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김대중 국민회의 대통령후보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4면

주말 일산 자택에서 기자와 만난 김대중 (金大中) 국민회의 대통령후보의 표정은 어느 때보다 밝았다.

높아지는 유권자 지지율이 그의 기 (氣) 를 잔뜩 돋워준 탓인 듯했다.

그러나 2시간30분여 계속된 중앙일보 김현일 (金玄鎰) 정치부장대우와의 인터뷰가 계속되는 동안 표정과 자세는 그때그때 달라졌다.

야권 후보 단일화 대목에서는 '순정 (純情)' 을 말하는 여인에 가까웠다.

"이번이 마지막, 실수하지 않아야 한다" "우리 정치사에도 미담 (美談) 을 남겨놓겠다" 는 등. 그러나 여당 후보의 아들 병역면제 문제나 김영삼 (金泳三) 대통령에 대한 기대를 묻는 질문에는 논리적 차가움이 느껴졌다.

정책 각론을 얘기할 때는 다른 후보들과 차별화되는 또다른 원숙함을 보이려 했다.

여유와 조급함이 뒤얽힌 가운데 자신의 큰 구상을 밝히는 그에게서 '4전5기 (4顚5起)' 를 향한 여러 모습을 찾을 수 있었다.

- 현재 우리 정치상황에서 최고선 (最高善) 이 정권교체라고 말했는데 왜 그렇습니까. 金총재 중심의 사고 아닙니까.

"정권교체가 바로 민주주의입니다. 민주주의는 정당정치이고 정당정치는 여야간 정권을 주고 받는 것인데 우리는 50년동안 그렇지 못했습니다.

진정한 민주주의.정당정치가 없었던 겁니다."

- 그렇다고 현재의 상황을 민주주의가 아니라고 부정하는 사람도 찾아보기 어렵지 않습니까.

"독재도 아니지만 진정한 민주주의도 아니지요. 관권선거.선거자금의 편중은 여전합니다.

국민 주권이 제대로 행사되지 않고 여야가 대등한 입장에서 대우받지 못하고 있기 때문에 진정한 민주주의가 완성됐다고 할 수 없는 겁니다. "

- 총재께서 강조하는 진정한 민주주의가 되면 국민들에게 현실적으로 돌아가는 이익은 어떤 것입니까.

"역대 대통령들이 정권이 야당에 갈 수 있다고 생각했으면 광주에서 그렇게 무도한 짓도 안했을 것이고, 1조원이 넘는 대선자금을 쓰거나 독선.독주도 못했을 겁니다. 한보에 겁없는 자금지원도 하지 않았을 겁니다. 정권교체가 되면 여야가 다 좋아지고 공무원.경제인들도 줄서기가 없어지고 정경유착도 없어집니다. "

- 교체대상으로서 YS정권에 남은 일은 어떤 겁니까. "金대통령은 정권 이양일까지 자진해 대선자금 문제를 해결해야 합니다. 만일 내가 12월에 당선되고, 이를 그때까지 안했다면 당선자로서 2월까지 자진해 하라고 할겁니다. 다음정권에 짐을 넘길 수 없습니다.

국민이 어지간히 이해하면 나는 정국안정을 위해서도 도와줄 겁니다. 또 잘못된 일에 대해 진실은 밝히되 집권자들의 신체적 처벌은 원칙적으로 안하는 것이 좋다는 생각입니다. "

- 최근 '준비된 대통령' 을 특히 많이 강조하는데 이회창후보와 비교해 어떤 비교우위가 있다고 보십니까.

"李대표가 '낡은 세대' 얘기하는걸 보고 '어떻게 저렇게 생각할 수 있는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민주주의.통일.농민.노동자를 위해 목숨걸고 싸우고, 한번도 유혹에 넘어가지 않고 싸운 사람은 정치 오래했다는 죄로 낡은 세대가 되고 5, 6공때부터 양지 (陽地) 만 돌아다닌 사람은 정치 안했다는 것만으로 깨끗한 세대라고 얘기할 수 있느냐는 겁니다.

- 李대표 아들 병역문제의 성격을 어떻게 보시는지요. 정치지도자로서 해법이 궁금합니다.

"병역기피냐, 아니냐는 법적 논쟁보다 중요한 것은 대통령이 되려는 사람의 두 아들이 병역을 필하지 않았다는 것이라고 봅니다. 대통령은 70만 군의 총사령관입니다. 상황에 따라서는 대통령 명령 하나로 사지 (死地) 로 가야 하는 상황입니다.

그런데 체중문제로 안 갔다는게 보통사람 같으면 괜찮으나 국군총사령관이 될 분의 자제이기 때문에 심각한 것입니다. 영국은 포클랜드전에 앤드루왕자가 참전했고 미국 존슨 대통령은 아들이 없어 사위 셋이 모두 베트남전에 나갔습니다. 마오쩌둥 (毛澤東) 도 아들이 한국전쟁에서 전사하지 않았습니까. " (김총재는 3일 李대표의 대국민 유감표명이 있은 직후 "진솔한 사과가 있을 줄 알았는데 아쉽다" 는 말을 전해왔다)

- 야권 후보단일화는 되는 겁니까.

"단일화가 되면 예기치 않은 폭발력, 진짜 플러스 α가 엄청나게 오죠. 상승효과가 없다는 전망은 틀립니다. (팩스로 전송된 신문 사본을 보여주며) 대구 지방신문에서도 엊그제 여론조사를 하니까 야권 단일후보가 6대3 이상의 비율로 앞선다는 결과가 나왔습니다. "

- 단일화를 한없이 기다릴 수도 없을테고, 시기를 언제까지로 잡고 있습니까.

"우리는 8월중 결정을 내리자는 겁니다.

오래 끌수록 여권의 방해공작도 심해지고 3당대표의 출마가 고정되면 어려움이 있습니다. 무엇보다 오래 끌면 국민들이 짜증을 낼겁니다. "

- 얼마전 김종필 (金鍾泌) 자민련총재를 만나보니 뭔가 확실한 보장이 있지 않으면 합의가 어려울 것같다는 느낌도 받았습니다.

"1년이상 공조해 본 결과 정책조정은 큰 문제가 없습니다. 개헌시기는 국민의 동의를 얻어 결정해야 하는데 국민투표로 할 수도 있고 16대 총선을 통해 지지를 얻는 방법도 있죠. 앞으로 상의해나갈 겁니다.

문제는 집권했을 때의 이해관계인데 그것은 완전히 1대1의 공동집권입니다. 대통령제에서도 총리.내각구성은 1대1로 하고, 내각제를 해도 같이 운영해나갈 것입니다. 완전히 서로 믿고 해야 선거운동도 같이 하고 승리할 수 있습니다.

신뢰 없이는 성공을 이룰 수 없고, 신뢰구축 없이는 정권교체가 안돼요. 김종필총재나 나나 정치인생을 마지막으로 장식해야 할 땐데 둘이 같이 성공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둘이 같이 성공해야지 한사람이 실패하면 다른 사람도 실패해요. 저는 이 점에서 합의사항을 확실히 이행해 자민련과 국민회의, 김종필총재와 저, 둘이 같이 성공하도록 할겁니다.

우리나라 정치사에도 미담 (美談) 을 남겨놓겠다는 생각입니다. "

- 단일화가 언제까지 이뤄져야 하는 겁니까. "중요한 것은 국민들이 언제까지 기다려 주느냐인데 '빨리해라, 뭐 하냐' 하다가 등돌려 버리면 돌이키기 어렵습니다. 8월하순에 들어가면 여론동향을 알게 될 것이고 또 더 끌 이유도 없어요. "

- 8월중이나 9월국회전에 안되면 단일화는 안된다고 봐도 됩니까.

"그렇게 말하고 싶지는 않고요. 미리 안될 것만 자꾸 생각하지 마시고 지켜봐 주세요. "

- 단일화와 별도로 자민련도 당 살림을 꾸려가야 하는데 대선에 출마해야 60억원의 국고보조금이 나옵니다. 자민련 입장에선 손실인데요.

"당을 꾸려가는 것은 일반적인 보조금으로 하면 되고, 대선에 안나가면 그 돈이 안나가잖아요. 후보를 낸 쪽에는 대선국고보조가 들어오니 이기려면 같이 써야죠. 다만 법적으로 타당에 돈을 주는 문제가 남는데 법 테두리 안에서 해결방법을 강구하고 있습니다. "

- 선 (先) 내각제 수용을 선언할 용의는 없습니까. "하면 같이하지, 하나만 따로 할 이유가 뭐 있습니까. 자민련도 이미 내각제는 수용의 뜻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어요. 얘기가 된거예요. "

- 일각에선 3당 후보간의 3파전이나 혹은 다른 후보가 나와 4파전이 벌어지면 金총재의 승산이 더 높다고 하는데요.

"산술적으로 그런 얘기가 나올 수도 있지요. 그러나 정치는 생물 (生物) 입니다. 자민련과 단일화했을때 국민의 폭발력이 나와 진정한 α가 생겨납니다. 국민들이 자신감을 갖고 밀어주지 않으면 어려워요. " - TV토론을 잘 해내고 金총재 지지율도 상당히 올라가자 단일화는 명분싸움 아니냐는 얘기도 있습니다만.

"역시 든든한게 제일 좋아요. 야권 단일화가 일어날 때 플러스 α의 상승효과가 일어나듯이 단일화 안됐을땐 마이너스 충격이 있어요. 단일화가 됐을때 정권교체에 대한 확신이 서요. 현재 추세로 보면 李대표보다 내가 앞설 가능성도 있지만 그런 것 믿고 해서는 안돼요. 이번이 마지막이니 실수하지 않도록 해야죠. "

- 합당 가능성은 전혀 없는 겁니까.

"전혀 없습니다. 지지세력을 놓고 보더라도 자민련과는 차이가 많습니다. 서로 공통분모를 가지고 정책을 제휴하는게 가장 좋습니다. "

- 기아문제의 해법은 어떻게 보십니까. "과도기적으로 조치를 취하는 것은 좋으나 어디까지나 시장경제원리에서 접근해야 돼요. 과도기적 조치도 철저한 자구노력이 전제가 돼야 해요. 방만한 경영이 큰 원인이 됐는데 장기적으로는 거기에 대한 책임을 물어야 합니다. 물론 현 경영진의 퇴진문제는 채권자간 협의할 문제지요. 또 1만8천여 협력업체를 살리지 않는 기아살리기는 의미가 없어요. "

- 현 경제상황을 어떻게 진단하십니까.

"50년 잘못된 체질이 세계무역기구 (WTO) 체제의 성립, 경제협력개발기구 (OECD) 의 조급한 가입으로 한꺼번에 터져나온 것으로 봅니다. 나는 복안 (腹案) 이 있어요. 그러나 그 말을 해봐야 소용이 없습니다.

옆에서 훈수갖고 되는 것도 아니고 부작용을 가져올 수도 있고요. 현정부는 시장경제원리에 따르면서 남은 6개월동안 최대한도로 충격을 줄이는 과도 조치를 하고 다음정부에 넘겨줘야 합니다. "

- 경제가 하도 엉망이라 다음 집권자는 누가 돼도 곤욕을 치를 것이라는 얘기가 있는데요.

"어려움이 없지 않겠지만 제대로 해낼 자신이 있습니다. 세계에서 내로라하는 경제대국이 되게. " - 김영삼대통령의 경우를 들어 金총재도 말은 그렇게 하지만 집권후 달라질 것으로 보는 사람이 있습니다.

"金대통령은 되고 나서 달라진게 아니라 되기전에 달라진 겁니다. 3당 합당이 그것이죠. 내 주변 사람들은 고문당하고 고생하는 과정에서 확고한 정치.인생관이 섰어요. 이른바 가신이란 사람들도 그런 걸 우려해 '집권해도 청와대나 정부에 안들어간다' 는 연서 (連署) 를 할 계획까지 얘기한 적이 있어요. "

- 정치보복을 안하겠는다는 것은 좋으나 차별금지법은 문제가 있는 것 아닙니까.

"문제될거 없어요. 이 나라에서 다시는 여성.장애인이라고 차별받거나 연령.지역.학력차별이 없도록 하자는 겁니다. 특별법 형태로 하자는 겁니다. 측근들에게 무조건 자리주는 것을 막기 위해서도 필요해요. 실력사회로 만들자는 거예요. " - 여성들에게 각종 혜택을 주다 보니 거꾸로 여성 채용기피 현상도 나타납니다. 차별금지가 역차별을 낳을 수 있지 않습니까.

"민주적 시장경제여야지 약육강식적 시장경제해선 곤란해요. 21세기는 소프트웨어시대여서 여성이 더 실력을 발휘하게 돼요. 또 여성이 출산을 안하면 나라는 어떻게 됩니까. 좋은 아이를 건강하게 기르는 것이 국가차원의 장래 투자라고 생각하고 보호해줘야 해요. " 정리 = 이정민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