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법안 상정 거부는 학생의 수업 거부와 같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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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2월 국회의 마지막 주에서도 법안 처리는 꽉 막혀 있다. 한나라당은 주요 쟁점 법안을 상임위별로 처리하자고 하나 민주당이 응하지 않는 것이다. 상임위에 상정된 법안도 심의가 지지부진하고 휴대전화 감청 허용, 사이버 모욕죄 신설, 불법 집회 피해소송, 신문·방송 겸영 등과 관련된 법은 아예 상정조차 되지 않고 있다. 특히 미디어법에 대해 민주당은 상정 불가 ‘대못’을 박아놓곤 한나라당이 직권 상정 가능성을 시사하자 물리적 봉쇄까지 준비하고 있다. 여차하면 지난 연말의 ‘해머·소화기’ 폭력 국회가 재연될 판이다.

입법은 국회의 가장 기본적인 권한이자 의무다. 법안은 국회에 제출되면 상임위에 상정되고 법안심사 소위에서 다뤄져야 한다. 이후 공청회나 토론 등 심도 있는 논의를 거치고 상임위·법사위·본회의의 표결로 마무리되는 것이다. 이것이 법(法)의 탄생과정이고 의회민주주의의 길이다. 이는 헌법과 국회법에 명시돼 있다.

한나라당은 일부 쟁점 법안을 상임위에 상정한 후 여야와 정부가 참여하는 여야정 협의체에서 다루자고 제안했다. 민주당은 미디어법의 경우 상임위 상정 이전에 사회적 논의기구를 만들어 다루자고 한다. 여야정 협의체나 기타 논의기구는 모두 상임위 중심의 심의라는 국회 절차에 어긋난다. 쟁점 법안마다 여야 정책위의장이나 외부 기구의 손을 빌리면 정당이나 시민단체에 밀려 국회는 제 본분을 잃게 된다. 여야정 협의체가 궁여지책임은 알겠으나 정도(正道)는 아니다.

민주당은 주요 쟁점 법안에 반대하는 논리를 나름대로 가지고 있다. 그 논리를 장외로 빼돌릴 게 아니라 당당하게 상임위 테이블에 올려놓아야 한다. 야당이 논리 대결에서 민심을 얻으면 집권당이 과반수라 해도 법안을 강행 처리하지 못할 것이다. 대화와 토론 봉쇄는 민심의 역풍만 부를 뿐이다. 민주당은 지난해 쇠고기 촛불사태 때 82일간이나 개원 국회의 등원을 거부했다. 이는 학생이 등교를 거부한 것이다. 법안의 상임위 상정을 거부하는 것은 등교한 학생이 수업을 거부하는 것과 같다. 민주당은 ‘거부(拒否) 전문 정당’이란 오명을 자청하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