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변호사시험 법안 부결과 국회의 무책임 행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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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새로운 변호사 선발 방식을 규정한 ‘변호사시험법’ 제정안이 그제 국회에서 부결됐다. 로스쿨(법학전문대학원) 개원을 불과 3주 앞두고 로스쿨의 커리큘럼을 정하는 데 가이드라인이 될 중요 법안이 유산된 것이다. 당장 학교와 학생들이 큰 혼란에 빠지게 됐다. 이런 사태를 빚은 입법부의 무책임성이 어처구니없고, 여당의 비생산적인 소통 구조에 말문이 막힌다.

정부가 입법예고와 공청회 절차를 밟아 국회 법사위에 법안을 보낸 것은 지난해 10월이었다. 그러나 법사위는 지난 4개월간 여야 충돌 속에 법안에 손도 대지 않았다. 2월 국회가 열린 다음에야 부랴부랴 법안심사에 착수해 그제 오전 의결하고 오후 본회의에 상정했다. 본회의에서 여당 의원이 “악법 중의 악법”이란 말까지 써가며 반대하고 나서는 기현상을 연출하게 된 것도 이런 졸속 심의 때문이었다. 국회의 구멍 뚫린 법안 심의도 문제지만, 당정협의까지 거친 법안에 여당 의원들이 무더기 반대·기권 표를 던졌다니 참으로 딱하다. 이러고도 국정을 책임진 집권당이라 할 수 있는 것인가.

불투명한 미래에 가슴 졸일 2000명의 로스쿨 입학생을 위해서라도 4월 임시국회에선 대체법안이 통과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이번에 지적된 대로 응시자격과 응시횟수 제한 등에 문제점이 있다면 당장 보완작업에 들어가 면밀한 재검토와 충분한 의견수렴을 거쳐야 할 것이다. 로스쿨을 나와야 변호사시험을 볼 수 있도록 한 것은 로스쿨 학비를 감당 못할 계층에 대한 ‘진입 장벽’이란 지적은 재론의 여지가 있어 보인다. 일본은 로스쿨을 졸업하지 않아도 변호사시험에 응시할 수 있도록 예비시험 제도를 두고 있다. 다만 예비시험이 로스쿨 도입 취지에 배치된다는 반론도 있는 만큼 변호사 선발 시스템 전반에 대한 숙고가 필요하다.

법안을 허투루 심의해 여야 합의로 상정된 법안이 좌초되는 일이 다시 있어선 안 된다. 여당도 내부 이견이 본회의장에서 표출되는, 보기 민망한 장면이 재연되지 않도록 ‘동맥경화’에 빠진 의사소통 구조를 재점검할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