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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소한 발견] 50m짜리 ‘초절약형’ 지붕 액션 세트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39면

일제시대 배경의 탐정영화 ‘그림자 살인’. 이 영화의 백미는 탐정 황정민이 살인 용의자를 추격하는 골목신이다. 작은 상가가 다닥다닥 이어진 좁은 골목길. 황정민과 범인은 골목길의 양쪽 지붕 위에서 평행으로 달리다, 반대쪽 건물 안으로 뛰어내리기를 반복하며 숨가쁜 추격전을 벌인다. 건물 지형을 최대한 살린 추격신이다. 사실 여기에는 비밀이 숨어있다. 영화만 보면 커보이지만 사실은 전주의 작은 오픈세트에서 촬영했다. 총 길이 50m, 뛰어봐야 스무 발자국인 골목길 세트 안에서 각각 여러 버전으로 달린 후 이것을 이어붙인 것이다. 박대민 감독은 처음에 “관객이 눈치채지 않을까” 망설였지만, 기우일 뿐. 편집·촬영·미술·CG 등이 작은 세트를 초대형 세트로 착각하게 하는 마술을 부렸다.

이 추격 장면은, 최근 액션 연출에서 유행하는 ‘지붕 액션’의 하나이기도 하다. ‘본 얼티메이텀’의 그 유명한 모로코 텐지어 옥상 추격장면이 불붙힌 것 말이다. 지붕에서 지붕으로 날아가듯 뛰어내리고, 길 건너편 건물 속으로 뛰어드는 장면은 당시 ‘카메라로 쓴 액션의 시’라는 평을 받았다. 케이블에 로프로 카메라를 매달아 옥상 위를 미끄러져가며 근접촬영하고, 옥상에서 반대편 건물로 뛰어내릴 때는 카메라를 부착한 스턴트맨이 배우를 쫓아 뛰어내리며 촬영했다.

이어 ‘007 퀸텀 오브 솔러스’의 시에나 원형 경기장 추격전, ‘인터내셔널’의 이스탄불 엔딩 장면 등이 이를 쫓아했다.

스케일 면에서야 훨씬 못미치지만 ‘그림자 살인’이 경제효과를 극대화하면서 충무로 영화 중 가장 인상적인 옥상 액션신을 선보인 것만은 높이 쳐줘야 할 듯 싶다. 덧붙여 조성화 미술감독은 경성거리 등 세트 디자인에서 ‘공각기동대’ ‘스팀보이’ 등 일본 SF애니메이션을 참고했다고 밝혔다. 어쩐지 비현실적이고, 익숙하면서 생소한 느낌은 그래서 오는 듯.

양성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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