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곁의문화유산] 담양 명옥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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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0면

여름에 더 간절히 생각나는 원두막이나 정자, 이런 건축을 통틀어 '누정 (樓亭)' 이라 한다.

누각과 정자에서 한 자씩 딴 이름으로 누각은 사방을 바라볼 수 있게 문과 벽체 없이 높이 지은 다락집을 말하며, 정자는 누각보다 좀 규모가 작은 건물을 일컫는다.

원두막은 글자 그대로 초가를 얹은 소박한 정자다.

누정은 가족과 함께 살아가는 마을 속의 살림집과는 달리 자연을 배경으로 한 유람이나 휴식 공간으로 양반, 그것도 남성 위주의 공간이라는 제한이 있긴 하지만 틀에 짜인 살림집이나 사찰.서원.성곽 등에 견주어 훨씬 여유롭고 매력적인 건축이며 공간이 아닐 수 없다.

무등산 동북쪽에 자리한 광주 충효동과 영산강의 작은 지류인 자미탄이란 내를 끼고 있는 담양땅 일대엔 취가정.풍암정.독수정.면앙정.송강정.식영정.환벽당.소쇄원.명옥헌등 많은 누정이 있다.

이 지역에는 예전부터 큰 지주가 많았고, 그 경제력을 바탕으로 식자층이 꽤 두텁게 형성됐다.

중앙 정계로 나아갔던 그들이 벼슬에서 물러나거나 16세기 조선 사회를 뒤흔들었던 사화의 와중에 권력에서 밀려나 고향으로 돌아와서는 각자의 연고에 따라 산수 좋은 곳에 정자와 원림 (園林) 을 꾸리고 음풍농월하며 한세월을 보냈던 것이다.

명옥헌은 나지막한 산기슭을 타고 내리는 계류를 이용해 아래 위 연못을 파고 아래 연못을 바라볼 수 있는 자리에 지은 정자다.

정자는 정면 3칸, 측면 2칸이며 사방이 마루고 가운데에 방이 있다.

다른 정자에 견주어 마루가 약간 높은 편이라 조망권이 더 확보되는 누각처럼 보인다.

네모진 아래 연못 안에는 동그란 섬이 있어 밋밋하지 않고, 못가엔 한여름에 분홍빛 꽃을 피우는 묵은 배롱나무가 빙 둘러섰는가 하면, 한편에 늘씬하게 잘 자란 소나무 대여섯그루가 줄지어 서서 화사하면서도 아기자기한 경치를 보여준다.

배롱나무는 백일 동안이나 붉은 꽃을 피운다고 하여 '목백일홍' 이라고도 불린다.

이곳을 꾸민 사람은 조선 효종 시절 (1652년 무렵) 의 오명중. 아버지 오희도가 살던 터였다.

지금은 물의 양이 적어 실감이 안나지만 예전엔 위 연못에서 아래 연못으로 흐르는 물소리가 옥이 부딪치는 소리 같았다고 한다.

▶가는 길 = 광주에서 15번 국도와 826번 지방도로를 따라 담양군 창평으로 가다 보면 고서 네거리가 나온다.

고서 네거리에서 앞으로 계속 이어지는 826번 지방도로를 따라 창평쪽으로 1.5㎞ 가면 길 오른쪽에 명옥헌으로 들어서는 마을길이 나온다.

마을길을 따라 1㎞ 가면 고서면산덕리 후산마을 안에 있는 명옥헌에 닿는다.

글 = 김효형 (문화유산답사회 총무)

사진 = 김성철 (사진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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