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보랑 보수랑] 1. 헷갈리는 보수·진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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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수는 힘센 사람이 좀 맘대로 하자는 것, 보수는 별놈의 보수를 다 갖다놓아도 바꾸지 말자는 것""진보는 좌파고 좌파는 빨갱이라고 하는 것은 한국 사회의 진보를 가로막는 암적 존재다. 진보는 더불어 사는 것, 고쳐가며 살자는 것."(5월 27일 노무현 대통령의 연세대 특강)

"노 대통령의 경제관이나 노동자를 대하는 태도를 보면 결코 진보라고 할 수 없다. 노 대통령은 개혁적 보수주의자일 뿐."(5월 28일 노회찬 민주노동당 사무총장)

"좌익정권을 타도하고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복원하는 방법으로는 군부 쿠데타 외에 다른 방법이 없다는 것이 이해될 것."(3월 30일 이화여대 김용서 행정학과 교수의 예비역 장성 상대 강연회 연설문)

노 대통령은 지난달 연세대 특강에서 취임 후 처음 공개적으로 자신이 진보주의자임을 천명했다. 그러나 진보정당인 민노당의 노 총장과 정통보수를 자임하는 김 교수는 노 대통령을 보수주의자와 좌파로 각각 규정했다. 진보는 정부 개입, 평등, 분배를 중시하고 보수는 시장자율, 경쟁, 성장을 더 중요하게 여기는 입장이다. 그런데 한 사람을 놓고 어떻게 이렇게 아주 다른 평가가 나올 수 있는 것일까.

장훈 중앙대(정치학) 교수는 "정치적 입장이 다른 세 사람이 자기식으로 세상을 해석하고 미래를 바라본 것이 원인"이라고 진단했다. 노 대통령은 보수에 대한 이해의 폭이 좁고, 노 총장은 수구에 가까웠던 과거의 보수주의를 비판한 노 대통령의 발언취지를 의도적으로 무시했고, 김 교수는 쿠데타로 자유민주주의를 복원한다는 자기모순에 빠졌다는 것이다.

우리가 이런 식으로 보수.진보의 그림을 서로 다르게 그리면서 적대적 공방을 벌이는 동안 보수.진보의 '원조'라 할 수 있는 서구에서는 양자가 서로의 가치를 인정하는 성숙한 단계로 넘어갔다. 영국의 블레어(노동당), 독일의 슈뢰더(사회민주당) 총리의 결단이 대표적인 예다. 이들은 좌파정부의 수반이지만 국가공동체 전체가 직면한 위기를 타개하기 위해 자기 진영의 특성을 일부 버리고 보수진영의 장점을 채택했다. 두 사람이 1999년 발표한 공동선언은 좌파진영이 '사회정의'를 잘못 이해했음을 시인하는 반성문이었다. "①우리는 창의성과 다양성 대신 보편성과 평등을 사회정의라고 생각해 왔다 ②사회정의를 정부지출로 달성하려 했다 ③권리를 의무보다 더 중요하게 생각해왔다 ④정부의 역할은 과대평가됐다 ⑤시장의 약점은 지나치게 부각됐고 장점은 과소평가됐다…." 훗날 블레어 총리는 보수당이었던 전임 대처 총리와 행태가 똑같다는 조롱이 담긴 '가방 든 대처'라는 별명을 얻기도 했다. 하지만 "그런 별명은 블레어 총리가 영국을 유럽에서 경제활력이 가장 넘치는 나라로 만들었다는 '개혁'의 다른 이름이기도 하다"(독일 자유베를린대학 박성조 교수)는 평가도 나오고 있다.

특정 사안에 대한 입장이 진보인지 보수인지를 따지기 어려운 경우도 있다. 길 가는 사람을 붙들고 "요즘 빈곤층이 늘고 있는데 정부가 도와야 하나"라고 물으니 "물론"이라 했다 치자. 약자를 보호하자는 현상타파적 태도이므로 그는 진보다. 이번에는 "당신이 세금을 더 내서 그들을 도와야 하나"라고 물으니 "그건 싫다"고 했다 하자. 결과적으로 현상유지적 입장이므로 이번에는 보수가 된다. 이렇게 한 사람이 갖는 이념적 태도도 물어보는 방식과 각도에 따라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다.

이번에는 이라크 파병, 노조 파업 등 여러 가지 사안에 대해 차례로 입장을 들어 보자. 대개는 진보와 보수가 섞인 답변이 나온다. 세상일이 갈수록 복잡해지고, 개인.집단의 관심과 이해관계도 갈수록 다양해지는 이른바 다원사회에 우리가 살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모든 사안에 대해 보수적 입장을 취하는 '절대 보수'나 매사에 진보적인 '절대 진보'의 입장을 갖는 사람은 현실세계엔 거의 없다.

이제는 과거처럼 진보와 보수의 기준을 획일적으로 정할 수 없다. 시대와 상황에 따라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음을 받아들여야 한다. 이중국적, 기업.은행의 해외매각, 외국인노동자 정책, 등은 진보.보수가 아닌 세계주의.민족주의의 기준으로 구분되기도 한다.

그런데도 고정된 틀에 얽매인 진보와 보수의 주장이 대립하는 상황이 자주 벌어진다. 분단과 전쟁, 좌우의 극단적 대립, 냉전과 산업화 등을 거치면서 진보가 탄압받는 보수 일색의 사회가 되다 보니 진보.보수에 대해 제대로 판단할 기회가 없었기 때문이다. 학계에서조차 정리된 기준이 없는 상태다. 숭실대 강원택(정치학) 교수는 "정치학.철학.사회학을 전공하는 교수들 사이에서도 합의된 일반적 기준이 없어 각자의 기준에 따라 보수.진보를 구분하다 보니 혼란이 증폭되는 측면이 있다"며 "교수들이 그러하니 학생과 일반인의 기준은 더 제각각일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서구와 한국 역사 속에서 보수와 진보가 어떻게 변화.발전해 왔는지를 이해해야 이를 현실세계에서 생산적으로 활용할 수 있다는 얘기다.

◇특별취재팀=이하경 논설위원, 김창호 학술전문위원, 이세정 논설위원, 전영기 정치부 차장, 문경란 여성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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