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옴부즈맨 칼럼]'색깔논쟁' 실체·진실 파헤쳐야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7면

국민회의 이석현 (李錫玄) 의원이 이른바 '명함파동' 으로 말미암아 소속정당을 탈당했다.

중앙일보는 이 기사를 '간추린 소식' 으로 짤막하게 처리했는데, 독자들의 관심도 (關心度) 로 미뤄 좀더 자세히 다뤘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없지 않다.

내가 여기서 말하는 독자들의 관심도란 그야말로 제한적인 것이기 때문에 그것이 곧 전체 독자를 뜻하는 것이라곤 할 수 없을는지 모른다.

그러나 나에게 걸려온 전화라든지, 내가 만난 독자들의 관심도는 전에 없이 엄청난 것이었다.

그것은 어떤 의미에서 오익제 (吳益濟) 씨의 입북 (入北)에 못지 않은 파문을 일으키고 있다는 느낌마저 받을 정도였다.

공교롭게도 吳씨와 李의원이 같은 당 소속이었다는 점에서 파문이 증폭되고 있는 것이 현실적인 상황인데, 이에 대한 국민회의측 대응 뿐만 아니라 李의원의 자진 탈당 경과와 변 (辯) 까지도 상세히 보도하는 것이 옳지 않았을까 싶다.

물론 이런 대응이란 국민회의나 李의원의 처지에선 이른바 '색깔논쟁' 을 차단하기 위한 고육책 (苦肉策) 인 것처럼 여겨지는 형편에서 구태여 그것을 크게 보도할 필요가 있느냐고 반론 (反論) 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신문이 '색깔논쟁' 에 부질없이 끼어드는 것은 옳지 않은 일이지만 '색깔논쟁' 의 실체와 진실을 밝히는 것은 마땅히 해야 할 일이라는 인식이 있어야 할 것같다.

李의원의 경우만 하더라도 '명함파동' 의 실체가 무엇인지, 그리고 그것이 탈당까지 해야 할 사안인지를 냉철히 취재하고 파고드는 자세가 있어야 했다는 이야기다.

사실 여태까지의 경과로 보더라도 '색깔논쟁' 의 실체를 신문이 앞장서서 파헤친 일이란 거의 없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것은 어떤 의미에서 오늘날까지도 '색깔논쟁' 이 그대로 활개치고 있는 원인의 한가닥을 이루고 있는 셈인데, 더 이상의 '색깔논쟁' 을 종식시키기 위해서라도 신문이 반드시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진지하게 검토해 보아야 할 줄 안다.

일부 사회지도층 인사들은 국력의 소모를 막기 위한다는 명분아래 '색깔논쟁' 과 '병역시비' 의 덮어두기를 제안하고 있는 것으로 들린다.

그러나 '진실' 과 '덮어두기' 가 지니는 의미를 생각할 때 전자 (前者) 를 밝히지 않고 후자 (後者) 만 선호한다면 그것은 결과적으로 더 큰 국력 소모로 귀결될 염려가 있는 것이다.

나는 '색깔논쟁' 을 보면서 우리의 신문이 뉴욕 타임스나 워싱턴 포스트였다면 어떻게 대응했을까를 생각해 보곤 한다.

사실 그런 입장에서 문제를 들여다보면 일차적으로 '색깔논쟁' 의 책임은 관계당국에 귀착된다고 아니할 수 없다.

하고 많은 선거철만 되면 '색깔논쟁' 이 제기되는 배경이나 자료 제공을 하는 것이 누구인지를 가린다면 관계당국의 책임이 면피되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색깔논쟁' 의 당사자에게 그 책임이 없을 수는 없다.

도대체 무엇이 문제였기에 그것이 마치 숙명인 것처럼 멍에로 씌워져 있고, 면죄부를 받지 못한 이유가 어디에 있는지 도무지 알 수 없는 노릇이기 때문이다.

지난날의 군사독재체제 아래서는 일방적으로 특정 정치인의 전력 (前歷) 과 색깔이 매스컴에 제공되고, 그것이 보도되었던게 사실이었다.

거기엔 사실 확인과 진실 추구에 많은 어려움과 한계가 어쩔 수 없이 내재 (內在) 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나 이제는 이른바 문민시대가 아닌가.

매스컴이 지난날의 전철 (前轍) 을 관행처럼 되밟을 이유도 없고, 그것이 용인될 이유는 더군다나 없다.

이제는 신문을 비롯한 정상적인 매스컴이 '색깔논쟁' 의 실체적 진실을 누구의 요구에 의해서가 아니라 자발적인 의지와 책무감으로 밝혀야만 할 때인 것같다.

그렇게 함으로써 '색깔논쟁' 으로 말미암은 국민적 당혹과 의심에 마감표를 찍어야만 하리라고 믿는다.

이번 대통령선거 보도에서는 비단 색깔문제 뿐만 아니라 병역시비와 도덕성 문제, 그리고 이른바 정치자금 문제에서 매스컴의 철저한 의식전환과 취재가 있어야 한다는 것을 강조해 두고 싶다.

특히 정치자금 문제와 관련해선 '정치자금' 이란 이름이 지니는 마성 (魔性) 때문인지 자칫 그 개념의 인식에서 착오와 혼동을 일으키는 경향이 보도를 통해 엿보인다.

나는 정치자금 이야기가 나올 때마다 옛날의 정치지도자들, 특히 유석 (維石) 조병옥 (趙炳玉) 박사나 유진산 (柳珍山) 선생 등을 머리에 떠올리곤 한다.

그분들은 이른바 정치자금 문제로 곤욕을 치른 이들인데, 지나놓고 보니 정치자금에 그토록 깨끗할 수가 없었다.

여기서 깨끗하다는 뜻은 정치자금을 한푼도 받지 않았다는 것이 아니라 받은 정치자금으로 호의호식 (好衣好食) 하고 자손에게 재산을 남기는 따위의 치부가 전혀 없었다는 뜻이다.

사실 정치에선 정치자금이란 이름으로 그것이 치부의 수단이 되는 것이 절대적인 금기 (禁忌) 다.

그런데 우리의 정치현실에서 그것이 결코 그렇지 않다고 장담할 수 없다고 일컬어진다.

이런 것을 바로 세우는 일은 정치제도의 문제이기보다 정치지도자의 도덕성과 매스컴의 자세에 달렸다고 해야 할 것같다.

그런 점에서 매스컴은 정치자금과 비자금 (비資金) , 그리고 음성자금 (陰性資金) 의 개념과 관계를 명확히 하고, 나아가 대선 후보자들의 납세상황과 재산형성과정에 대한 검증에 철저를 기해야 하리라고 믿어 마지 않는다.

<이규행 본사 고문>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