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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지도]66.댄스음악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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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3면

90년대 한국대중음악의 중핵은 적어도 주류대열에서는 댄스다.

92년 서태지와 아이들이 등장하면서 왕위에 등극한 댄스는 트롯에서 발라드까지 한국 대중음악의 다른 모든 장르를 지하로 쫓아보내고 5년이상 가공할 위세를 자랑해왔다.

불황중의 불황이라는 올해 음반시장에서도 댄스그룹은 절대적 세력은 약화됐을지언정 상대적 우위는 거뜬히 유지했다.

2집을 낸 H.O.T가 1백만장 가까운 판매고를 올렸고 영턱스클럽과 젝스키스 역시 50만장 이상 음반을 팔아치워 20만~30만장이 최고인 다른 쟝르들과 격차를 벌려놨다.

이들과 DJ DOC.지누션등 인기그룹들은 음반뿐 아니라 CF와 각종 행사.공연참가비로 음반판매 이상의 수입을 챙기는 것으로 알려져있다.

이같은 시장장악과 표절시비등 때마다 불거지는 추문때문에 댄스는 다른 쟝르의 균형적 발전을 가로막는 암적 존재로 폄하되기도한다.

그러나 댄스를 그렇게 간단히 정리할 수는 없다.

무엇보다 댄스는 연간 판매량 8천만장으로 추산되는 국내가요시장을 지배하는 쟝르이며 한국 대중문화에서 제왕의 권력을 행사하는 TV와 뗄레야 뗄수 없는 관계를 맺고있다.

TV순위프로의 1위부터 10위 자리는 대부분 댄스음악 차지다.

간혹 록이나 발라드가 끼어들지만 아직은 양념 수준이다.

그러나 순위쇼1위의 댄스음악이 음반시장에서도 1위를 차지한다는 보장은 없다.

공연장.거리에서의 현실적 인기도 쇼순위와는 상관없는 경우가 많다. 그럼에도 TV는 끊임없이 새로운 댄스가수를 화면에 내보내고 음반제작자들은 방송사문턱을 발이 닳도록 넘나들며 자기 그룹 소개에 바쁘다.

이는 TV에 종속된 한국가요계의 현실 때문이다.

소리보다 '그림' 을 우선하는 영상매체 TV는 노래대신 현란한 춤사위를 구사하는 댄스그룹이 어느 가수보다 예쁠 수 밖에 없다.

또 음반.공연만으론 수지가 안 맞는 가요계는 TV에 댄스가수를 공급함으로써 살 길을 찾을 수 있었다.

댄스는 한국대중문화의 수준과 지형을 곧바로 보여주는 바로미터다.

현재 댄스음악의 주고객은 10대들이다.

대중문화에서 10대의 소비력은 기성세대가 모르는 사이 일취월장해 지금은 세대별 순위 1위를 차지하고있다.

기성세대가 무심코 자녀에게 쥐어주는 만원권이 모두 음반과 만화.비디오등에 흘러들어간다.

댄스산업이 이 황금시장을 놓칠 리 없다.

10대들을 위한 테마파크를 선점하는 이가 무림 (舞林) 을 지배한다.

그 승자 H.O.T의 성공비결을 보자. H.O.T는 매끈한 미소년 '오빠' 들로 어필한다는 기본 전략에다 제작자의 뛰어난 마케팅기법.상황판단으로 성공한 상품이다.

우선 현란하지만 결코 위협적이지않은 머리모양, 희멀건 피부, 노래못지않은 말솜씨, 신사다운 매너로 소녀들을 무장해제시킨다.

다음에는 다채롭지만 복잡하지않은 달콤한 노래로 그들의 감각을 공략한다.

표절과 가사의 폭력성 시비등 댄스그룹에 따라붙기쉬운 장애물은 활동중단.타이틀곡 변경등으로 신속하게 대처한다.

새롭지만 낯설지않은 후속곡을 적시에 내놓는 것이 중요하다.

H.O.T는 이런 공식을 빈틈없이 적용시켜 정상에 선 대표그룹이다.

이와 반대로 뒷골목에서 본듯한 친근하고 꾸밈없는 캐릭터로 10대를 공략한 것이 영턱스클럽이다.

그들의 얼굴은 H.O.T에 비해 까무잡잡한 편이고 행동거지도 좀더 일상적이다.

이들을 대중과 더욱 가깝게 만드는 것은 이들의 히트곡들이다.

지난해 이들을 스타덤에 올린 '정' 은 어디선가 들은 듯한 뽕짝리듬과 선율을 내장하고있었다.

2집에서도 하우스리듬의 빠른 곡 '질투' 를 타이틀곡으로 들고나왔지만 종국적 히트는 보사노바리듬에 트롯 멜로디를 깐 '타인' 이 차지했다.

신해철은 "현재 댄스는 옛날 트롯이 대중에게 행한 오락적기능을 그대로 대체해 결국 한몸" 이라고 표현했는데 이는 댄스의 '정체' 를 드러내는 날카로운 지적이다 두 그룹은 음반산업이 오로지 상업적 고려와 구조안에서 어떤 음악상품을 내놓을 수 있는지 잘 보여주는 실례이다.

그러나 이같은 정교한 계산도 '나이' 라는 생물학적 변수를 만나면 삐걱대기 십상이다.

30대를 넘긴 나이에 '이브의 경고' 로 댄스여왕이 된 박미경은 '아담의 심리' 에서 역부족으로 주저앉고 말았다.

'도시탈출' 로 '쿵따리 샤바라' 의 영화를 이으려했던 클론의 상대적 부침 역시 전작보다 못한 곡구조와 함께 댄스가수로는 환갑을 넘긴 나이 (28)가 핸디캡으로 작용했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이와함께 가요계의 유행병인 표절시비역시 댄스산업이 넘어야할 큰 벽이다.

10대들이 좋아할 고만고만한 선율을 대량급조해야하는 댄스의 속성상 표절시비는 어느정도 필연적일 수 밖에 없다는 극언까지 있다.

그러나 댄스음악은 적절한 창의력과 내공이 있으면 이 두가지 장애물을 얼마든지 넘어설 수 있다는 가능성도 보여준다.

94년 데뷔해 노장급에 들어선 DJ DOC는 "사람들을 의식하지 말라" 는 그들의 노랫말처럼 거침 없는 잡탕적 시도로 자기만의 성역을 구축함으로써 생존한 그룹이다.

섹스 ( '미녀와 야수' ) 부터 정치 ( '삐걱삐걱' ) 까지 대중의 성감대를 시류에 따라 적시에 파고드는데다 애국가부터 옛날 유행한 만화영화 주제가까지 자기만의 스타일로 패러디해내는 재주는 가위 독보적이다.

명퇴했다가 복직하는 위험한 수순을 밟은 박진영 역시 복고라는 키워드를 명쾌하고도 개성적으로 살려낸 디스코음악 '그녀는 예뻤다' 로 다른 댄스가수와는 질적인 차별화에 성공했다.

나아가 두 뮤지션은 10대외에 대학생과 회사원의 사랑을 끌어내, 댄스의 음악적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사실 댄스는 대중 음악에서 큰 지분을 주장할수 있는 음악이다.

왈츠등 고상한 클래식쟝르도 실은 당대에는 댄스음악이었고 재즈나 록등 대중음악 쟝르도 출발은 역시 댄스였다.

문제는 댄스음악 제작자들 조차 시인할만큼 비대해진 댄스의 전횡이다.

음반.TV.공연을 장악하고있는 댄스는 그때문에 자신의 음악적 원천이 되줄 인접쟝르들을 고사시킬 우려마저 받고있다.

댄스의 독주에 대한 해결책으로 흔히 거론되는 방안이 성인음반시장의 활성화이다.

댄스음반만 사는 10대 대신 성인들이 록.발라드.재즈.트롯등 좋아하는 쟝르의 음반을 직접 구입하는 문화가 정착한다면 음반산업은 자연 활기를 띨 것이고 '쟝르 민주주의' 도 달성된다는 것이다.

여기다 시청률에 얽매여 댄스스타 출연시키기에만 급급한 방송사들이 태도를 바꿔 '소리' 위주로 프로그램을 꾸민다면 댄스의 독주현상은 절로 해결될 것이라는 주장이다.

그러나 1년에 영화 한두편 보는게 고작이고 음반이라곤 길보드표 테잎 (길거리 리어카에서 파는 불법 히트곡 모음집) 을 사는 것이 전부인 대부분의 한국성인이 직접 음반점을 찾아 1만원 넘는 돈을 투자하는 풍경이 보편화되기를 기대하기란 요원해보인다.

더욱이 댄스는 국내10대들에게 단순한 음악 이상의 역할을 하고있다.

서구에서는 댄스음악이 세기말 젊은이들의 자연스런 유흥인 반면 국내에서는 입시에 억눌린 아이들의 거의 유일한 스트레스 배출구이며 자기표현 공간이다.

현란한 이미지로 사랑과 성공, 행복을 노래하는 댄스가수들은 10대들에게 즐거운 환상인 동시에 노력하면 다가갈 수 있는 구체적 현실로 자리잡아 가고있다.

10대 사이에 갈수록 늘고있는 백댄서 지망생은 그 단적인 예다.

댄스의 전횡에는 TV와 음반시장만으론 설명할 수 없는 사회적 배경이 존재하는 것이다.

강찬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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