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금융안정책, 그 後가 문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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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제일은행에 대해 한은 (韓銀) 이 특별융자를 하는등 정부와 중앙은행의 금융시장 안정책이 확정됐다.

은행을 위시해 모든 금융기관에 감당할 수 없는 파고 (波高) 로 번져나가는 금융불안을 응급조처 수준에서나마 일단 차단해 놓고 보자는 것이 이번 극약처방의 목적이다.

이번 조처는 그 자체만 놓고 잘된 것이냐, 못된 것이냐를 가리려는 것은 의미가 없다.

왜냐하면 이것은 어디까지나 응급조처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

문제는 한국경제가 지금 앓고 있는 치명적 질병을 향후 어떻게 치유하느냐에 있다.

이것을 치유해내지 못하면 이 처방은 오히려 병을 덧나게 했다는 비난만 받게 될 것이다.

만일 잘 치유해 나간다면 적절한 조처였다는 찬사를 받을 수도 있다.

한국경제는 이미 오래 전부터 저생산.고비용 악순환구조를 심하게 앓아 왔다.

이렇게 된데는 기업.금융.정부.노동조합의 네 경제주체가 모두 공범 (共犯) 역할을 해 왔다.

이 악순환구조 속에서 한국경제의 치명적 증세가 나타난 부위 (部位) 는 당연히 기업이었다.

기업부도와 도산행진이 그것이다.

저생산.고비용이라는 병 때문에 수출과 내수를 막론하고 매출이 질과 양에서 부진하게 되자 종전에는 그런대로 굴러갈 수 있던 기업의 부채과다가 터져 나왔다.

기업의 부채과다는 곧 금융기관의 여신과다다.

당연히 금융불안이 야기돼 금융기관 자체가 부도 위험에 노출됐다.

특히 나라의 경상수지적자가 한해 2백억달러에 이르면서 외국 채권자의 눈에는 한국의 대외신용도가 심각하게 떨어지고 만다.

국내에서 한국금융기관이 악성채권과다의 궁지에 몰리게 된 것을 지켜보는 외국의 채권자들이 여신을 조이게 되는건 당연하다.

이 현상이 지속되거나 악화되는 것을 막으려면 경쟁력을 회복하는 도리밖에 없다.

우선 기업과 금융기관은 엄격한 자구 (自救) 프로그램을 세워 실천해야 한다.

현재의 군살을 빼야 하는 것은 물론, 타성으로 지금도 군살을 찌우고 있는 일을 하고 있으면 즉시 그만 둬야 한다.

시장셰어 늘리기에만 눈 높이를 마춘 투자는 군살을 더 찌게 할뿐이다.

이런 투자는 이젠 자살적인 행위가 되고 말았다.

시장셰어 아닌 품질과 가격을 놓고 경쟁을 벌이되 그 표준은 매출액이 아니라 경제적 부가가치 (EVA) 나 그에 유사한 개념의 것이 되어야 한다.

정부가 이번 금융시장안정책을 발표하면서 지원대상인 은행과 종금회사에 군살빼기 자구노력을 선결조건으로 내건 것은 그런 의미에서 당연하다.

그러나 절대로 간과해서는 안될 또 하나의 전제조건이 있다.

지금까지 우리나라 경제를 군살덩어리로 만든 원죄는 정부에 있다는 사실이다.

시장에 불필요한 규제와 간섭, 특히 산업에의 진입과 퇴출, 기업운영과 관련된 독선적이고 반 (反) 시장경제적 정부 규제가 오늘날 한국경제의 군살, 즉 저생산.고비용 구조의 근본원인이다.

이것이 철폐되지 않고는 한국경제가 회생될 길은 없다.

금융기관은 기업의 이면 (裏面) 이다.

기업이 쓰러지고 있는한 어떤 응급조처로도 은행이니 종금사를 잠간동안 이상으로 살려 낼 도리는 없다.

기업이 살려면 기업의 구조조정을 촉진해야 한다.

기업이 인적 (人的).물적 (物的) 군살을 빼는 것을 가로 막고 있는 노동관련법을 고치고 세제도 더 합리적으로 고쳐야 한다.

경영주나 경영진에 문제가 있는 기업은 증권시장을 통해 제때 경영권이 팔려갈 수 있도록 만들어야 한다.

특히 은행의 완전한 사 (私) 기업화는 절실하다.

주인있는 경영을 함으로써 은행의 방만한 대출과 고비용경영을 막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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