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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국토포럼] 고추로 먹고살던 산골 오지 국내 최대 ‘바람의 날개’ 달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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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8면

경북 영양군 석보면 맹동산 일대에 조성 중인 대규모 풍력발전단지. 2011년까지 104기의 풍력발전기가 건설될 예정이다. [프리랜서 공정식]

세계를 휩쓸고 있는 불황으로 온 나라가 힘든 시기를 맞고 있다. 중소 도시와 농촌은 그 주름이 더 심해지는 게 현실이다. 하지만 고유의 자산과 잠재력을 바탕으로 한 분야에서 우뚝 서는 도시와 마을이 생겨나고 있다. ‘신국토포럼 1부-지방이 국가경쟁력, 2부-지방을 넘어 세계의 명품으로’ 시리즈에 이어 3부에선 지방자치 시대의 새 모델을 만드는 ‘강소(强小) 도시’를 찾아간다.

1만8766명. 경북 영양군의 인구다. 전국 230개 지방자치단체 중 최하위 수준이다. 제조업체는 하나도 없다. 팔 것이라고는 고추와 산나물, 청정한 공기가 전부다. 하지만 면적은 815㎢로 서울시의 1.3배나 된다. 영양군은 낙후지역을 언급할 때 첫손에 꼽힌다.

그래도 ‘영양 고추’는 용케 자존심을 지켜 준다. 유일한 1등 브랜드다. 2007년 고추만 가지고 100만 달러 이상을 수출했다. 고추 하나가 청정 영양을 먹여 살린 셈이다.

이제 숨통이 트였다. 산바람이 가세했다. 영양에 국내 최대 풍력발전단지가 들어서고 있다. 풍력이 영양을 먹여 살릴 또 하나의 날개로 자리 잡고 있다. 5일 풍력발전기가 돌아가는 영양군 석보면 요원리 맹동산 현장을 찾았다. 비포장 길을 10분쯤 올라가자 해발 800m 능선을 따라 날개 길이 37m, 타워 높이 80m짜리 풍력발전기가 펼쳐졌다. 세찬 바람 때문에 고랭지 채소 재배 외엔 아무것도 할 수 없던 산비탈은 무공해·친환경 녹색 에너지의 산실로 변모하고 있다. 맹동산의 풍속은 평균 5.7m/초이고, 풍향도 일정해 풍력발전에 적합하다고 한다.

◆2011년까지 104기 세워=맹동산에는 현재 풍력발전기 31기가 세워졌고 10기가 설치 중이다. 26기는 지난해 12월부터 상업 운전을 시작해 전기를 생산하고 있다. 스페인에 본사를 둔 ㈜악시오나 에너지 코리아는 올해 안에 10기를 더 세워 1차로 51기 76.5㎿ 규모로 연간 22만5000MWh의 전력을 공급할 예정이다. 이는 5만 가구가 연간 사용할 수 있는 전력이다. 8400여 가구가 전부인 영양은 물론 인근 청송까지 쓰고도 남을 전력이다. 생산된 전력은 한국전력에 ㎾당 최소 107.66원에 판매된다.

악시오나 코리아 이창선(56) 회장은 “앞으로 영양에 2차 23기, 3차 30기를 더 조성해 2011년까지 모두 104기(156㎿)로 국내 최대의 풍력발전단지를 만들 계획”이라고 말했다. 104기 설치가 완료되면 경북 지역 가정의 평균 전기 사용량을 기준으로 최고 15만 가구에 전력을 공급할 수 있다고 한다. 신재생에너지 분야에서 세계 2위 기업인 악시오나는 영양풍력단지에 1차 단지 1700억원을 포함해 총 5000억원을 투자한다. 악시오나는 6월 1차 단지가 마무리되면 이익금의 일부를 영양 지역에 환원하는 것을 검토 중이다. 현재 부과 대상이 되지 않는 풍력발전기에 대한 재산세도 영양군에 낼 생각이다. 한 대 평균 30억원씩 하는 풍력발전기에 재산세를 부과하면 지역에 실질적인 도움이 되지 않겠느냐는 것이다.


◆청정 이미지 양 날개 달아=권영택 영양군수는 2007년 김관용 경북지사와 함께 스페인 마드리드의 악시오나를 찾아가 본사 회장과 직접 양해각서(MOU)를 체결, 유치에 성공했다. 여기엔 풍력발전 기술 전수도 포함됐다. 악시오나는 지난해 10월 30여 명을 뽑아 첫 기술 교육을 실시, 이들 중 6명을 채용했다. 이들은 영양풍력 변전소에 배치돼 스페인 엔지니어들과 실무를 익히는 중이다. 악시오나에 채용된 김성호(33)씨는 “유망한 차세대 기술을 먼저 배워 한국에서 풍력 기술의 최고가 되고 싶다”고 말했다.

권 군수는 “단지 안에 풍력발전기 높이의 전망대를 만들고, 말을 타고 일대를 돌아보는 승마장 건설 등 관광 개발 아이디어를 공모 중”이라고 말했다. 권 군수는 “풍력단지를 통해 고추 외에 전국 최고의 브랜드를 하나 더 갖게 됐다”며 “가장 낙후된 지역이 가장 각광받는 신재생에너지의 중심지로 탈바꿈하고 있다”고 말했다.

영양=송의호 기자, 사진=프리랜서 공정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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