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향에 산다]안경모 전교통부 장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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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8면

대전유성구도룡동 대덕연구단지내 엑스포과학공원옆엔 '과학은 대덕연구단지, 식사는 녹원' 이란 대형간판이 걸린 '녹원가든' 이란 한식집이있다.

1, 2층 합해 손님 1백40여명이 동시에 앉을 수 있는 적잖은 규모인데다 불고기.갈비.냉면.돌솥밥등이 메뉴로 나와 언뜻 보면 여느 고급 한식집과 다를 바 없다.

그러나 처음 이 식당을 찾는 손님들은 홀안에 들어서는 순간 카운터에 앉아 반갑게 인사를 건네오는 주인과 마주치며 고개를 갸우뚱하게 된다.

성성한 백발인데도 금테안경 너머로 보이는 이지적인 눈매, 큰 풍상없이 인생 황금기에 접어들었음을 짐작케하는 고른 치아, 아직도 거의 꼿꼿한 허리와 6척 장신. 도저히 식당 카운터에 앉아 있을 사람으론 생각되지 않는 이 사람이 바로 우리나라 국토건설사의 '산증인' 이요, 건설교통부.수자원공사등의 고참 직원들 사이에선 아직도 청백리 (靑白吏) 의 대명사로 회자 (膾炙) 되고 있는 안경모 (安京模.80) 전교통부장관이다.

해주고교 (북한) - 도쿠시마고교 (일본) - 도쿠시마대 수료, 철도국 기수 (39~45) , 건설부차관 (63~64) , 교통부장관 (64~67) , 수자원개발공사사장 (67~74) , 엔지니어클럽회장 (81~83) , 한국과학기술한림원 명예회장 (96~) . 1917년4월7일 (양력) 황해도 벽성에서 태어났으니 우리나라 나이로 무려 여든한살이지만 安씨는 일흔을 넘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정정하다.

2년전 부인을 먼저 저세상으로 보낸 安씨는 지난해 10월 서울효창동 집을 팔아 식당에서 5백m거리에 있는 40평형 아파트를 샀다.

이 넓은 집에서 혼자 산다.

물론 요즘도 작업복 바지를 직접 기워입을 정도로 구두쇠인 安씨가 넓은 (?) 집에 혼자 사는 데는 그럴만한 이유가 있다.

아파트 지하에 쌓아둔 한트럭분외에 지난 6월 수자원공사에 3천여권을 기증했는데도 아직도 개인장서가 너무 많기 때문이다.

安씨는 매일 밤11시에 아파트에 돌아와 라디오를 듣고 혼자 잠잔다.

아침이면 빵과 계란프라이.샐러드도 직접 만들어 먹는다.

安씨는 "처음엔 혼자 사는게 불편했지만 이젠 익숙해져 불편이 없다" 고 말한다.

安씨가 식당을 연 것은 대전엑스포가 열리기 1년전인 지난 92년9월. 85년 한국기술연구원장직을 끝으로 46년의 공직생활을 마감한 安씨는 공기 맑은 곳에서 노후를 보낼 목적으로 퇴직금을 털어 당시 분양이 안되던 1백90평의 땅을 샀다.

그러던중 엑스포가 열리면서 과학기술처로부터 "빈땅으로 두면 흉하니 건물을 지어달라" 는 요청을 받은 安씨는 연구단지의 후배과학자들도 지켜볼 겸 소일거리로 삼기 위해 식당을 열었다.

식당문을 열 때 친구나 가족.친지들이 펄쩍 뛰며 말렸다.

安씨는 자신의 고집을 꺾지 않고 손님이 많을 때는 직접 음식을 나르고 설거지까지 하며 고생한 끝에 이젠 2억여원의 은행융자금도 모두 갚았다.

요즘도 매일 새벽5시면 어김없이 일어나 빗자루로 주차장을 청소하고, 시내버스로 (자가용은 없다) 대전시내 4~5개 은행을 돌 정도로 건강한 安씨는 회고록을 집필하는 외에 식당 자리에 자신의 호 (號) 를 따 '강사 (江史) 기념관' 을 짓는 게 앞으로의 꿈이다.

대전 = 최준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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