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리 앞에 파벌 없다 … 첼시판 ‘히딩크 매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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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거스 히딩크(63·사진) 첼시 감독의 마법이 유럽축구연맹(UEFA) 챔피언스리그마저 뒤흔들었다.

히딩크 감독이 주술을 걸자 팀을 떠나겠다며 투덜거리던 디디에 드로그바(31)가 다시 춤추기 시작했다. 첼시는 26일(한국시간) 영국 런던 스탬퍼드 브리지에서 열린 유벤투스(이탈리아)와의 대회 16강 1차전 홈경기에서 전반 12분 드로그바가 결승골을 터뜨려 1-0으로 승리했다.

히딩크 감독은 지난 15일 왓퍼드와의 FA컵 8강전 때는 관중석에서 벤치의 레이 윌킨스 코치에게 원격 작전지시를 해 3-1 역전승을 일궜다. 감독 데뷔전이었던 22일 애스턴 빌라와의 원정경기에서는 10년 무승(6무3패) 징크스를 날려버리며 1-0으로 이겼다. 잦은 감독교체로 갈 곳 몰라 흔들리던 첼시는 히딩크 부임 열흘 만에 이탈리아 최고 명문 유벤투스마저 깼다. 도대체 히딩크는 무엇을 바꿔놓은 것일까.

◆포지션 파괴한 발상 전환=히딩크는 런던에 도착하자마자 “어떤 일이든 일어날 수 있다”며 프리미어리그 역전 우승에 도전장을 던졌다. “(감독 계약 기간인) 3개월은 짧지만 실패해도 변명은 않겠다”며 선수들에게도 ‘불만 늘어놓지 말고 따라오라’는 압박의 메시지를 던졌다. 그러고는 “체력이 형편없다”면서 선수단에 긴장감을 불어넣었다.

이후 스콜라리 전 감독 아래서 ‘백조’로 부활한 니콜라 아넬카와 ‘미운 오리새끼’였던 드로그바를 함께 기용하는 ‘위험한 동거’를 시도했다.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아넬카는 애스턴 빌라전 결승골로, 드로그바는 유벤투스전 결승골로 히딩크에게 2연승을 안겼다. 왓퍼드전에서 해트트릭을 터뜨린 아넬카는 “골을 넣은 것보다 드로그바와 투톱으로 뛸 수 있어 좋았다”며 화해의 메시지를 던졌다.

아넬카-드로그바 투톱이 성공한 데에는 히딩크 감독의 주도면밀한 전술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좌우 풀백인 애슐리 콜과 보싱와의 공격 가담을 자제시키는 한편 데쿠를 공격형이 아닌 수비형 미드필더로 기용하는 파격으로 수비를 안정시켰던 것이다.

◆소외된 선수들 껴안아=주제 무리뉴와 스콜라리 전 감독은 부임하자마자 자기가 좋아하는 선수들을 영입했다. 하지만 히딩크는 혈혈단신 잉글랜드로 건너왔다. 무리뉴파(派), 스콜라리파로 갈라진 첼시에서 더 이상의 파벌을 만들지 않기 위해서다.

히딩크는 그동안 소외됐던 드로그바를 비롯해 미하엘 발라크, 마이클 에시엔, 살로몬 칼루 등을 중용했다. 데뷔전에서 ‘스콜라리의 가신’이었던 데쿠를 선발로 내세운 뒤 가장 먼저 교체시키며 붙박이 주전들에게 무언의 경고를 던졌다.

히딩크 포용정책의 키워드는 ‘소통’이었다. 그동안 스콜라리를 지지했던 첼시의 터줏대감 램퍼드는 “히딩크와 대화를 많이 나누며 깊은 인상을 받았다. 특별한 기운이 느껴졌다”며 그의 편에 섰다.

히딩크는 유벤투스전 승리에 만족하지 않았다. “70분간 조마조마했다. 우리는 더 많은 골이 필요했다”며 아직 배가 고프다는 표정이었다.

한편 리버풀(잉글랜드)은 원정에서 스페인의 거함 레알 마드리드를 1-0으로 격침시켰고, 바이에른 뮌헨(독일)은 스포르팅 리스본(포르투갈)을 5-0으로 대파했다. 비야레알(스페인)과 파나티나이코스(그리스)는 1-1로 비겼다.

최원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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