高유가에 하이브리드車 상한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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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4면

미국에서 일본 도요타자동차의 하이브리드(Hybrid·잡종) 자동차 ‘프리우스’를 사려면 6개월은 기다려야 한다. 같은 종류인 혼다의 ‘시빅’도 마찬가지다.

미국에서 하이브리드 자동차의 인기가 치솟고 있다. 국제유가가 크게 오르면서 1년새 가솔린 가격이 두배 가까이 급등하자 연료를 적게 소모하는 하이브리드 자동차의 장점이 부각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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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브리드 자동차는 저속 주행 때는 전기모터, 고속주행일 때는 가솔린 엔진을 사용한다. 따라서 같은 '혼다 시빅'이라도 하이브리드형의 연비가 가솔린형보다 두배 가까이 높다.

이에 맞춰 주요 자동차 업체들은 저마다 새로운 하이브리드 자동차를 속속 내놓고 소비자들의 눈길 끌기에 나서고 있다. 하지만 가격만 일반 자동차보다 비쌀 뿐 실속은 별로 없다는 반론도 만만찮다.

◇신차 출시 경쟁=일본 업체가 장악하고 있는 하이브리드 자동차 시장에 미국 업체들이 추격전을 벌이기 시작했다. 포드는 기존의 소형 스포츠 유틸리티 차량(SUV)인 '이스케이프'에 하이브리드 기술을 접목시킨 새 모델을 8~9월께 출시한다. 북미시장에서 하이브리드 SUV가 출시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파이낸셜 타임스(FT)에 따르면 이스케이프 가솔린 모델이 도심에서 ℓ당 평균 9㎞를 달리는 반면 하이브리드형은 15㎞를 주행할 수 있다. 이에 맞서 도요타는 대형 SUV인 '렉서스 RX400H'를 연말께 미국 시장에 출시해 포드에 맞불을 놓는다는 전략이다. 소형인 1300㏄급 시빅의 판매에 주력해 왔던 혼다도 11월께 6기통 엔진을 장착한 '어코드'를 출시해 고급 하이브리드 시장에 진출한다.

혼다 미국법인의 대변인은 "지금까지는 하이브리드 자동차가 단순히 연료 효율이 높다는 데 마케팅을 집중해 왔지만 앞으로는 고급 자동차 시장에서도 생존이 가능하다는 것을 증명할 것"이라고 말했다.

미국 경제주간지 비즈니스위크에 따르면 제너럴 모터스(GM)와 일본 닛산도 곧 하이브리드 자동차를 내놓을 계획이다.

현대자동차도 올해 안에 소형차 '클릭'의 하이브리드 모델을 내놓을 예정이지만 상용화 단계까지는 최소 5년 이상 걸릴 것으로 보인다.

◇장기 전망 불투명=시장조사 회사인 CSM월드와이드의 애널리스트는 "하이브리드가 많이 팔리고 있지만 매년 미국에서 판매되는 1700만대의 자동차 중 1%에 불과하다"며 "하이브리드가 주력 판매 차종으로 성장할지는 좀더 두고 봐야 한다"고 말했다.

실제로 하이브리드 자동차는 고속으로 장거리를 운전할 때는 장점이 별로 없다. 하이브리드는 대개 시속 40㎞ 이상이면 가솔린만 사용해 달리기 때문에 전기를 사용해 연료 효율을 높인다는 장점이 사라지는 것이다.

또 자동차의 힘을 측정하는 구동력도 '이스케이프' 하이브리드가 가솔린의 3분의 1 수준에 불과하지만 가격은 3300달러나 더 비싸다. 결국 가솔린 가격이 예전 수준을 되찾으면 소비자 입장에선 굳이 비싼 하이브리드를 찾을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오히려 독일의 벤츠나 폴크스바겐 등은 하이브리드 대신 디젤엔진을 장착한 자동차 개발에 힘을 쏟고 있다.

디젤엔진 개발에 수십억달러를 쏟아부은 폴크스바겐의 관계자는 "디젤이 가솔린보다 유류비가 덜 들 뿐 아니라 연비도 가솔린보다 30% 이상 더 나온다"며 "고질적인 유해 배기가스 문제도 거의 해결되고 있기 때문에 하이브리드보다 디젤이 고유가 시대의 현명한 대안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김준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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