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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킨스, 종교가 정신학대라는 자네 주장은 좀 오버야”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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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1호 06면

다른 집에 초대받아 집구경을 할 때마다 내 발걸음은 늘 서재에서 머뭇거린다. 흘깃 들어오는 서가의 책들과 책상 위 물건들 앞에서 나는 셜록 홈스가 된다. 서재는 말을 한다.

장대익 교수가 열어본 ‘다윈의 21세기 서재’

올해로 탄생 200년을 맞은 찰스 다윈의 서재는 과연 어떤 풍경이었을까? 아쉽게도 나는 아직 런던 교외의 다윈 생가(다운하우스)에 가보질 못했다. 하지만 몇 년 전 보스턴 과학박물관에서 통째로 복제,전시된 그의 서재를 보았는데, 그것만으로도 흥분을 감출 수 없었다. 거기에는 아내 에마와 몇몇 친구의 초상화가 걸려 있었다. 다윈은 그 책상에서 세상을 뒤엎은 『종의 기원』을 썼고, 자신을 깊은 좌절에 빠뜨린 앨프리드 월리스(자연선택론의 공동 발견자)의 편지를 읽었다. 그리고 성가신 손님들을 피해 조용히 책장을 넘기기도 했다. 서재는 소심한 그에게 피난처요 작업장이었다.

또한 충전소이기도 했다. 거기서 그는 식물학자 조셉 후커나 지질학자 찰스 라이엘과 같은 절친한 동료만 따로 불러 런던의 지식계에서 일어난 재미난 일들을 듣곤 했다. 어쩌면 다윈은 마르크스의 『자본론』을 거기서 읽었는지 모른다.

만약 다윈이 살아있다면 지금 그의 서재에는 어떤 책들이 꽂혀 있을까? 누구에게 편지를 쓰고 어떤 사람들을 초대해 얘길 나눌까? 어떤 물건들이 책상 위에 굴러다닐까? 질문들이 꼬리를 물었고 어느새 나는 다윈이 앉아 있는 서재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1. 다윈, 도킨스와 메신저로 종교를 논하다
다윈이 컴퓨터 앞에 앉아 독수리 타법으로 누군가와 메신저를 주고받고 있다. 가까이서 보니 대화 상대자가 ‘리처드’다.

[찰스] 딱정벌레매니어님의 말: “리처드, 어젯밤에야 자네의 『만들어진 신』을 다 읽었네. 일단 그 용기에 박수를. 큰 일 했소. 내 속이 다 후련하구려.”
리처드라면 영국 옥스퍼드대학의 리처드 도킨스? 그렇다. 다윈은 『만들어진 신』으로 이태 전부터 ‘종교와의 전쟁’을 선포한 진화생물학자 도킨스와 지금 메신저 중이다. 눈을 돌려 서가를 보니 역시나 『이기적 유전자』를 비롯한 도킨스의 저서들이 나란히 꽂혀 있다.

[리처드] 종교없는세계님의 말: “선생님, 격려 고맙습니다. 그렇지 않아도 요즘 유신론자들로부터 테러에 가까운 비난을 듣고 있어요. 저를 아예 ‘근본주의자’로 매도하더군요. 과학을 맹신하고 있다나요, 참나. 선생님은 어떻게 읽으셨나요?”
도킨스의 질문에 다윈이 잠시 머뭇거린다.

딱정벌레매니어님의 말: “뭐 자네도 알다시피 난 기독교에 대해 애증이 있잖아. 아내 에마가 아주 독실한 신자였고, 나도 한때 신학을 공부했었고, 비글호를 안 탔다면 목사가 될 뻔한 사람이지. 하지만 진화론에 대한 이해가 깊어질수록 신의 자리는 점점 좁아들더군. 나이 사십이 되니 정신이 확 들었지. 신은 없다고.”

도킨스의 질문이 이어진다.
종교없는세계님의 말: “그때가 선생님 부친이 돌아가시고 가장 사랑하던 따님마저 병으로 세상을 뜬 시기 아닌가요?”

딱정벌레매니어님의 말: “잘 아는구먼. 비글호 항해 이후 내가 신에게 기도했던 유일한 순간이었네. 결국 기도는 응답되지 않더군. 그때 이후로 나는 무신론자로 평생을 살았다고 봐야 해. 물론 겉으로는 드러낼 수가 없었지. 사랑하는 아내 때문이기도 했지만, 솔직히 나는 당시 분위기에서 무신론자로 낙인찍히는 게 두려웠다네. 『만들어진 신』같은 책을 쓴 자네의 대담함과 용기, 그리고 확신이 부럽네. 그런데 말이야 한 가지 동의하기 힘든 게 있더군.”

잠시 정적이 흐르자 도킨스가 다그친다.
딱정벌레매니어님의 말: “리처드, 아이들의 종교 문제를 다룬 부분 기억나는가? 부모의 종교에 따라 ‘무슬림 아이들’ ‘기독교 아이들’과 같은 꼬리표를 달아줘서는 절대로 안 된다는 대목 말일세. 자네는 부모의 그런 행위를 정신적 측면의 ‘아동 학대’라고까지 표현했더군. 종교에 관해 적절한 판단을 할 수 없는 아이들을 더 큰 혼돈에 빠뜨리는 행위라면서.”

이에 도킨스의 메신저 속도가 갑자기 빨라진다.
종교없는세계님의 말: “네, 선생님. 만일 아이들에게 ‘마르크스주의자’ ‘자유주의자’라는 꼬리표를 달아준다고 해 보세요. 말이 됩니까? 그런데 사람들은 자식에게 종교를 강요하면서도 그것을 학대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참 이상하죠.”

다윈의 타이핑도 빨라졌다.
딱정벌레매니어님의 말: “그 말이 좀 불편해. 나는 아이들에게도 종교는 중요할 수 있다고 보거든. 게다가 아이들의 정신이 부모의 절대적 영향 아래 있다고 보지도 않아. 요즘 애들 좀 보게나. 어디 부모 말을 듣던가? 다 자기 친구들 따라 가는 거지. 어쨌든 나는 그들에게도 종교에 대한 판단 능력이 있다고 믿네. 사실, 난 교회엔 가지 않았지만 교회 가고 기도하는 아내와 아이들을 막지 않았네. 심지어 동네 목사와의 친분 때문에 교회 회계장부 쓰는 일도 맡았었지.”

종교없는세계님의 말: “오, 선생님. 바이러스는 한번 감염되면 퇴치하기가 여간 어려운 게 아니에요. 어렸을 때부터 교회 주일학교에 밀어넣기 시작하면 나중에 치유불능 사태가 생길 수도 있지요. 이건 정신적으로 아이들을 학대하는 겁니다.”

딱정벌레매니어님의 말: “바이러스 얘기가 나와서 하는 말인데, 난 솔직히 그 비유가 살짝 마음에 안 들어. 아내처럼 기독교인이지만 훌륭한 인간들을 많이 알고 있거든. 굳이 비유를 들라면 종교를 정신 바이러스라기보다는 박테리아라고 하는 쪽이 더 낫지 않을까. 세균 중에는 유산균처럼 좋은 것도 있잖아. 하하하.”

잠시 날을 세우려던 도킨스도 ‘푸하하!(^-^)! 을 다윈에게 날린다.
종교없는세계님의 말: “음. 솔직히 전 선생님이 제 책을 읽으시고 바로 커밍아웃 하실 줄 알았어요. 실망입니다. 그건 그렇고 대체 언제쯤 다시 세상으로 나오시렵니까? 하하.”


KAIST 졸. 서울대에서 진화론의 역사와 철학 연구로 석사 및 박사학위를 받았다. 동덕여대에서 자연과 인문의 공생을 가르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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