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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바마에 맞서는 ‘월街의 대변인’

중앙선데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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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호 29면

제임스 다이먼(53) JP모건체이스 회장이 월가의 리더로 떠오르고 있다. 생존의 절박감과 ‘위기의 주범’이란 사회적 지탄에 눌려 있던 월가가 그의 깃발 아래 뭉치는 모양이다.

제임스 다이먼 JP모건체이스 회장

계기는 버락 오바마 미 대통령을 향한 다이먼의 날 선 반격이었다. 그는 공적자금을 받은 금융회사 최고경영자(CEO) 등의 보수를 50만 달러 이내로 제한하려는 움직임에 대해 “우리가 알아서 할 일”이라고 되받아쳤다. 오바마가 거액 보너스를 받은 금융회사 CEO들을 ‘무책임 시대의 상징’이라고 비판하자 다이먼은 “실적을 바탕으로 엄밀하게 평가해야지 금융인을 모두 악당 취급해서는 옳지 않다”고 응수했다.

그의 발언은 죄인처럼 숨죽이고 있던 월가를 꿈틀거리게 했다. 그의 반격이 나온 직후 투자은행 골드먼삭스의 최고재무책임자(CFO)인 데이비드 비니어는 “공적자금 지원에 규제가 따른다면 우리는 빨리 (그 자금을) 상환할 것”이라고 지원사격에 나섰다. 샌디 웨일 전 씨티그룹 회장은 “다이먼의 실적과 경험·지혜에 비춰 그를 우리(월스트리트)의 대변인으로 삼을 만하다”고 말했다. 1998년 씨티그룹에서 다이먼을 내쫓아낸 사람이 바로 웨일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요즘 월스트리트에서 다이먼의 존재감이 어떤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현재 월스트리트에는 리더 역할을 할 만한 인물이 거의 없다. 존 테인 메릴린치 전 회장 등 거물들이 거액 보너스 추문이나 회사 파산 등으로 무대 뒤로 퇴장한 상태다. 골드먼삭스의 로이드 블랭크페인 회장이 있기는 하지만 사실상 은둔 중이다.
다이먼이 거둔 경영 성과도 그의 위상을 강화해 주고 있다. 그는 2006년 12월 JP모건 회장에 오른 뒤 보수적으로 회사를 이끌었다. 서브프라임 모기지(비우량 주택담보대출) 투자를 최대한 억제했다. 호황기에 그는 고리타분한 원칙을 고수하는 뒤처진 CEO로 비쳤다. 하지만 위기가 발생하자 그는 저돌적인 하이에나로 돌변했다. 단 2달러를 들여 투자은행 베어스턴스를 사들였다. 미 최대 저축은행인 워싱턴뮤추얼도 흡수했다.

최근 뉴욕 타임스는 “다이먼의 리더십 덕분에 모건하우스(JP모건)의 위세가 다시 부활하는 듯하다”고 평했다. JP모건은 1900년 이후 70여 년 동안 월스트리트를 주도했으나, 80년대 이후에는 골드먼삭스에 밀렸다.

다이먼의 오바마 되받아치기는 미 의회 금융 청문회를 앞두고 비상한 관심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이번 주 의회는 금융회사 CEO 등을 불러 지난해 9월 리먼브러더스 파산 이후 상황을 듣는다. 투자은행 파산 과정에서 CEO 등의 잘잘못을 판단하기 위해서다. 의원들은 월가 CEO 등의 탐욕·방만뿐 아니라 파생상품 등에 대한 무지를 낱낱이 드러내겠다고 벼르고 있다. 전문가들은 다이먼의 깃발 아래 뭉친 월스트리트가 워싱턴의 공세에 묵묵히 당하고 있지만 않을 것으로 내다봤다.

월가는 다이먼에게 ‘제2의 리처드 휘트니’란 별명을 붙여 줬다. 30년대 뉴욕증권거래소(NYSE) 회장이었던 휘트니는 프랭클린 루스벨트 전 대통령을 정면으로 비판하면서 월가의 반격을 이끌었다. 당시 루스벨트는 월가를 ‘고리대금 소굴’ ‘건전한 가치를 무너뜨린 곳’이라며 비난했다. 이에 대해 휘트니는 “월스트리트는 완벽하고 아주 효율적인 곳”이라고 응수했다. 이는 대공황 이후 숨죽였던 월가가 루스벨트에게 응전하는 계기가 됐다.

월스트리트에는 이른바 ‘리더의 저주’가 존재한다. 월가의 좌장이었던 인물들은 말로가 좋지 않다는 것이다. 휘트니도 30년대 후반 공금 횡령으로 감옥살이를 해야 했다. 80년대 씨티그룹을 탄생시킨 샌디 웨일도 사내 금융스캔들에 말려 ‘뒷방 노인’으로 전락했다.

월가의 역사가인 존 스틸 고든은 최근 워싱턴 포스트와의 인터뷰에서 “월스트리트에 대한 반발과 비판이 거센 게 미국”이라며 “워싱턴 등의 공격과 견제가 월가의 리더에게 집중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다이먼도 언젠가는 역풍을 맞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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