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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IE] 존엄사, 누가 어떻게 결정해야 할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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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4면

존엄사의 의미와 찬반 논란 등을 공부한다.

◆존엄사란=회복 가능성이 없는 환자에 대한 무의미한 생명 연장 치료를 중단해 자연스럽게 죽음을 맞도록 하는 조치를 뜻한다. 연명 치료는 중단하나 통증 완화 치료나 일반적인 진료는 계속된다. 회복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 의료 행위를 계속함으로써 환자가 고통에 시달리고 인간의 존엄성마저 무너지는 경우를 우려해 만들어졌다. 안락사는 환자가 감내할 수 없고 치료와 조절이 불가능한 고통을 없애기 위해 환자에게 죽음을 초래할 수 있는 약물을 투여하는 등의 적극적인 방법을 뜻해 존엄사와 다르다.

우리나라엔 아직 존엄사 법안이 없다. 1990년 후반부터 서울대병원·국립암센터·서울아산병원 등 종합병원이 말기 환자나 가족으로부터 연명 치료 거부 서약서를 받아 시행해 왔다.

문제는 죽음에 대한 논의를 금기시하는 인식 탓에 말기 환자와 충분한 사전 논의 없이 죽음에 임박해 가족이 임의로 존엄사를 결정하고 있다는 점이다. 환자의 죽음에 대한 자기결정권을 중시하려는 존엄사의 본래 의도와는 거리가 있다.


◆존엄사 찬반 논란=존엄사에 대해 ‘인간의 존엄과 품위를 지키며 죽을 권리’라는 주장과 ‘치료를 중단함으로써 임의로 신성한 생명을 끊는 행위’라는 비판이 엇갈리고 있다.

존엄사를 하는 이들은 개인의 인격권과 행복추구권을 보장한 헌법 10조를 근거로 든다. ‘행복하게 살 권리’만큼 ‘품위 있게 죽을 권리’도 인정하는 게 헌법을 따르는 길이라는 판단이다. 하지만 환자의 자기결정권이 환경의 제약을 받을 경우 존엄사가 자칫 현대판 고려장으로 전락할 우려도 있다. 가족들이 감당해야 할 치료비에 대한 부담과 죄책감이 더해져 원치 않는 치료 중단 결정을 내릴 가능성도 크다는 말이다. 네덜란드는 적극적인 안락사가 합법화된 나라다. 환자가 원할 경우 의사가 약물을 주입하는 등 자살을 돕는 행위마저 허용된다는 말이다.

가족의사제도가 발달한 선진 의료 시스템이 밑바탕에 깔려 있기에 가능하다. 선진국의 존엄사 관련법을 모방하기보다는 우리나라의 문화와 의료 제도에 맞춘 법안을 마련해야 하는 이유다.

◆품위 있는 죽음을 향한 준비=선진국은 오래전부터 말기 환자의 의사 결정을 존중해 ‘자기 생명에 대한 사전 유언’을 합법화하는 자연사법을 만들었다. 환자가 미리 생명 연장 시술을 보류하거나 중단하도록 하는 생전 유언장(Living will)을 작성하도록 한다. 의식이 흐려지거나 혼수상태에 빠지더라도 이미 작성한 생전 유언에 따라 자신의 삶에 통제력을 행사할 수 있다.

전문가들은 우리나라에서는 사전 유언장 제도가 이상적일 뿐 현실적이지 못하다고 지적한다. 죽음을 삶과 이분법적으로 바라보는 사회적 인식, 유언장이나 죽음의 방식에 대한 논의를 거부하는 분위기 탓이다.

법 제정에 앞서 사회 모든 주체가 참여해 존엄사에 대한 기준과 절차를 합의할 필요가 있다. 또 존엄사가 악용되지 못하도록 사회감시체계를 구축하는 일도 중요하다.

박형수 기자

◆도움말=이윤성 서울대 의대 법의학과 교수, 신현호 법률사무소해울 대표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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