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뮤지컬 '명성황후'의 개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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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에바페론처럼 몰락한 양반집안에서 태어나 최정상까지 오른 강인한 여성, 민비를 소재로 만든 '명성황후' 는 세미 오페라식의 장엄한 뮤지컬이다."

미국 현지 뉴욕타임스의 극찬이다.

뉴욕타임스의 공연평은 브로드웨이를 향해 몰려드는 세계 공연가들이 하늘처럼 떠받드는 권위를 자랑한다.

'졸작' 이라는 평가 한마디로 막을 내리고 '장엄한 뮤지컬' 논평 하나로 장기공연을 할만큼 신뢰받는 공연평이다.

이미 연극평이 나오지 않을 무렵부터 좌석 예매가 끝났을 정도로 '명성황후' 는 국내 공연에서도 성공한 대작이다.

뭔가 되는게 없다는 우울한 심정에 젖어있는 우리들에게 '명성황후' 개가는 박찬호의 연승과 함께 상쾌한 바람처럼 스며드는 낭보 (朗報) 다.

'명성황후' 는 원래 이문열 희곡 '여우사냥' 을 각색한 것이다.

이를 윤호진 연출, 윤석화 주연의 뮤지컬로 탄생시켰다.

막이 오르면 피어오르는 버섯구름, 원폭투하가 있었던 1945년 숫자가 장막위에 새겨지고 시간은 거꾸로 흐른다.

간택의 기쁨으로 시작되는 한 여인의 아름답던 시간부터 잔인하게 난자당한채 불태워지는 순간까지, 무대는 현란한 의상과 긴박한 반전을 통해 관객을 사로잡는다.

여기에 주역들을 오페라 전문가수로 바꾼게 이번 작품이다.

'명성황후' 의 개가는 우리의 주제, 우리의 역사를 음악언어로 전달하고 감동을 얻어낸 우리 문화상품의 세계화를 뜻한다.

문화의 국제화란 자신의 문화와 역사를 주제로 해서 세계화시키는 작업임이 이 작품을 통해 입증됐다.

일제 만행과 우리 민족의 수난사를 2시간반의 짧은 시간속에서 세계에 알리고 이해시키고 감동을 얻어내는 우리 역사의 세계화작업이기도 하다.

종속적인 세계화 동참은 문화의 예속화를 낳는다.

문화의 맹목적 수신자 아닌 주체적 발신자가 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우리는 '명성황후' 에서 확인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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