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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분수대

김치 미스터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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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우리는 언제부터 매운 고추를 먹었을까. 오래전 할머니들은 말씀하셨다. “왜놈들이 처음에 고추를 먹어 보니 이게 독(毒)인 거야. 그래서 조선 사람들을 죽이려고 임진란 때 고추 종자를 뿌렸지. 그런데 조선 사람들한테는 독은커녕 입맛에 잘 맞아 널리 퍼진 거야.”

고추가 16세기 말 일본에서 전해졌다는 것은 학계에서도 정설이었다. 하지만 한국식품연구원 권대영 박사팀이 반론을 제기했다. ‘시경’이나 3세기 문헌인 ‘삼국지 위지동이전’ 이후 초(椒)라는 식물이 수많은 문헌에 등장하며, 최세진의 『훈몽자회』(1527)에도 이 글자의 뜻이 ‘고쵸 초’라고 기록돼 있는 등 본래부터 한국에는 고유종의 고추가 있어 널리 식용으로 사용됐다는 것이다.

이전까지 고추의 도입 시기를 기록한 가장 중요한 문건은 이수광의 『지봉유설』(1614)에 나오는 ‘남만초(南蠻椒)는 독이 있으며 왜국을 통해 들어와 왜개자(倭芥子)라고도 불린다’는 부분이었다. 하지만 권 박사는 남만초와 왜개자는 모두 우리가 먹는 고추(椒)와 다른 식물이라고 주장했다. 기존 연구자들이 1492년 콜럼버스가 신대륙에서 발견한 고추와 한국산 고추는 전혀 다른 품종일 가능성을 배제하는 오류를 범했다고 지적했다.

한국인의 입맛을 감안할 때 16세기 이전에도 고추가 있었다 해서 놀랄 일은 아니다. 다만 이어지는 궁금증은 각종 음식, 특히 김치에 사용한 기록은 왜 별로 보이지 않으냐는 점이다. 1670년 발간된 한글 요리 책자인 『음식디미방』에 나오는 수많은 김치 가운데서도 고추를 사용한 것은 하나도 보이지 않는다. 19세기의 문헌 『규합총서』(1809)에 나오는 김치 중에도 대부분의 종류에는 고춧가루 아닌 실고추가 들어갈 뿐이다.

『한국 음식, 그 맛있는 탄생』의 저자 김찬별은 1933년 조선중앙일보에 실린 ‘우리는 모두 고추 중독자다’라는 기사를 인용해 새빨간 음식의 유행은 그리 오래된 것이 아니라고 주장했다. 이 기사는 ‘하루 세 끼의 반찬이 모두 고추로 양념돼 음식 맛까지도 모두 고추 맛으로 변해 버렸다’며 당시의 풍조를 개탄하는 내용이다.

이에 대해 권대영 박사는 “고추는 소금 못잖게 김치의 장기 보존에 절대적인 조건”이라며 “김치에 고추가 사용된 것이 현재 알려진 것보다 훨씬 빨랐다는 것을 증명해 내겠다”고 의지를 보이고 있다. 과연 한국인의 매운맛 사랑은 반만년 역사에 비춰 볼 때 최근 100년 안팎의 유행일까, 아니면 면면한 전통의 결과일까. 연구 결과가 정말 기대된다.

송원섭 JES 엔터테인먼트 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