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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플@비즈] 웨이츠 하버드대 교수, 화장품에 ‘물리학’ 을 담는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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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13면

물리학은 어렵다. 머리가 지끈거리는 학문이다. 웬만한 사람들에게는 그렇다. 그런 물리학이 누구나 접하는 화장품과 만나면? 요리에 응용하면? 그렇다면 물리학은 더 이상 딴 동네 이야기가 아니다. 물리학을 화장품과 요리에 접목시킨 학자가 있다. 하버드대 물리학과 데이비드 웨이츠(58·사진) 교수다. 그가 12년 전부터 관심을 가졌던 분야는 세포구조를 물리학적으로 분석해 인공적으로 세포의 모양을 흉내 내는 기술이다. 2005년 ‘사이언스’에 게재됐던 그의 이론이 서로 상관이 없을 것 같은 국내 화장품 브랜드와 만나 실용화를 앞두고 있다. 아모레퍼시픽과 공동 연구를 위해 한국을 찾은 그를 이달 초 단독 인터뷰했다. 물리학이 매일 쓰는 일상 제품에 어떤 변화를 불러올 수 있는지 들어보자.

◆화장품과 물리학의 만남=자신의 연구를 일상 용품에 적용해 사람들의 실생활에 변화를 불러오고 싶었던 게 웨이츠 교수의 꿈이었다. 그러던 중 2005년, 아모레퍼시픽 김진웅 연구원이 그의 연구실 포스트닥터 과정에 들어가면서 이 꿈은 본격적으로 꽃피게 된다. 당시 아모레퍼시픽은 기존 화장품 개발이 이뤄지던 화학이나 생물학의 영역이 아닌 새로운 분야를 화장품 개발과 접목하려고 탐색 중이었다.

“피부에 좋은 성분은 이미 화학자들이 좋은 것을 많이 개발해 놓고 있습니다. 이를 얼마나 효과적으로 피부 속에 전달하고 스며들게 하는가가 핵심이죠.” 웨이츠 교수의 말이다. 웨이츠 교수팀은 음식에 씌우는 비닐 랩과 비슷한 느낌이지만, 수 나노미터의 얇은 이중막으로 된 세포 모사 구조를 만들어 이 안에 화장품 성분을 넣는 데 성공했다. 세포와 비슷한 구조라 그동안 피부 속에 스며들기 전 변성돼버려 효과를 거둘 수 없었던 단백질이나 펩타이드류 같은 물질을 피부 속에 전달하는 데 효과를 거둘 수 있다는 것이 웨이츠 교수의 설명이다. 웨이츠 교수와 아모레퍼시픽 연구팀은 이 기술을 올해 안에 헤라 브랜드에 적용하기 위해 막바지 연구를 하고 있다. 그는 “앞으로 이런 기술을 더욱 발전시켜 고급 화장품뿐 아니라 저렴한 화장품에도 적용하고 싶다”고 말했다.

◆요리와 물리학의 만남=얇은 막으로 된 껍데기를 씌워 그 안에 물질을 넣는 연구는 뜻밖에 요리에도 응용 가능하다. 웨이츠 교수팀은 최근 이 기술을 이용해 ‘뉴 캐비아’라는 음식재료를 만들어내는 데 성공했다. 캐비아처럼 생겼지만 안에 망고나 키위, 심지어 진귀하고 값비싼 버섯인 트뤼플도 넣을 수 있다. 웨이츠 교수팀은 프랑스 파리에 설립한 벤처회사 ‘캡섬’을 통해 뉴 캐비아를 일류 분자요리 요리사들에게 공급하려 하고 있다. 웨이츠 교수와 함께 방한한 캡섬의 세바스티앙 바르동 최고경영자(CEO)는 “뉴 캐비아로 일부 대체할 수 있는 연어 알 시장만 한 해 30억 달러”라고 말했다.

◆의료와 물리학의 만남=바이오필름은 미생물들이 모여 얇은 막 형태를 형성하는 것을 가리키는 말이다. 이런 바이오필름은 치아에 끼는 플라크나 환자들의 주사 튜브 안에 모이는 박테리아 형태로 사람들을 괴롭힌다. 주사 튜브 안의 박테리아로 미국에서만 매년 10만 명 이상이 사망한다. 웨이츠 교수는 “세계적인 화학기업 BASF와 이 바이오필름을 줄이는 연구를 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바이오필름의 구조를 물리학적으로 연구해 이를 줄일 수 있다고 보는 것이다. 공동 연구를 시작한 지 1년이 됐다.

최지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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