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국회의원 폭행은 민주주의에 대한 테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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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한나라당 전여옥 의원이 어제 입법활동에 불만을 품은 이해당사자들에게 폭행을 당하는 어이없는 사건이 일어났다. 전 의원은 국회 후문 입구에서 시위 중이던 민주화실천가족운동협의회(민가협) 회원에게 얼굴과 목을 맞았다. 큰 부상이 아니라 다행이지만 사건의 본질은 심각하다.

전 의원은 최근 ‘민주화운동 관련자 명예회복 및 보상 등에 관한 법률’(민주화운동 관련자 보상법)을 바꾸기 위한 개정안을 준비해 왔다. 개정안은 김대중 정부 시절 만들어진 민주화보상심의위원회의 결정 중 일부를 다시 심의하자는 내용이다. 전 의원은 민주화운동이라 보기 힘든 경우, 특히 동의대 사건처럼 경찰의 목숨을 앗아간 시위대에까지 민주화 공로를 인정해 보상금을 지급한 것은 잘못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동의대 사건은 1989년 경찰이 시위 진압을 위해 도서관에 진입하는 과정에서 시위학생들이 복도에 석유를 뿌리고 불을 질러 경찰관 7명이 목숨을 잃은 참사다. 시위학생들은 대법원에서 방화치사죄로 유죄판결까지 받았다. 그런데 민주화보상심의위는 방화치사 행위를 ‘민주헌정질서 확립에 기여하고 국민 자유와 권리를 회복·신장시킨 활동’으로 인정했다. 학생들에겐 1인당 평균 2500만원씩의 보상금까지 지급됐다. 정권의 정치적 이해에 따라 사법적 판단이 무시당한 사례라는 지적이 많았다.

민가협엔 민주화보상심의와 관련해 적지 않은 혜택을 본 사람들이 포함돼 있다. 다시 말해 이들은 전 의원이 준비 중인 법개정으로 심의가 번복될 경우 피해를 볼 가능성이 큰 이해당사자들이다. 이해당사자들이 정당한 입법활동을 하는 국회의원을 폭행한 것은 입법부에 대한 테러나 마찬가지다.

국회의원의 입법활동은 이해당사자들의 위협이나 폭행으로부터 철저하게 보호되어야 한다. 그래야 공정한 입법이 가능하다. 이해당사자들은 정당한 절차를 거쳐 의사표현을 하면 된다. 해당 의원을 면담하거나 서면으로 의견을 낼 수도 있고, 공청회에 참석해 발언할 수도 있다. 자신들을 대변하는 야당 의원을 통해 입법심의 과정에서 의견을 반영할 수도 있다. 민주 절차를 무시하는 폭력엔 민주화란 이름이 어울리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