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票의식한 방만예산 안된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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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내년도 예산편성을 놓고 정부와 여당의 갈등이 심화되고 있다는 보도는 매우 걱정스럽다.

그러지 않아도 기아사태에 대한 해법과 경제운용 기조를 놓고 정부와 여당이 다소 상이한 자세를 보여 혼선이 빚어지고 있는 판이다.

아무리 임기말이라지만 이렇게 총체적으로 지도력이 흔들리면 경제혼란이 가속화할까 걱정이다.

더구나 주식시장과 외환시장의 동요가 심하고 고용사정도 날로 악화되고 있다.

정부와 여당이 협력해도 현재의 어려운 경제난국을 헤쳐 나가기 쉽지 않은 상황이다.

여당 일각에서는 강경식 (姜慶植) 부총리가 경제원칙만 고집하고 여당의 요구를 수용하지 못하면 경질해야 한다는 주장까지 한다고 한다.

우리가 여당의 이런 태도보다는 현시점에서 다소 문제가 있지만 정부입장이 낫다고 보는 이유는, 이미 자금경색을 해소하기 위해 금융기관에 특융과 자금공급을 하기로 한 마당에 재정마저 팽창시킬 수 없기 때문이다.

경기악화로 인한 세수감소 때문에 지출을 줄여도 재정적자가 날 판인데 국채를 발행해서 집행해야 할만큼 긴급한 사업이 있는지 이해할 수 없다.

여당은 대선을 의식해 사실상의 적자예산 편성을 요구하고 있지만 정부로서는 현실적인 대안이 마땅치 않다.

여당이 농업.교육.방위비 및 사회간접자본에 대한 지출증가 요구의 명분을 김영삼 (金泳三) 대통령의 공약이행에 두고 있는 것은 정치적 고려에서 이같은 요구를 하고 있음을 말해 준다.

말인즉 야당이 공약이행 여부를 공격할 것을 미리 차단하기 위해서라지만 궁색한 논리가 아닐 수 없다.

표를 의식해 비합리적 예산증가를 꾀하면 오래지 않아 그 결과가 어떨 것임은 자명하다.

정부와 여당은 현재의 경제위기에서 벗어나려면 먼저 기아사태 해결에 힘을 합해야 한다.

어떤 형태로든 기아를 둘러싼 기업간 혹은 기업과 금융기관간 거래의 불확실성이 제거돼야 한다.

부도가능성 때문에 어음거래가 중단되는 이상 경기악화는 불가피하고 이 경우 예산을 늘릴 수 있는 여지는 더욱 좁아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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