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n Sunday] 자전거의 선물, 속도와 각도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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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6호 35면

경력 3년차 ‘자출족(자전거 출퇴근族)’인 기자는 자출 첫날인 2007년 6월 10일 일요일, 그날의 느낌을 잊을 수 없다. 당시 증권 담당이었던 기자는 잠실 집에서 자전거를 타고 출입처인 여의도 증권선물거래소로 향했다. 몇 년 전 한 선배가 광장동에서 여의도까지 자전거로 출퇴근했다는 말을 듣고 내내 부러워하다 마침내 결행한 것이다. D-데이를 일요일로 잡은 것은 출근시간이 평일보다 다소 늦어 여유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잠실에서 여의도까지 자전거로 얼마나 걸릴지, 가다가 펑크라도 나면 어떡할지…. 걱정은 꼬리를 물었다.

불안한 마음을 안고 페달을 밟은 지 10여 분이 지나자 걱정은 기우였다는 걸 알게 됐다. 그리고 세상이 다르게 보이기 시작했다. ‘한강이, 서울이 이렇게 아름다웠던가?’

이유는 각도였다. 차를 타고 올림픽도로를 달리면서 본 한강과는 다른 모습이었다. 한강 수면에 포근히 안겨 달리는 둔치 자전거 길에서 강 너머를 바라보니 도로 위 차들은 모두 안 보이고, 빌딩도 절반은 사라졌다. 잠원지구를 지날 무렵 억새밭이 나타나자 그나마 보이던 빌딩들은 다 가려지고 남산과 푸른 하늘만 보였다. ‘여기 서울 맞아?’

화가들은 풍경화를 그릴 때 비슷한 경험을 한다고 한다. 서서 볼 때 별것 없이 밋밋하던 풍경이 바닥에 착 앉아서 보면 완벽한 구도로 보일 때가 있다는 것이다. 세상은 그대로지만 내가 달라지니 세상이 달라져 보이는 게다.

속도도 세상을 다르게 보이게 한다. 사람들은 시속 60㎞ 이상 달리는 차 속에서 내다보는 풍경에 익숙하다. 차 속에서 본 서울은 그저 그랬다. 잠실~여의도 간 자전거길 거리는 약 16㎞, 1시간 정도 걸렸으니 시속 16㎞로 달린 셈이다. 이 속도로 달리며 본 한강에는 논병아리와 왜가리·학이 있었다. 강바람을 맞으며 손을 잡고 걷는 노년의 부부, 줄넘기를 하는 아이도 눈에 들어왔다. 저녁 돌아오는 길엔 한강시민공원에서 미니카를 조종하고, 스포츠연을 날리는 동호회원들도 만났다.

‘아, 다른 사람들은 이렇게 살고 있구나!’

『자전거 여행』에서 ‘자전거를 타면 길이 몸 안으로 들어왔다 빠져나가는 듯한 체험을 하게 된다’고 예찬한 소설가 김훈의 마음이 이랬을 것이다

잠실에서 버스를 타고 여의도까지 가면 1시간30분, 지하철로 통근하면 지하철 이용시간만 50분이다. 승용차를 몰고 여의도까지 간다면 20여 분 만에 냉큼 도착할 수도 있지만, 그건 차가 없는 새벽에나 가능한 일이다.

자출은 내게 출퇴근 시간을 줄여 주고, 건강도 유지하고, 교통비도 절약하게 해 주는 일석삼조의 수단이다. 여기에 요즘 들어 또 하나의 근사한 명분이 붙기 시작했다. 바로 ‘녹색’이다. 녹색성장을 기치로 내건 이명박 정부가 녹색세상 구현의 수단 중 하나로 이산화탄소 배출을 줄일 수 있는 자전거에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이제 자전거 타기는 단순한 레저나 교통수단을 넘어 시대정신(Zeitgeist)의 상징으로 진화하고 있는 것이다.

행정안전부는 올 초 전국을 잇는 자전거 일주도로 3114㎞를 2018년까지 건설하겠다고 밝혔다. 한강ㆍ낙동강 등 4대 강과 나란히 이어지는 자전거길 1297㎞는 2012년이면 완공하겠다고 한다. 당장 다음 달 25일에는 5000명의 시민이 서울 방이동 올림픽공원에서 서울시청 앞 광장까지 17㎞를 자전거를 타고 달리는 ‘하이서울 자전거 대행진’ 행사도 열린다.

일요일인 오늘 아침, 신문을 읽은 뒤 자전거를 타고 길을 나서 봄이 어떠신지. 세상과 내가 동시에 달라져 보임을 느낄 기회가 열릴 것이다. 단, 안전을 위해 헬멧은 반드시 쓰고 타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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