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엘리자베스 여왕,인도 방문길서 과거사 사과요구 시위로 곤혹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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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9면

인도를 방문중인 엘리자베스 2세 영국여왕이 과거 인도에 대한 식민통치의 '죄값' 을 톡톡히 치르고 있다.

인도독립 50주년에 때맞춰 힘겹게 방문길에 오른 여왕을 맞아 인도 사람들은 과거 90여년간 식민통치의 한을 풀어보려는듯 곳곳에서 여왕을 압박하고 있다.

엘리자베스 여왕을 가장 괴롭게 하고 있는 것은 1919년 영국군의 대학살사건에 대한 공식 사과문제. 영국군은 당시 인도 북부 잘리안왈라 바그에서 평화적인 독립시위를 벌이던 양민들을 향해 무차별 발포, 약 4백명을 죽이고 1천2백여명을 부상시키는 만행을 저질렀다.

그후 인도인들은 누차 영국의 공식사과를 요구했으나 영국은 이를 외면해 왔다. 이번에도 인도인들은 여왕 일행을 따라다니며 연일 과거사 사과를 요구하는 시위를 벌이고 있다.

그러나 이에대해 여왕은 여전히 '사과' 가 아닌 '유감' 을 고집하고 있다. 여왕은 13일 인도 대통령궁 환영만찬에서 "우리의 과거사에 고통스런 일들이 있었다는 것은 비밀이 아니다. 잘리안왈라 바그 사건이 대표적 사례" 라고 말했다. 여왕은 또 "역사는 다시 쓰여질 수 없으며 다만 이를 거울삼아 환희의 역사를 만들어나가야 한다" 고 밝혔다.

이에 대해 희생자 유족회등은 큰 실망을 표시하고 14일 여왕이 잘리안왈라 바그의 사건현장을 방문한데 때맞춰 다시 대규모 항의시위를 벌였다.

여왕 일행은 이날 수천명 경찰의 철통같은 경비 덕분에 불상사없이 사건현장 기념비에 헌화할 수 있었으나 냉랭한 분위기속에 쫓기듯 일정을 마치고 돌아와야 했다.

김광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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