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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yle&CoverStory] 쥘리에트 비노슈 정말 마흔 다섯일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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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2면

“충분히 자연스럽게 헝클어졌나요(wild enough)?”

카메라 앞에 선 쥘리에트 비노슈(45)는 방 안에 있던 모든 사람을 향해 물었다. 발목 위로 살짝 올라오는 길이의 바지 차림에 낮은 로퍼(끈이 없는 캐주얼한 느낌의 구두)를 신은 채였다. 맨발이었다.

“시선을 위로, 조금 옆으로 서 주세요.” 사진기자의 요청이 이어지는 순간, 갑자기 그가 손을 뻗어 사진기자가 쓰고 있던 페도라(중절모자)를 벗겼다. 지켜보던 모든 사람이 당황했지만 비노슈는 태연하게 페도라를 쓰고 카메라 앞에서 포즈를 취했다.

비노슈는 우아한 카리스마를 풍겼다. 19일부터 사흘간 세계적인 무용가 아크람 칸과의 공연을 위해 방한한 그는 인터뷰 3시간 전 사람을 시켜 “무릎 부상 때문에 최대한 시간을 줄여 인터뷰해야 한다”고 전해 왔다. 사연은 이랬다.

“쥘리에트가 무릎을 다쳤어요. 출국 전(그녀는 본지와의 인터뷰 후 공항으로 갈 예정이었다) 병원에 들러야 해인터뷰를 최대한 짧게 끝내야 할 것 같아요.” 인터뷰를 주선한 화장품 회사 랑콤(비노슈는 랑콤의 모델이다) 관계자의 전화였다. “부득이하게 오늘 오후에 잡혀 있던 다른매체와의 인터뷰는 모두 취소됐어요. 중앙일보와 인터뷰 후 바로 치료받으러 가야 한대요.”

비노슈를 만나러 가는 길이었다. 상황은 갑자기 급박해졌다. 주인공이 아프다. 사진 촬영은 물론이고 인터뷰까지도 순조로울 리 없다. 한정된 인터뷰 시간의 압박, 그나마 줄어버린 시간 내에 사진 촬영까지 모두 마쳐야 하니 준비하는 사람들 모두 초조해졌다.

서울 삼성동 파크 하얏트 서울 22층. 인터뷰 장소인 프레지덴셜 스위트에 들어서자 10여 명의 사람이 보였다. 비노슈 매니저의 얼굴에서는 ‘중앙일보가 얼마나 대단한 매체이기에 이건 취소를 못 한다는 거야’라는 표정이 역력했다. 그에게 비노슈의 건강 상태가 최우선인 것은 당연하다. 랑콤 관계자들도 기자와 매니저 사이에서 식은땀을 흘렸다.

“병원에 가 물리치료 받고 또 바로 공항으로 가야 해요. 상하이 공연 때문이에요.” 아크람 칸과 비노슈의 월드 투어는 중국에서 대단원의 막을 내린다. “화장 좀 고치고 머리 손질을 하면 금방 나올 겁니다”라는 관계자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비노슈가 나타났다. 스태프의 소란과 긴장이 한순간에 멈췄다. 무릎이 아프다고 했는데 무용수가 걷듯 사뿐한 걸음걸이였다.

“봉 주르 마담(Bonjour madame).” 기자의 인사에 본토 발음 인사가 돌아왔다. “앙샹테(Enchante).” 경쾌하고 우아한 비노슈의 음성, 환한 미소가 방 안의 부산스러운 걱정들을 걷어내기 시작했다.

글=강승민 기자 quoique@joongang.co.kr
사진 =권혁재 전문기자 shotgun@joongang.co.kr

인터뷰와 사진 촬영 내내 그는 말 그대로 ‘시크(chic: 현대적인 세련됨)’한 모습을 보였다. 완벽하게 치장하느라 애쓰지 않았고, 그래서 있는 그대로 멋졌다.

얼굴 구석구석 화장한 티도 안 났다. 화려한 보석 액세서리로 공들여 꾸미지 않았지만 세계적인 여배우의 아우라는 충분히 빛났다.

비노슈는 무심한 듯 헝클어진 머리카락을 연방 손으로 매만졌다. “인터뷰 중 사진을 찍어도 되겠느냐”는 사진기자의 요청을 흔쾌히 받아들였다. 이내 전담 메이크업 아티스트와 헤어 디자이너가 그를 도왔다. 모든 준비는 채 2~3분도 걸리지 않았다. 가볍게 연분홍색 립글로스를 칠하고 정리가 덜 된 뒷머리를 매만지는 것으로 끝. ‘무릎은 좀 어떠냐?’는 물음에 전혀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괜찮다”고 답했다.

19세 때인 83년 본격적으로 연기자의 길에 들어선 뒤 올해로 27년째. 수십 편의 영화에 출연하고 아카데미상과 세자르상 등 각종 영화제를 섭렵했다. 어딜 가나 세계적인 배우로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사람. 하지만 예상됐던 거만함은 조금도 눈에 띄지 않았다. 수많은 스태프 앞에서 자연스럽게 화장을 고치고 호탕한 웃음을 지어 보였다. 흔히 ‘프렌치 시크’라고 불리는 ‘프랑스인 특유의 무심한 듯한 멋과 아름다움’이 자연스럽게 묻어났다. 그는 “쥘리에트 비노슈=프렌치 시크는 아니다”고 했다. “프랑스 덕을 많이 본 거죠. ‘프랑스’라는 이름이 그래요. 예술과 아름다움에 대한 해답을 갖고 있는 것처럼 느껴지죠. 와인과 치즈로 유명하기 때문에 쾌락주의자들의 나라로도 통하고. 이런 이미지들이 한데 섞여서 나에 대한 인상도 만들어졌겠죠. 물론 내 안에는 분명 사람의 관심을 끌 만한 매력이 있을 거예요. 그게 사람들이 날 기억하는 ‘프렌치 시크’의 이미지일지도.”

크리스티앙 디오르의 검은색 재킷을 입은 그에게 “스타일& 독자들이 당신이 입은 셔츠는 어떤 브랜드의 것인지 궁금해할 것 같다”고 말했다. 한순간의 망설임도 없이 그가 자신의 뒤쪽 셔츠 깃을 잡아 올리며 기자 쪽으로 몸을 숙였다. 직접 브랜드를 확인하라는 제스처였다. 그의 돌발행동에 오히려 당황한 것은 기자였다. 옷의 브랜드를 알려주거나 대충 웃음으로 넘길 수 있는 질문이었다. 그가 입은 셔츠는 일본 디자이너 다키자와 나오키의 것이었다. 셔츠 깃의 끝 부분과 셔츠 앞섶 여밈 부분에 촘촘한 박음질이 들어가 있는 게 섬세함이 돋보였지만 결코 요란스럽지 않았다. 디오르의 검은색 재킷은 소매 끝 단추까지도 재킷과 같은 색 천으로 감싼 지극히 자연스러운 디자인이었다. “실용적인 프라다를 좋아하고, 랑방의 독특함, 발렌시아가의 광기도 사랑한다”는 그였다.

그의 뒷덜미를 뜻하지 않게 훔쳐본 김에 “어떤 향수를 쓰는지” 물었다. “이스라엘에서 구입한 라벤더 에센스”를 쓴다고 했다. 그가 앉은 소파 너머로 비노슈의 우아한 모습을 포착한 랑콤 광고 포스터가 눈에 들어왔다. ‘프랑스 여성성의 정수’라는 문구가 새겨진 포스터의 보랏빛 배경과 그가 사용한다는 라벤더의 보랏빛 꽃잎이 자연스럽게 겹쳐졌다.

문득 그의 얼굴을 자세히 들여다봤다. 기자와의 거리는 채 1m도 되지 않았다. 눈가에 주름이 눈에 띄었지만 화장으로 굳이 감추려 한 흔적은 없었다. 평소에 관리를 많이 할 텐데 생각보다 주름이 많아 보였다. 목을 뒤로 젖히며 남자처럼 ‘껄껄껄’ 호탕하게 웃는 습관 탓일까. “주름이 졌다고 얼굴이 못생겨 보이는 건 아니에요. 잎사귀의 결을 보세요. 얼마나 아름다워요. 피부의 결, 즉 주름도 아름다울 수 있어요. 아름답지 않은 것은 오히려 인생의 무게, 살면서 완전하게 채우지 못한 것에 대한 부담감이에요. 이게 인생을 슬프게 만들고 사람을 나이 들게 해요.” 그의 철학적인 대답은 관조적으로 들렸다. 하지만 그는 곧 덧붙였다. “언제나 나 자신을 지킬 수만 있다면, 우리 인생은 지금 자신의 나이에 관계없이 아름다울 수 있어요. 삶의 에너지가 결국 우리를 지탱해 주는 힘이죠.” 그는 자신의 에너지를 보여주려는 듯 주먹을 쥐고 좌우로 흔들어 보였다. 얼굴에는 여유 있는 웃음을 가득 띤 채로 말이다. 비노슈는 “성형수술로 여성들이 스스로의 자신감을 찾는 데 도움이 된다면 찬성”이라는 입장도 밝혔다. “자연스럽게 나이 드는 것이 뭐 어때”라는 것도 그의 의견이다. 결국 그는 ‘당당함’의 중요성을 말하고 있었다. 불혹을 넘어 쉰을 바라보는 나이. 그는 “세월의 흐름에 굳이 대처하지 않는다”고 했다. “나이가 드는 게 대수인가요. 삶의 또 다른 비전만 갖고 있으면 돼요. 물질적인 것 말고 뭔가 다른 세계요. 제겐 창작 활동이 그래요. 무용도 그렇고 그림도 마찬가지예요.” 한국 팬들에게 잘 알려진 영화 ‘퐁네프의 연인들’에서의 자유분방한 화가(실제로 그 영화에 나오는 그림은 비노슈가 직접 그린 것들이다)처럼 사는 그의 모습이 그려졌다.

삶·아름다움에 대한 주관이 뚜렷한 그의 옷 입는 취향은 어떨까. “우아하게 보이는 것을 좋아해요. 그렇다고 특별히 꺼리는 스타일이 있는 것은 아니에요. 결국 옷은 옷일 뿐. 어떤 옷을 입었을 때 내가 그것을 입고 있다는 의식을 못하게 될 만큼 편안할 수 있다면 그것으로 만족해요.”

‘야생(wild)’을 좋아하고, 실제로도 시종일관 자연스럽고 편안한 모습을 보인 비노슈. 또 때론 엉뚱한 행동으로 보는 이를 웃게 만들었던 그가 한국의 리얼리티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했다면 어땠을까?



영화 밖의 비노슈

수십 편의 영화 속에서 다양한 모습을 보여준 쥘리에트 비노슈. 아카데미상 시상식 레드 카펫 위에 선 그를 두고 미국 언론들은 ‘프렌치 시크’라는 단어를 수없이 반복해 댔다. 다음은 비노슈가 공개한 자신만의 라이프스타일이다.

단 음식, 튀김 적게 먹어

식사를 절대 거르지 않는다. 아무리 바빠도 하루 세끼를 꼬박꼬박 챙겨 먹는 이유는 폭식을 피하기 위해서다. 프랑스 사람들이 저녁을 늦게 먹는 편이기는 하지만 내 경우는 가능하면 저녁 식사를 일찍 하려고 한다. 튀긴 것, 단것, 기름기가 많은 것은 좋아하지 않는다. 이런 음식을 많이 먹으면 피부가 산화된다고 생각해서다.

매일 아침 얼굴 마사지

매일 아침 좋아하는 향과 질감의 제품으로 얼굴 마사지를 한다. 기분에 따라 다른 종류로 바꿔 쓰기도 한다. 피부 관리도 자연스러운 게 좋다. 성형이나 보톡스 시술보다는 자연스럽게 피부에 탄력을 주는 마스크나 마사지를 자주 한다. 최근 사용하기 시작한 것은 랑콤의 ‘레네르지 마스크’다.

립스틱은 분홍빛 즐겨

기초화장은 피부에 광택을 주는 파운데이션 정도로 마무리한다. 볼에 핑크빛 블러셔를 살짝 칠하고, 기미나 잡티를 가려 주는 컨실러로 마무리한다. 눈가 주름에는 크게 신경 쓰지 않는다. 자연스럽게 피부 결을 살리는 화장법이 좋다. 립스틱도 진한 것보다는 본래의 입술 색을 자연스럽게 살려 주는 옅은 분홍빛 계열을 선호한다. 요즘은 살짝 윤이 나는 립글로스만 쓸 때도 많다.

자연스러운 웨이브 머리

얼굴선이 시원하게 드러나는 헤어스타일이 좋다. 옆머리와 뒷머리는 실핀 등으로 고정해 올려주고 윗머리에서 자연스러운 웨이브를 살리는 편이다. 윗머리는 자연스럽게 손으로 만져서 일부러 헝클어뜨리기도 한다.

브랜드보다 디자인

가장 좋아하는 브랜드는 랑방과 장바티스타 발리(Giambattista Valli)다. 랑방은 특히 드레스가 너무 좋다. 디자인이 화려하진 않지만 독특하기 때문이다. 발리의 옷은 두말하지 않고 살 정도로 좋아한다. 크리스찬 라크르와는 세련돼서 마음에 든다. 프라다는 질감이나 스타일이 좋아서 입으면 기분이 좋아진다.

그녀 위해 ‘한식 디저트’ 만든 파크 하얏트 호텔 총주방장
“오미자 화채에 큰 관심 보이더군요”

“오미자 맛이 신선하고 좋다. 처음 맛본 것이지만 한식 디저트는 발전 가능성이 많아 보인다.”

한국을 처음 방문한 쥘리에트 비노슈가 한식 디저트를 맛보고 내린 평가다. 본지가 비노슈를 위해 서울 삼성동에 있는 6성급 호텔 파크 하얏트 서울에 특별히 요청해 마련한 시간이다. 한식 디저트를 만든 주인공은 총주방장 스테파노 디 살보(35·사진). 그가 비노슈를 위해 준비한 첫 번째 디저트는 ‘신선한 딸기를 유자 소스에 절인 것’ ‘오미자로 만든 화채 젤리’ ‘수정과 셔벗을 곁들인 것’이었다. 비노슈의 다채로운 이미지에 걸맞게 꽃잎으로 화려한 색채까지 강조했다. 비노슈는 오미자 화채뿐 아니라 수정과 셔벗 등을 골고루 맛보았고 “이 재료는 원래 한국에서 전통적으로 쓰이는 것인가”라고 물으며 큰 관심을 보였다. “삼계탕도 맛봤고 오늘은 오미자로 만든 음료도 마셔봤다. 이제 한국 음식 하면 ‘건강에 좋은 것’이라는 생각이 떠오를 것 같다”고 비노슈는 말했다.

살보 총주방장은 “한국 음식에 쓰이는 재료는 훌륭한 것이 많다. 오늘 디저트에 쓴 오미자도 마찬가지다. 독특한 맛을 갖고 있어 한식을 주제로 한 요리에 쓰기 좋다. 평범한 재료도 한국 식재료는 품질이 좋다. 딸기만 해도 한국 딸기가 더 모양이 예쁘고 맛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런 재료들에 반해 ‘세계화할 수 있는 한식 디저트, 한국 음식’을 어떻게 만들면 좋을지 고민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가 일하는 파크 하얏트 서울은 서울 강남의 업무지구라는 지리적 여건상 외국인 비즈니스맨이 많이 찾는 곳이다. 살보 총주방장은 “우리 호텔에서도 한식을 외국인 고객에게 많이 소개하고 있는데 다들 반응이 좋은 편이다. 더 다양한 한국 음식을 개발하기 위해 여러 식당을 가 봤는데 역시 아쉬운 부분은 디저트”라고 했다. “한국산 배도 그중 하나”라고 지적한 살보는 “여기에 서양식 조리법을 응용하면 멋진 한식 디저트가 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가 비노슈를 위해 만든 두 번째 디저트(시간 관계상 비노슈는 이것을 먹지 못했다)에는 ‘한국산 유기농 배를 버터와 바닐라에 살짝 볶은 것’이 들어가 있었다. ‘한식 재료+서양식 조리법’의 한 예다. 살보는 인터뷰 말미에 본지의 ‘한식 세계화’ 시리즈에 대해 한 가지 제안을 했다. “서양에선 디저트도 식당의 대표 메뉴 중 하나다. 한식 세계화를 디저트로 해보면 어떤가.”

강승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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