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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곁의문화유산] 청도 석빙고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40면

냉장고가 없었던 옛날 사람들은 과연 여름에 얼음을 사용했을까. 답은 물론 얼음을 직접 얼렸던 것은 아니고 겨울철에 거둔 얼음을 저장했다가 이듬해 여름에 꺼내 쓰는 것이다.

말 그대로 '빙고' , 곧 얼음 창고가 그 방법이었다.

겨울에 얼음을 저장해 여름에 쓰는 방법은 중국의 경우 약 2천5백년 이상 거슬러 올라간 시점부터 있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얼음을 저장, 사용했는데 시기는 문헌상 신라의 지증왕 때부터다.

그러나 그 유적에 대해서는 알 수 없다.

조선 초에는 나무로 만든 얼음 창고, 곧 목빙고를 이용해 얼음을 보관했으며, 세종 이후부터는 석빙고가 만들어지기 시작, 이후로 빙고의 보편적인 형태가 된 듯하나 지금까지 전해지는 석빙고 유적은 모두 18세기 이후에 만들어진 것들이다.

그나마 남한에서 볼 수 있는 석빙고는 청도.현풍.안동.경주.창녕.영산등 여섯곳 뿐. 그 가운데 축조 연대가 가장 빠른 것이 숙종 39년 (1713) 축조된 청도 석빙고다.

석빙고 입구에 작은 석비 하나가 서 있는데, "2윌11일 시작해 5월5일에 마치다.

막일을 한 사람이 5천4백51명으로 모두 하루씩 부역했으며, 돌을 나른 승려는 6백7명으로 20일동안 일을 했다.

석공 12, 야장 (冶匠) 3, 목수 1명이 참여했고, 양식쌀 53섬, 와공전 (瓦功錢) 3백냥, 시우쇠 1천4백38근, 회 (灰) 3백84섬이 들었다" 고 공사 기간과 동원된 인원.소요 재료등을 자세히 적고 있다.

석빙고는 봉토가 유실되고 지상으로는 홍예보 네 줄만이 초승달처럼 솟아올라 내부가 훤히 들여다 보인다.

지하는 길이 15m, 폭 5m, 높이 4.4m 되는 장방형의 석벽구조다.

바닥은 납작한 돌을 평평하게 깔았는데, 양쪽 가장자리에서 안쪽으로 갈수록 조금씩 낮아져 안쪽 벽 가운데 설치됐던 배수구를 통해 빙고에서 생긴 물이 바깥으로 빠져나가도록 돼 있다.

이와 같은 배수 구조는 석빙고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이다.

만일 얼음이 녹아 생긴 물이 제대로 배출되지 않으면 얼음이 훨씬 빨리 녹기 때문이다.

청도 식빙고는 비록 지붕도 없어지고 뼈대만 남았지만 더운 날에도 안으로 들어서면 서늘한 기운이 느껴져 우리나라 선조들의 과학정신과 지혜를 다시 생각하게 되는 문화유산이다.

또 오히려 봉토가 덮여 있고 언제나 문이 잠겨 있는 여느 석빙고와 달리 구조를 한눈에 파악할 수 있는 이점도 있다.

▶가는 길 = 청도에서 창녕으로 난 20번 국도를 따라가다 청도읍을 벗어나면 바로 화양읍 입구 두 갈래길에 닿는다.

갈림길에서 왼쪽 읍내로 난 길을 따라 4백m 정도 가면 길 왼쪽에 화양자동차정비공장이 있고, 공장 옆으로 청도향교로 가는 마을길이 나온다.

마을길을 따라 1백m 가면 왼쪽에 석빙고가 있다.

글 = 김효형 (문화유산답사회 총무)

사진 = 김성철 (사진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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