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존엄사 기준’의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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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그동안 연명치료 중단 지침을 만들려는 시도가 계속됐지만 법률이 만들어지지는 않았다. 2001~2002년 대한의사협회가 임종환자 진료 중단 지침을 내놨다가 소극적 안락사로 몰려 유야무야됐다. 2004년 대법원은 뇌수술을 받은 환자의 인공호흡기를 뗀 서울 보라매병원 의사와 환자 가족에게 각각 살인방조죄와 살인죄를 적용해 유죄를 선고했었다. 이 때문에 의사들이 살인방조죄를 피하기 위해 임종환자를 퇴원시키지 않고 병원 중환자실에 계속 붙들어 두는 현상이 빚어졌다. 환자를 치료하는 게 아니라 ‘죽는 시기의 연장’이라는 전문가들의 비판이 잇따랐다. 또 연명치료가 성행하면서 환자의 고통과 가족의 부담이 가중됐고 중환자실을 제때 이용하지 못하는 환자들의 불만이 커져 왔다.

이번 판결에는 이러한 배경이 깔려 있다. 의료계는 우선 “과거에 비해 진일보한 판결”이라고 반기면서도 이번 가이드라인의 한계를 지적한다. ▶치료 중단 주체 ▶회생 가능성 기준 ▶환자의 치료 중단 의사 ▶치료 중단 방식 등이 명확하지 않다는 것이다. 향후 존엄사법 입법 과정에서 고려해야 할 점들이다.


현재 국회에는 한나라당 신상진 의원이 발의한 존엄사법이 계류돼 있다. 존엄사를 하려면 회복 가능성이 없고 환자가 치료 거부나 중단을 정해야 한다는 등의 내용을 담고 있다. 이번 판결에서 제시한 기준과 유사한 점이 많다.

재판부는 존엄사법 입법과 관련해 국회의 적극적인 역할을 주문했다. 재판부는 “현대의 의료 현실에서 인간이 기계 장치에 의해 연명하는 사례가 앞으로 많이 발생할 것이며 때로는 연명 치료를 중단한다는 명목으로 회생 가능성이 있는 환자에 대해 섣부른 판단으로 치료를 중단해 사망을 초래할 가능성도 우려된다”고 밝혔다. 이어 “국가는 국민기본권을 보장할 의무가 있고 이를 위해 입법을 통해 기본권을 구체화할 필요가 있으므로 아무런 기준 없이 의사와 환자·가족에게만 문제를 맡겨두는 상황이 지속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지적했다. 따라서 “사회의 견해를 폭넓게 반영해 연명치료 중단 등에 관한 기준과 절차,방식, 남용에 대한 처벌과 대책 등을 규정한 입법이 이뤄질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이번 판결에 대해 병원 측이 상고를 포기하면 판례로 굳어진다. 병원 측이 상고를 하면 대법원 심리를 거쳐 판례로 확정된다. 다만 현재 김씨의 상태를 고려할 때 대법원 선고 전에 김씨가 사망할 가능성도 있다. 이 경우 가족이 소송을 이어받을 수도 있고 대법원이 소송의 당사자가 없어 재판의 실익이 없다며 각하 판결을 할 수도 있다.

박성우·안혜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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