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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자동차 도약하려면 (中 ) 옵션 뺀 저가형차로 승부해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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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11면

이번 세계적 금융위기를 계기로 미국 시장에서 현대자동차가 일본의 도요타를 이길 가능성도 있다.

1975년 도요타가 폴크스바겐을 제치고 미국 수입차 1위가 됐을 때의 상황이 현재와 비슷하다. 그때도 무척 어려웠다.

73년 석유위기와 그 후 미국 경기 침체로 판매 대수가 떨어졌다. 2∼3년 후 소형차 시장만 회복됐을 때 도요타는 이를 포착하고 적극적인 판매 공세를 펼쳐 머뭇거리던 폴크스바겐을 제쳤다. 당시 도요타의 연간 판매 대수는 28만 대로 폴크스바겐 전성기 시절의 절반이었다.

시장점유율은 한번 높아지면 유지하기가 비교적 쉽다. 미국 도요타의 판매 전략은 호황기에는 높은 목표 대수를 추구하고 불황기에는 시장점유율의 상승 또는 유지를 꾀하는 패턴의 연속이다. 75년 이래 도요타는 미국에서 수입차 1등을 유지하며 뒤처진 적이 없다.

다음은 품질에 대한 오해다. 75년 당시 도요타의 품질은 미국 차에 뒤졌다. 당시 미국 차와 도요타의 품질 격차는 지금 도요타와 현대차 차이와 비교도 되지않을 만큼 더 컸다.

도요타는 높은 품질로 세계 1등이 됐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다. 하지만 석유위기부터 80년대를 지나 도요타를 키운 것은 막강한 판매력이었다.

미국에선 품질 향상은 판매가 좋아진 이후 뒤따라왔다. 현대차는 이런 도요타의 성공을 재현할 충분한 기반이 있다. 한국 내수시장을 잘 다지고 이 기회에 미국 시장의 10% 이상을 점유하면 된다. 위기에서 살아남을 뿐 아니라 이후 급속한 발전이 가능할 것이다.

그러나 서둘러야 한다. 지금은 환율 등으로 유리한 환경이지만 곧 중국 업체들이 추격한다. 주어진 시간은 길어도 3년이라고 본다.

◆전략 모델은 신중히 골라라=불황 때 어떤 차가 잘 팔릴 것인가에 대해 여러 의견이 있다.

일반적으로 하이브리드와 충전식 전기차 또는 경차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미국 시장은 이와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갈 것이다. 전문가들은 자동차 산업을 선진국과 신흥국으로 나누기도 한다. 하지만 나는 자동차가 생활필수품인 나라와 아닌 나라로 나눠야 한다고 본다. 도쿄나 서울에서는 차 없이 살 수 있다. 그런데 미국은 뉴욕 맨해튼 정도가 예외일 뿐이고 다른 장소에서는 차 없이 살 수 없다. 한 가족에 최소 한 대는 기본이다. 따라서 필연적으로 패밀리카 요건을 갖춰야 한다. ▶부부와 아이 두 명(+개 한 마리)이 타고 긴 시간 드라이빙이 가능할 것 ▶2주에 한 번 쇼핑할 때 수납 공간이 충분할 것 ▶품질과 연비가 좋을 것 ▶내구성과 중고차 가치가 양호할 것(유지비가 쌀 것) 등이다.

◆신차 가격이 쌀 것=한 가족이 2, 3대의 차를 보유할 경우 이런 차는 디자인·성능이 다르거나 보트 견인, 오프로드 등 특수용도로 선택하는 경우가 많다. 미국에서는 도요타 하이브리드카인 프리우스나 비츠 등이 여기에 해당된다. 이런 차는 부동산·증권 상승에 따른 임시 수입으로 사는 경우가 많다. 금융위기로 먼저 판매가 떨어진 게 이런 차다. 그런데 기본적인 요건을 갖춘 패밀리카 수요는 비교적 안정적이다.

절약을 최고로 여기는 새로운 구매층(New Stoic)이 증가한다. 4단 수동이라도 적당한 크기로 쾌적하게 달리는 저렴한 차를 선호하는 것이다. 도요타도 75년 이런 계층을 노렸다. 80년대 그냥 달리는 기능만 넣었던 코롤라 기본 모델이 가장 잘 팔렸다.

이런 구매층은 싼 가격을 추구하지만 크기나 쾌적한 공간, 주행성능을 희생할 생각은 추호도 없다. 이번 금융위기에서도 이런 차를 제공하는 메이커가 유리한 입지에 서게 될 것이다.

지난해 말부터 혼다는 옵션을 간소화하면서 이런 조건을 만족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지금의 엔고 시절에선 상당히 힘들다. 현대차가 원화가치 하락을 이용해 쏘나타·아반떼에 고급 옵션을 뺀 저가형 차를 미국 전략차로 설정한다면 다른 메이커가 여기에 대응하기가 상당히 힘들 것이다.

<하편에 계속>

정리=김태진 기자

◆이마이 히로시(今井弘·76) 전 미국도요타물류 사장 약력

-58년 도쿄대학(국제관계) 졸업, 도요타 입사

-59년 도요타 해외주재원 1호 발령

-81년 미국도요타판매 부사장

-88년 미국도요타물류담당 부사장

-91년 미국도요타물류 사장

-94년 삼성자동차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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