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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보균의 세상 탐사] “조선의 독립국임과 조선인의 자주민임”

중앙선데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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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3호 02면

고종은 줄타기 외교의 명수였다. 힘없고 가난한 나라가 사는 길은 외교뿐이었다. 그는 일본의 압박과 간섭이 드셀 때 중국(청나라)과 러시아에 의존했다. 청나라의 위압과 경멸 앞에선 일본과 미국을 끌어들이려 했다. 한반도 주변 열강의 세력 균형을 활용한 생존술이다. 조선판 이이제이(以夷制夷)다.

그는 미국을 중시했다. 미국이 영토적 야심을 드러내지 않는 데 주목했다. 고종은 워싱턴에 상주 공사관(지금의 대사관)을 설치했다. 3층짜리 공사관 건물도 샀다. 당시 거금인 2만5000달러를 들였다. 하지만 미국의 영향력은 약했다. 한반도 불개입 정책을 고수했다. 고종의 친미외교는 짝사랑으로 끝났다. 경제·군사력이 없으면 외교력은 고갈된다. 나라는 쓰러진다. 당시 워싱턴 공사관 개설 요원에 이완용도 있었다. 그는 주미 서리공사(3대)도 지냈다. 매국노 친일파가 되기 전이었다. 공사관 건물은 당시 모습으로 남아 있다.

한반도는 동북아 안정의 출발지다. 3·1절 기미 독립선언서는 동양 평화의 예민한 원리를 정립한다. “오등(吾等)은 자(玆)에 아(我)조선의 독립국임과 조선인의 자주민임”을 외친 그 선언서는 명문이다. 한·중·일의 공존과 번영이 동북아 안정과 평화의 바탕임을 장엄하게 설파한다.

한반도는 요충지다. 해양 세력과 대륙 세력의 충돌 지점이다. 이곳의 통제력을 확보하면 강대국이 된다. 한반도의 지정학적 속성이다. 1900년 전후 이 지역의 각축전은 치열했다. 최후 승자는 일본이었다. 러일전쟁 때 영·미 해양 세력은 일본을 지원했다. 일본은 동맹(영국)과 친교(미국)를 짜임새 있게 써먹었다. 그리고 대륙 간판인 러시아를 꺾었다.

한 세기 뒤 무대는 같지만 배역의 모습은 다르다. 주인공 한국은 어느 정도 부국강병을 이뤘다. 한·미 동맹은 한국 성장의 후원 동력이 됐다. 최고 강대국은 바뀌었다. 미국과 중국은 동북아의 영향력 순위 1등이다. 해양과 대륙 세력의 상징이다. 1894년 청일전쟁에서 패배한 뒤 중국은 한반도에서 쫓겨났다. 이제 115년 뒤 강대국으로 확고하게 부활했다. 중국의 위세는 독보적이다.

미·일 동맹은 단단해졌다. 결속의 어휘가 난무한다. 지난주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아소 다로 총리에게 “일본은 동북아 안전의 초석(cornerstone)”이라고 말했다. 힐러리 클린턴 국무장관은 “미·일 동맹이 미국 외교정책의 근본(bedrock)”이라고 강조했다. 이미 부시 정부부터 미국은 동맹의 우선순위를 바꿨다. 한·미에서 미·일로 옮겼다. 이는 한국의 좌파 10년 집권의 부산물이다. 노무현 정권은 한·미 동맹을 약화시켰다.

북한은 미사일 도박에 나서고 있다. 그 노림수는 이명박 정권의 의지와 전략을 시험하는 데도 있다. 오바마 정부만 겨냥하는 것이 아니다. 핵·미사일 게임의 오랜 승자는 김정일 국방위원장이다. 벼랑 끝 외교는 미국을 압도했다. 김대중·노무현 정권의 햇볕정책을 역이용했다. 엄청난 경제지원을 받으면서 핵무기를 만들었다. 김정일의 노련한 이중전략은 어수룩한 햇볕보다 한 수 위였다.

하지만 북한은 미묘한 상황에 진입했다. 김정일의 건강과 후계 문제가 걸려 있어서다. 절대 독재정권이 불안한 시기는 권력의 이양과 재편 때다. 당·정의 집단 지도체제보다 아들로 넘기는 3대 세습의 가능성이 주목된다. 어떤 형태든 체제 위기로 발전할 수 있다. 그것이 급변 사태로 나타나면 중국은 평양에 군대 파견의 유혹을 받을 수 있다.

동북아 정세는 요동치고 있다. 한국은 한반도 질서 변화의 주도권 경쟁에 나서야 한다. 이명박 정권은 한·미 동맹을 재정비해야 한다. 중국·일본과의 교류·협력을 다듬어야 한다. 독립은 홀로 서는 것만이 아니다. 자주는 동맹과 친선으로 강화된다. 이 대통령은 역사의 전환기에 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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