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공부나 하지 농구는 무슨…] 6. 연고지 확정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22면

▶ 한국 프로농구 첫해에 활약한 외국인 선수들. 재미 농구인들의 도움으로 LA에 캠프를 열고 선수를 선발했다.

프로는 연고지제가 활성화돼야 성공한다. 서울엔 연고 구단을 두지 않고 경기만 열기로 했다. 지방 도시를 각 구단의 연고지로 삼기로 했다. 구단들이 희망하는 연고지를 접수했더니 대부분 수도권 도시를 선호했다. 수원.인천이 가장 인기 있었다. 교통정리가 쉽지 않았다.

인천에 자동차공장을 둔 대우는 시의 적극적인 유치 노력에 힘입어 인천을 연고지로 정했고, 삼성은 대규모 전자공장이 있는 수원을 차지할 수 있었다. 기아는 부산, 동양은 대구, 현대는 대전을 연고지로 정했다. SBS가 문제였다.

SBS는 회사 공식명칭이 '서울방송'이라는 이유를 들어 지방으로 갈 수 없다고 했다. 고심 끝에 큰 경기를 치를 수 있는 체육관조차 없는 안양을 연고지로 정했다. 안양은 서울방송 시청권에 있고 발전 가능성이 크다는 이유였다.

이 무렵 산업은행을 인수한 나래텔 측엔 춘천이나 원주를 선택하도록 했다.

당초 프로 동참이 불투명했던 나래텔은 상무 대신 참여하게 됐다. 외국인 선수를 기용할 수 없는 상무는 경기 때 동네북 신세가 될 게 뻔했기 때문에 프로리그에 참여하지 않기로 했다.

기업은행은 프로화에 적극적이었지만 국책은행이란 성격 때문에 결단을 내리지 못하고 있었다. 그러던 중 뜻밖에 나산그룹이 기업은행 농구단을 인수해 프로 참여를 추진하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다. 나도 모르는 새 기업은행 코치진과 접촉해 농구단을 전격 매입한 것이었다.

나산그룹 안병균 회장은 윤세영 회장과도 잘 아는 사이인 데다 안 회장의 고향이 전남 나주였기 때문에 연고지도 자연스럽게 광주로 낙착됐다.

이렇게 해서 프로농구 원년리그엔 ▶수원 삼성▶대전 현대▶부산 기아▶안양 SBS▶인천 대우▶대구 동양▶원주 나래▶광주 나산 등 8개팀이 참가하기로 확정됐다.

프로농구 설립위원회는 법인 설립 인가가 나기도 전에 외국인 선수 선발을 서둘렀다. 주기선.윤명현.차명도씨 등이 주축이 된 LA 미주농구협회의 도움을 받아 미국에서 한국 프로농구 참가를 원하는 선수들을 모집해 '트라이아웃'을 하기로 결정했다.

그땐 프로야구나 프로축구도 외국인 선수 출전을 허용하지 않고 있었다. 당연히 문화체육부는 프로농구 트라이아웃'을 불허한다고 통보해 왔다. 이에 대해 나는 국제스포츠계에서 한국 농구계의 신용이 하락할 것을 우려해 신중하자는 입장이었지만 젊은 위원들은 트라이아웃 강행을 주장했다. 첫 외국인 선수 트라이아웃은 불법이었던 셈이다. 여론 동향을 살피던 문화체육부는 다행히 뒤늦게나마 외국인 선수 수입을 허락했다.

1996년 11월 9일부터 LA의 한 대학에서 트라이아웃을 하기로 하고 각 구단 관계자들은 대거 미국으로 떠났다. 그런데 정작 나는 국내에 있어야 했다.

사단법인 인가가 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한국농구연맹(KBL)은 8개 구단 구단주들이 회원이 돼 법인을 만드는 것이기 때문에 모든 서류를 갖춰 신청하는 데 인감도장을 무려 1000여번 찍어야 했다. 대기업 총수의 인감도장을 받는 것부터 쉽지 않았다. 더구나 당시 연맹 사무실이 서초구에 있었기 때문에 먼저 서초구청에 설립 인가 신청서를 내야 했다. 어렵게 서초구청을 통과하면 다시 서울시청으로, 다시 문화체육부로 부지런히 쫓아다녔다. 11월 22일 드디어 '사단법인 한국농구연맹'이 정식으로 탄생했다.

김영기 전 한국농구연맹 총재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