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이 만든 수사용 모조지폐는 일련번호가 모두 ‘EC1195348A’로 위조방지용 홀로그램이 짙은 회색을 띠고 있다. 정씨에게 오토바이를 판 박모(31)씨는 “모조지폐는 붉은 인장이 찍힌 미색 띠지에 100만원 단위로 묶여 있었다”며 “시중은행 돈 봉투에 담겨 있어 은행에서 막 찾아온 것 같았다”고 설명했다.
경찰은 정씨 검거를 위해 그가 오토바이를 타고 달아난 서울 강남 일대의 도로에 설치된 폐쇄회로TV(CCTV)를 분석 중이다. 또 박씨에게 “지하철을 타고 왔다”고 말한 것을 근거로 지하철역 CCTV를 입수해 행적을 추적하고 있다. 경찰 관계자는 “현재까지 용의자가 대포폰(다른 사람 명의의 휴대전화) 세 대를 번갈아 사용하며 경찰의 통신 수사를 피해 온 것으로 확인됐다”고 밝혔다.
◆국가 상대로 소송 가능=박씨는 “경찰이 오토바이를 빨리 찾아주겠다고 말할 뿐, 배상과 관련해서는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고 아쉬워했다. 김한중 한국은행 공보국장은 “제작자가 불분명한 위조지폐와 달리 국가기관이 만든 것이 분명한 모조지폐에 의해 피해자가 발생한 경우 국가배상법상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다”고 말했다. 한국은행은 또 경찰청에 “수사용 모조지폐 사용을 자제해 달라”고 요청키로 했다.
공익변호사그룹 ‘공감’의 황필규 변호사는 “공익을 위한다며 국민에게 손해를 감수하란 것은 억지”라며 “더구나 모조지폐가 조잡하다고 거짓말을 해 개인이 주의를 기울일 가능성까지 차단했다”고 지적했다. 또 “고의는 아니더라도 모조지폐가 시중에 유통되게 한 과실에 대해 경찰이 책임을 피하기 어렵다”고 강조했다. 박씨는 “수사 과정을 지켜본 뒤 법적 대응하겠다”고 밝혔다.
이진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