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년대 록스타 임재범, 6년 공백깨고 컴백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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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3면

임재범은 80년대를 대표하는 뛰어난 록보컬리스트였으며 지금도 그 칭호는 유효하다는 데 이견이 드물다.

사위를 압도하는 유장한 중저음,가성을 쓰지 않고 가늘게 올라가는 고음, 강렬하면서도 끊임없이 애상이 묻어나는 낭만적 음색은 가위 독보적이었다.

86년 그룹 시나위의 보컬로 출발, '크게 라디오를 켜고' 로 가창력을 인정받은 그는 외인부대.아시아나등 메탈그룹을 거쳐 91년 발표한 솔로 데뷔 앨범에서 록발라드 '이 밤이 지나면' 으로 폭발적 인기를 모았다.

그러나 노래가 히트한 몇달 뒤 돌연 잠적한 채 여태껏 소식이 없어 궁금증마저 사라진 그가 최근에 소리소문없이 2집을 냈다.

이같은 행동에서 드러나듯 주위사람들에게 그는 '광기와 기행의 가수' 로 여겨지고 있다.

그의 잠적은 '음악적 변절' 에 대한 자책감 때문인 것으로 알려졌다.

오랜동안 무명의 늪속에 빠져있다가 '이밤이 지나면' 한곡으로 벼락스타가 됐지만 정통메탈을 하다 상업성 짙은 록발라드로 변신한 것을 스스로 못견뎌했다는 것이다.

자신의 노래에 자족하지 못했고 현실에 적응하지도 못했던 그는 매니저와 불화를 빚는 일이 잦았고 예정된 방송출연을 아무 연락없이 펑크내는 등 상식을 뛰어 넘는 행동을 보이기도했다.

극도의 대인기피증을 보이던 그는 급기야 92년초 가요계와 접촉을 일절 끊은 채 오대산등 지방을 전전하며 은둔생활에 들어갔다.

이번 2집은 95년초 한 음반사의 설득으로 복귀해 2년간의 제작기간을 거쳐 나온 것이다.

하지만 대인기피증은 여전해 음반홍보를 위한 최소한의 인터뷰조차 피한 채 라디오로만 신곡을 알리고 있을 정도다.

임재범의 이번 음반은 대중성이 높은 록발라드가 대부분이다.

그러나 일부곡에서 재즈 분위기가 느껴지는데 이는 록과 재즈를 섞은 스팅풍을 지향하는 최근 그의 음악세계를 반영하고있다.

재즈피아니스트 김광민, 듀오 유앤미 블루 출신의 이인 (방준석의 새예명) 등 실력파 뮤지션들이 편곡.연주를 맡아 10개 수록곡의 품질이 모두 수준 이상이다.

첫번째곡 '비상' 은 시원한 창법과 아름다운 곡구성으로 복귀를 알리는 대중성 높은 노래다.

힘있고 낙관적인 선율속에 그간의 공백을 딛고 일어서겠다는 다짐을 담았다.

"나도 세상에 나가고 싶어/당당히 내꿈을 보여줘야해/그토록 움츠렸던 날개/더 넓게 펼쳐보이며 날고 싶어" 같은 부분은 그의 잠적을 안타까워해온 팬들에게 특히 반가운 구절이다.

또 두번째 수록곡 '그대는 어디에' 는 임재범이 직접 지은 곡으로 그만의 스타일이 가장 잘 드러난 곡이다.

짙고도 섬세한 어쿠스틱 창법과 이를 감싼 김광민의 오케스트라 편곡이 고급스럽다.

고음에서 가끔 갈라지는 목소리는 6년 세월의 풍화작용인 듯 느껴지지만 이를 나름의 매력으로 전환시키는 곡운영에서 저력이 엿보인다.

또 퓨전재즈 느낌이 나는 '추락' 과 국내에 잘 소개되지 않았지만 구슬프되 힘이 있는 아일랜드 포크록풍의 '궤변' 은 앞으로 그가 추구할 음악의 예고편이란 인상을 준다.

자신의 과거.현재.미래를 한데 담았다는 신보는 노래다운 노래에 갈증을 느껴온 20.30대 팬들에게 멋진 재회가 될 듯하다.

대중성에의 지나친 경사를 아쉬워하는 지적도 없지 않지만 여전히 탁월한 가창력은 일단 듣는 이를 매혹시킨다.

신보를 접한 가요계 동료들은 "아직도 국내에서 그만한 보컬리스트는 찾기 힘들다" 고 칭찬하는데 주저하지 않는다.

<강찬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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