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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톡쏘기]6.뿌뿌소리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28면

스피커 소리가 들리자 어린 물고기들이 가두리 양식장 구석으로 몰려들었다.

공중에선 먹이가 우박처럼 쏟아져내리고 있었다.

물 속에서 뿌뿌 소리가 울리면 영락 없이 공중에서 먹이가 쏟아지게 마련이다.

끼니 때마다 들려오는 그 은은한 소리가 어린 물고기들에겐 어머니의 젖줄이나 진배없었다.

언젠가는 그 소리가 울리지않아 온종일 배를 탈탈 곯은 적도 있었다.

물고기를 길들이기 위한 시련이겠지만 암튼 뿌뿌 소리는 물고기들의 생사여탈권을 쥔 신의 권능임에 분명했다.

두려운 존재이면서도 안락한 생활을 보장해주는 고마운 '빽' 이기도 했다.

그 스피커 소리만 믿고 따르며 먹이 걱정 없이 끼리끼리 어울려 기분 좋게 살아가면 그만이었다.

가두리 양식장에서 바다로 풀려난 뒤에도 뿌뿌 소리는 여전히 끼니 때마다 들려왔고 그때마다 먹이가 쏟아지곤 했다.

생활 터전도 넓어진데다 먹이는 더 풍족해졌으니 물고기들은 더욱 신이 났다.

몸집이 커질수록 먹이의 알도 콩알보다 더 굵어지고 맛도 점점 더 좋아졌다.

물고기들은 윤기가 자르르 흐르는 자기의 몸집이 자랑스러웠다.

그러나 그런 안일한 삶에 회의를 느끼기 시작한 물고기도 더러 있었다.

"눈치 안보며 떳떳이 살 수 없을까?" "나도 그래. 스피커 소리가 나는 연안을 벗어나 좀더 너른 바닷속을 헤엄치고 싶어. " 등이 푸른 고등어와 살갗이 까만 우레기가 속삭였다.

비록 낯선 세계가 두렵고 또래 친구들도 없어 쓸쓸하겠지만 깊고 너른 바다야말로 물고기로 태어나 진정 살아보고 싶은 곳이라 여겼다.

그처럼 용기 있는 물고기들은 뿌뿌 소리가 들리지 않는 너른 바다를 향해 모험의 길을 떠났다.

그렇다고 그들 모두 아주 떠난 것은 아니었다.

배고프면 맛있는 먹이를 뿌려주는 뿌뿌 소리가 못내 그리워 자꾸 되돌아오곤 하는 물고기들도 있었다.

그날도 끼니 때가 되자 연안에서 노닐던 물고기들은 스피커 소리가 들리자마자 모여들어 먹이를 받아먹고 있었다.

그날 따라 유난히 맛있는 먹이가 뿌려져 멀리 있는 고기들까지 떼지어 몰려든 상태라 바닷가는 온통 고기 천지였다.

그때였다.

갑자기 하늘에서 먹장구름 처럼 생긴 그물이 퍼져내리고 이내 비명 소리와 뿌뿌 소리가 뒤섞여 바다를 뒤덮었다.

빠져나가려 발버둥칠수록 그물은 살찐 몸을 옥죄어왔다.

"아!

그래. 그때 고등어를 따라 먼 바다로 떠났어야 했었어. 험난한 바다에서 우리의 양식을 우리가 구했어야 했었어. 달콤한 뿌뿌 소리를 뿌리치지 못했으니 누굴 원망이라도 할 수 있겠어?" "그래. 우리에게 남은 거라곤 무엇인가.

눈치와 기름살로 통통해져 갇힌 몸뚱이밖에 더 있어?

인간들 횟감으로 소주 안주로 오르게 됐으니. 뻔한 종말을 알면서도 못떠난 우리의 잘못이지. " "어허, 그게 어디 우리 양식장 물고기 팔자만 그런가.

줄지어 떼지어 모이는 인간 세상은 어떻던가.

우우 몰려다니며 주는대로 받아먹고 뜯어먹고 몸통도 깃털도 줄줄이 엮여들어가는 사람 세상도 우리 양식장과 무슨 차이가 있겠나. 그나저나 우린 죽어서도 양식장 출신이라 대접도 제대로 못받을 개같은 팔자라니…. " 그물에 걸려든 물고기 족속들이 서로 부비며 몸부림치며 한탄하고 있었다.

줄줄이 그물 안으로 걸려들어오는 물고기들과는 달리 죽을 힘을 다해 뿌뿌 소리를 피해 너른 바다로 도망치고 있는 물고기 한마리가 있었다.

그 물고기는 제 손으로 귓 고막을 쥐어뜯으며 필사적으로 탈출하고 있었다.

김용만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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