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토리] “왼손 젓가락질로 뇌졸중 이겼습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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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무부 (68·경희대 생물학과) 명예교수의 날개가 부러진 것은 2006년 12월 16일이었다. 그는 날짜와 당시 상황을 정확하게 기억했다. 쓰러지기 전날은 이랬다.

경기도 오산·경남 거창을 잇따라 방문해 학생들에게 새를 주제로 ‘신바람나게’ 강연을 했다. 저녁 식사를 마친 뒤 체기가 있었다. 그러나 다음 날 오전 전북 무주에서 환경단체 초청 강연 일정이 잡혀 있어 밤 11시 쯤 현지에 도착했다. 아침에 어지럽고 토할 것 같은 느낌이 들었지만 손가락 끝을 바늘로 딴 뒤 오전 10시부터 1시간30분간 강연을 마쳤다. 그날 서울로 올라오는 고속도로 안에서 정신이 몽롱해지는 등 증상은 더 심해졌다.

“고속도로가 밀려 무주에서 서울로 오는데 6시간이 걸렸어요. 정말 멀게 느껴졌지만 완전히 정신줄을 놓지는 않았어요. 걸어서 경희대병원 응급실에 갔는데 당장 입원하라고 하더라고요.”

진단명은 뇌혈관이 막힌 뇌경색(뇌졸중의 일종)이었다.

지금도 잘 이해가 안 돼요

“하루에 보통 산 두 곳을 오르고, 평소 술·담배를 하지 않고, 혈압도 정상이고, 평소 감기도 거의 걸리지 않던 내게 뇌졸중이 왜 생겼는지 지금도 이해가 잘 되지 않아요.”

그는 굳이 원인을 꼽자면 과로·스트레스 정도일 것으로 자가 진단했다.

강동성심병원 신경과 김우경 교수는 “스트레스·과로보다는 고령·고혈당·고콜레스테롤 수치·과식 등이 윤 박사의 뇌졸중 발병에 더 직접적인 영향을 미쳤을 것”으로 추정했다.

내 나이는 영원한 53세

경희대병원에 입원한 뒤 오른쪽 팔·다리에 마비가 왔다. 눈도 잘 안 보이고 말도 제대로 할 수 없었다. 뇌혈관조영술 같은 시술이 불가능한 뇌의 안쪽 부위가 막힌 상태였다. 그는 입원기간에 혈전용해제 등 약물치료와 재활치료를 주로 받았다(주치의는 신경외과 이봉암 교수).

그는 평소 자신이 53세라고 생각하며 늘 바삐 살아왔다.

“차트에 66세라고 적혀 있어 너무 놀랐어요. 간호사에게 53세로 바꿔달라고 부탁했는데 들어주더군요.”

가톨릭대 성모병원 나형균 교수는 “나이를 잊고 지내는 것은 건강에 좋지만 나이가 들면 찾아오기 쉬운 질병을 무시하는 것은 안 된다”고 조언했다.

새 보고 싶어 두 달 만에 서둘러 퇴원

병상에 누웠지만 마음은 새를 찾아 전국의 저수지·산·들로 떠돌았다. 짜증이 늘고 자주 우울해졌다.

“(증상 탓에) 머리에서 매미·귀뚜라미 소리가 들렸어요. 도무지 생각을 할 수 없었어요. 10분만 뭔가에 집중해도 눈이 피로하고 어지러웠죠. 조롱에 갇혀 있는 새 신세였죠.”

두 달만에 그는 서둘러 퇴원했다. 걷지도 못했지만 부인 김정애씨와 함께 거의 매일 가평·청평을 다녀왔다. 그리워하던 새를 보니 병이 치유되는 듯했다.

2007년 출간된 『날아라. 어제보다 조금 더 멀리』는 그가 가장 아플 때 아내의 도움을 받아 쓴 책이다. 발병 1년이 지난 뒤 지팡이를 짚고 다시 걷는 데 성공했다. 넉 달 전부터는 목욕과 옷 갈아입기도 가능해졌다.

새와 다시 만나면서 요즘 그는 행복하다. 정년퇴직으로 강의 부담 등 무거운 짐을 털어낸 것도 그에게 활력을 준다. ‘드라이버’인 부인이 외출해서 이동이 힘들 때는 장애인 전용 전동스쿠터를 타고 청계천·벼룩시장 등 서울 시내를 누빈다.


이것만은 지키자

뇌졸중으로 쓰러진 뒤 네 가지는 조심하며 산다. 첫째 계단에서 넘어지지 않는 것이다.

건국대병원 신경과 김한영 교수는 “윤 박사처럼 혈전용해제(또는 아스피린 등 피를 묽게 하는 약)를 복용하는 환자는 출혈이 일어나기 쉽다”며 “다치거나 넘어지지 않도록 각별히 주의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둘째, 식탐을 줄였다. 새를 관찰할 때 필요한 에너지를 얻기 위해 돼지 비계를 즐겨먹었지만 지금은 거의 채식이다. 일주일에 한 번 오리고기를 먹는 데 만족한다.

셋째, 심심하게 먹는다. 어릴 때 섬에서 자라 젓갈 등 짠 음식을 즐겼지만 지금은 된장찌개에 물을 붓고 국물은 먹지 않을 정도로 싱겁게 먹기 위해 노력한다.

넷째, 과로를 피한다. 일이 끝나면 무조건 집에 가서 잔다. 집에서 지압을 받으며, ‘차마고도’ 등 다큐멘터리 프로를 다시 보는 것이 요즘 그의 또 다른 낙이다.

인터뷰를 위해 그를 만난 날은 1월 15일. 서울의 온도가 영하 10도까지 내려간 추운 날씨였다. 이날 윤 박사의 일정은 한강에서 유람선을 타고 ‘신나는 한강, 겨울 철새 여행’을 어린이와 함께하는 것. 1월 1일부터 2월 말까지 일주일에 두 번(하루 두 번) 진행되는 행사다. 그 전날엔 강원도 철원에 가서 두루미·독수리를 보고 왔단다.

부인 김씨는 “인터뷰나 강연하는 것은 아직 무리”라고 꺼렸지만 어린이에게 한강 주변의 새를 알려주는 그의 목소리엔 힘이 실렸다. 참가한 어린이와 함께 기념촬영을 20번도 넘게 했다.

가장 후회하는 것을 묻자 “건강하다는 자만심에 빠져 건강진단을 소홀히 한 것”을 꼽았다.

글=박태균 기자, 사진=안성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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