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김대중총재와 김종필총재의 실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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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김대중 (金大中) 국민회의 총재와 김종필 (金鍾泌) 자민련 총재간의 이른바 DJP연합이 타결됐다.

대선 승리와 정치적 신념의 실현이라는 두 정치인간의 이해가 합치돼 이뤄진 DJP연합에 대한 평가는 정치적 입장에 따라 엇갈릴 수 있으나 우리 정치사의 획기적인 사건으로 주목받을 일이다.

우선 눈길을 끄는 것은 DJP연합의 성격으로, 정당들은 그대로 둔채 후보만 단일화하고 집권시에는 어떤 식으로 권력을 배분하겠다고 합의한 것은 우리 정치에서는 처음 있는 시도다.

일부 국민들에게는 DJP연합이 90년의 3당합당을 연상시켜 부정적 인식을 줄 수 있겠으나 이런 형식의 정당연합은 내각제를 실시하는 다당제 국가에서는 일반화돼 있는 현상이다.

87년 민주화 이후 상당기간이 다당제 정치구도로 유지돼 왔음을 감안하면 DJP연합은 다당제 정치에서 실용화될 수 있는 새로운 정치모형의 실험이라고 볼 수도 있다.

또 오랜 기간에 걸친 양당의 협상 결과로 DJP연합이 이루어진 절차도 살펴볼 만하다.

권위주의정권 아래서 정부.여당의 탄압 때문에 타협없는 극한적 투쟁이 체질화돼 온 우리 정치에서 협상과 타협과 양보를 통해 정당연합에 합의했다는 것은 우리 정치에 협상의 선례를 더했다고 볼만하다.

DJP연합의 내용은 협상과정에서 모두 공개됐다.

그동안의 정치협상이 막후에서 비밀로 진행됐고 그 과정에서 야합 (野合) 이 이뤄져 부작용을 초래했던 것에 비하면 이번의 양당연합은 선거에서 이에 대한 평가를 받겠다는 식으로 내용을 공개한 점이 특징이다.

특히 여당이 재벌들로부터 공개적으로 받는 지정기탁금은 비난하면서 뒤에서는 똑같은 재벌들로부터 비밀리에 비자금을 받아오던 야당의 행태를 생각하면 양당연합 내용의 공개는 정치행태의 변화를 보는 것 같다.

DJP연합의 목적은 대선에서 이기기 위한 것이다.

정당의 입장에서 보면 선거에서 승리하기 위해 다른 정당과 연합하는 것은 있을 수 있는 일이며 그것이 불법적인 것이 아닌한 정당간의 연합을 비난할 일은 아니라고 본다.

그러나 이 연합의 문제는 DJP연합을 성공시킨 핵심 내용인 내각제로의 개헌합의에 있다.

김대중총재는 그동안 대통령제를 주장해 왔음에도 불구하고 단지 선거에서 승리하기 위한 전략적 수단으로 내각제를 수용했다.

내각제가 어떤 점에서 필요하고 이 제도가 우리 정치의 발전에 적절한 것인지에 대한 인식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는 지도자나 정당이 선거전략의 결과인 정당간의 합의 때문에 내각제를 실시하게 될 경우 그 정치가 제대로 될리 없다.

사실상 우리 정치의 기반인 정당이나 국회.정치인들은 내각제를 제대로 실시할 자격을 갖추지 못하고 있다.

DJP연합의 결과로 초래될 내각제 아래의 정치는 현재의 심각한 정치상황을 개선하는데 아무런 역할을 하지 못할 것이다.

그렇다면 DJP연합은 실패할 가능성이 매우 큰 실험으로 끝날 우려가 크다.

애초부터 이 정당연합은 우리 정치의 문제를 개선한다거나 민주주의를 확고히 뿌리내리도록 하는 목적에서 행해진 것이 아니고 김대중총재가 대선에서 이기기 위한 전략에서 비롯된 것이기 때문에 그 목적이 달성됐을 때는 의미를 상실하게 될 것이다.

이 연합의 실패 가능성을 규정짓는 것은 다름 아닌 당사자 정치인들의 속성으로, 우리 정치인들은 아직 이질적 정당간의 연합을 성공적으로 추진해나갈 정도의 민주적 소양을 갖췄다고 보기 어렵다.

이 점은 3당합당의 실패에서 이미 입증된 바이며 한 정당 안에서도 합의를 이루지 못해 분당을 일삼아 온 야당이나 분당사태에 직면한 작금의 신한국당의 경우에서도 확인되고 있다.

결국 DJP연합은 김대중총재가 대선에서의 당선에 한발 다가서는데는 기여하겠지만 한국 정치의 발전이나 민주주의의 확립, 그리고 우리 정치의 새로운 틀을 정립하는데는 별다른 기여를 하지 못하는 실험으로 끝날 것 같아 걱정스럽다.

신명순 <연세대 동서문제연구원장·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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