층의 방침에도 불구하고 태자당 출신으로 권력 핵심에 더욱 다가서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

그래서 이들의 행보는 더욱 주목받고 있다.

지난 7월 홍콩이 1백50여년의 식민지 역사를 청산하고 조국인 중국의 품으로 회귀하던 당시 홍콩인들의 관심은 좀 색다른 쪽으로 쏠렸다.

홍콩과 마카오 업무를 관장하는 중국 국무원 홍콩.마카오 (港澳) 판공실의 주임이 과연 누가 될 것이냐 하는 것이었다.

8월14일 이 자리의 후임자로 확정된 사람은 랴오후이 (廖暉) 다.

올해 55세인 랴오후이의 출신배경을 보면 그가 중국의 새 현안으로 떠오른 홍콩업무를 관장하는 것이 매우 자연스러운 일이라는 걸 알게 된다.

그의 부친은 83년 국가 부주석직에 오른 랴오청즈 (廖承志.83년 사망) 로 아들과 마찬가지로 중국공산당 초기 화교 (華僑) 업무를 관장했다.

랴오후이의 조부인 랴오중카이 (廖仲愷) 또한 화교신분으로서 신해혁명 당시 쑨원 (孫文) 을 도와 해외연락 업무에 간여했다.

랴오후이는 결국 조부 랴오중카이와 부친 랴오청즈에 이어 3대에 걸쳐 중국의 해외 화교 업무를 관장하는 인연을 맺게 된 셈이다.

랴오후이도 선대 (先代) 의 후광을 업고 벼락출세의 길에 오른 태자당의 전형적 인물이다.

그는 지난 83년 41세의 나이에 인민해방군 연대급 간부에서 일약 중앙정부의 차관급 (부부장급) 으로 승진함으로써 중국정치권내에서 화제의 인물로 떠올랐다.

그는 다음해 중국 국무원 화교사무처 주임으로 승진했다.

廖는 3대에 걸친 집안 내력으로 인해 해외화교의 인맥이 매우 두터운 것으로 알려졌다.

조부가 활동했던 미국과 부친의 활동대상이었던 일본, 본인의 출생지 홍콩, 그리고 동남아 등 지역에 화교지지 기반이 매우 큰 것으로 알려졌다.

이같은 배경 때문에 중국관측통들 대부분은 廖가 앞으로도 대만과의 통일을 진두에서 지휘하는 화교업무의 베테랑으로 승승장구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앞 회에서도 잠깐 언급한 쩡칭훙 (曾慶紅) 은 90년대 들어 가장 화려하게 떠오른 태자당의 일원이다.

최고 권력자 장쩌민 (江澤民) 이 87년 상하이 (上海) 시 당서기직을 떠나 중국공산당 총서기에 오를 때 유일하게 데리고 왔던 그의 최측근 비서출신이다.

江의 해외방문과 국내순시 때에 항상 곁에 붙어다니다시피 했던 曾은 결국 올해 있었던 15차 공산당전국대표대회 (15大) 이후 당내 엘리트 코스인 당 선전부장직에 오를 것으로 점쳐지고 있다.

지금까지의 직책은 청와대 비서실장급인 중앙판공청 주임이었다.

江주석의 총애를 실감케 하는 인사가 아닐 수 없다.

曾의 부친은 중국공산당 초기 원로인 쩡산 (曾山) 으로 장시 (江西) 성 출신이다.

27년 예젠잉 (葉劍英) 과 함께 광저우 (廣州) 폭동에 참가한 뒤 장시성 소비에트정부 주석과 성 위원회 서기를 역임하는 등 중국공산당 초기 역사에 빼놓을 수 없는 중요 인물이다.

쩡칭훙은 85년 장쩌민 당시 상하이 시장에게 발탁된 이후 출세가도를 달리기 시작했다.

그는 다음해에 바로 상하이시 시위원회 부서기로 벼락 승진한 뒤 줄곧 江과 정치적인 행보를 같이 하고 있다.

이밖에 일선에서 활동하고 있는 '잘 나가는' 태자당의 성원은 아직 많다.

중국체육의 미래를 한 몸에 걸머진 채 21세기 체육강국을 향해 앞으로 나가고 있는 우사오쭈 (伍紹祖) 와 중국의 해외무기거래를 책임지고 있는 바오리 (保利) 과학기술유한공사의 총책임자 허펑페이 (賀鵬飛) 등도 모두 태자당 출신이다.

伍는 역시 공산당 원로의 한 명인 우윈푸 (伍雲甫) 의 아들로 후야오방 (胡耀邦)에게 발탁돼 정가에 발을 들여 놓은 뒤 당원로 왕전 (王震) 의 비서를 거쳐 88년 국가체육위원회 주임으로 승진, 현재까지 중국체육계를 이끌고 있다.

賀는 중국 10대 원수 (元帥) 의 한 명인 허룽 (賀龍) 의 아들로 88년 군복무 11년만에 소장으로 승진, 덩샤오핑 (鄧小平) 의 뜻을 받들어 인민해방군 무기현대화 정책에 깊이 간여한 뒤 바오리유한공사로 옮겨 중국의 해외무기 거래를 책임지게 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유광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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