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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놀이 아스라한 추억속으로 사라지고 전자오락이 주인행세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28면

3~4m 앞에 석필로 그은 하얀 선. 어머니에게 심부름 삯으로 받은 10원짜리를 손에 쥔 아이의 표정이 사뭇 진지하다.

"철이보다는 잘 던져야 할텐데…. " 던진 동전이 선에 제일 가까이 닿아야만 나머지를 따먹을 수 있다.

10여년전만 하더라도 골목길이나 공터에 흔히 보이던 '돈치기' 의 한 장면이다.

그 시절 놀이들에는 평평한 땅과 분필과 잘 생긴 차돌 몇개, 엄지손가락을 내밀고 "여기 붙어라" 를 외치면 순식간에 모여드는 꼬마들이 유일한 준비물이었다.

정족수 2명이면 해결되는 땅따먹기도 자주 하던 놀이. 둥그런 원이나 네모를 그려놓고 그 안에 자기 뼘으로 반원을 만들어 집을 삼는다.

둥글납작한 돌로 만든 말을 손가락으로 세번 튕겨 도로 집으로 돌아오게 하면 말이 지나간 자국만큼 자기 땅으로 만들 수 있다.

이 둥근 돌을 치면서 하는 놀이를 전라북도에서는 '꼭꼬락' 이라고도 하며 제주도에서는 '뽐을 땅' 이라 부른다.

짧은 자를 땅바닥에 놓고 긴 막대로 한쪽 끝을 쳐 튀어오르게 한뒤 다시 긴 막대를 휘둘러 짧은 자를 날려보내는 자치기, 못쓰는 종이로 단단하게 접은 딱지로 뒤집기 내기를 하던 딱지치기, 기왓장을 갈아만든 공기돌로 꺾기 묘기를 보이던 공기놀이, 굴렁대에 굴렁쇠를 끼워 목표지점을 되돌아오는 굴렁쇠놀이 등은 30대 이상에게 향수를 자아내게 하는 우리의 놀이였다.

산과 들을 뛰어놀며 벌이던 놀이들은 체험학습 그 자체. 술래가 뜯어온 풀과 종류가 똑같은 풀을 가져오는 내기를 벌이는 '풀싸움' 은 훌륭한 생물 공부였다.

손바닥만한 넙적한 돌을 세워놓고 서로 맞추어 쓰러뜨리는 '비석치기' , 한쪽 발목을 잡고 깽깽이를 뛰며 동그라미 밖으로 상대방을 밀어내는 '개금발쌈 놀이' , 낫을 부메랑처럼 날려 가장 멀리 보내는 내기인 '낫치기' 등은 운동신경을 발달시켜 주는 역할도 했다.

계절마다 놀이의 주종목도 달랐다.

여름이면 대나무로 손잡이를 만든 그물 반두를 들고 강으로 내로 고기잡이를 다녔다.

댓조각으로 만든 통발을 물 속에 박아 미꾸라지를 잡고 무명실로 만든 좽이로는 붕어를 낚았다.

고무줄 새총으로 가을날 참새를 잡으러 돌아다니고 꽁꽁 언 얼음판 위에서 벌이던 팽이치기.썰매타기로 한 철을 들떠 지냈다.

그러나 언니와 마주앉아 탄탄하게 묶은 무명실로 장구도 만들고 젓가락도 만드는 실뜨기놀이, 엿장수에게 엿을 사 가운데를 뚝 끊어 구멍이 제일 크면 나머지 엿을 다 갖는 엿치기, 갖가지 노래에 맞춰 뛰놀던 고무줄 놀이 등 추억 한자락을 차지하던 어린 시절 놀이들이 사라지고 있다.

빈터는 주차공간으로 먹혀버리고 학원시간에 쫓기는 요즘 아이들은 다마곳치와 컴퓨터 앞에 앉아 코를 박고 저마다 게임에 몰두할 뿐이다.

골목대장은 없어지고 참한 돌멩이 하나 구할 수 없는 삭막한 아스팔트만 남아 있어 이 시대 아이들의 추억거리가 걱정스럽다.

최근 출간된 인형제작자 김영철씨의 작품집 '잊혀진 옛놀이' (포인트라인刊) , 일본과 우리의 놀이문화를 비교한 '빼앗긴 정서 빼앗긴 문화' (다림) , 민화속에 보여지는 전통놀이를 설명한 '옛날 사람들은 어떻게 살았을까' (창작과비평사) 는 어른들에게 잊혀진 옛 기억을, 아이들에게는 공동체 문화의식을 일깨워 준다.

홍수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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