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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위법투성이 공무원 단협, 필요하면 형사처벌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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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6면

공무원 노조들이 소속 기관들과 맺은 단체협약(단협)이 위법투성이로 드러났다. 노동부가 2006년 이후 체결된 112개 기관의 2006년 이후 체결된 단협을 조사해 보니 무려 79.5%가 노동관계법이나 공무원법을 위반하고 있었다. 위법 내용도 가지가지다. 공무원의 경우 노조 전임자는 무급 휴직 상태에서만 맡을 수 있도록 공무원노조법에 규정돼 있는데도 이를 멋대로 바꿔 월급을 받을 수 있도록 단협에 명시한 노조들이 허다했다. 일부 노조는 승진심사위원회에 노조 추천 위원을 들여보내는 등 인사에 실질적으로 간여했다. 심지어 공무원 복지 관련 법령을 제·개정할 때 노조와 사전 협의를 거치도록 못 박고 있는 곳도 있었다.

법을 지키는 데 앞장서야 할 공무원들이 노동운동이라는 이름으로 버젓이 위법을 자행하고 있는 것이다. 더 큰 문제는 이를 저지해야 할 기관장들이 오히려 노조활동비를 지원하며 감싸주기에 급급했다는 사실이다. 기강이 제대로 설 수가 없다. 공무원 사회에 만연한 각종 비리와 부패의 한편에 인사와 법 개정까지 관여하는 공무원 노조의 힘이 작용하지 않았다고 장담하기 어렵다.

노동부는 위법 조항들에 대해 관할 노동위원회를 통해 시정을 요구할 방침이라고 한다. 그러나 그 정도로는 부족하다. 보다 구속력이 강한 조치가 뒤따라야 한다. 공무원 노조의 위법을 방치할 경우 민간 기업 노조들의 개혁에도 악영향을 주기 때문이다. 당장 내년부터 민간 기업의 유급 노조 전임자제를 폐지할 방침이지만 공무원 노조들이 법을 어기고 있는 상황에서 민간 부문을 설득하기는 어렵다. 위법 사실이 명백한 사안들에 대해서는 형사처벌 등 강도 높은 조치를 병행해야 한다. 위법이 아니더라도 사회 통념에 비추어 도를 넘는 규정들에 대해서는 해당 기관장들이 책임을 지고 바로잡도록 강제해야 한다.

노동부는 이번에 위법 유형과 통계 수치만 발표했을 뿐 구체적인 사례는 밝히지 않았다. 그러나 이는 잘못이다. 어떤 기관이 어떤 법령을 개정할 때 노조의 간섭을 용인했는지 명백히 밝혀야 재발 방지에 도움이 된다. 국민의 알 권리 차원에서도 모두 공개하는 게 옳다.

법보다 단협을 중시하는 노동 관행도 이제 다시 생각해볼 때가 됐다. 노사화합이 경제에 미치는 순기능을 감안해 그동안 단협을 우선시해 왔지만 노조 만능주의의 빌미로 악용되고 있기 때문이다. 설비 투자까지 간섭하는 현대자동차 노조의 뒤에는 바로 법을 무시하는 관행이 자리 잡고 있다고 봐야 한다. 노동 당국은 이번 기회를 노동 현장에 뿌리내린 불합리한 단협을 바로잡는 계기로 삼아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