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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묻는다, 안다는 것은 무엇인가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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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호 06면

지난해 초겨울 해인사에 강의차 갔다가 뒷산 깊은 속, 토기 굽는 가마에 들른 적이 있다. 머리를 뒤로 맨 도공이 설파하는 불의 표정에 대해, 그 분노와 사랑에 대해 일장 강의를 들었다. 귀를 곤두세워도 잘 알아들 수 없었지만, 그러나 나는 그것이 ‘카더라’가 아니라 ‘현장’임을 그의 몸짓과 어투에서 읽을 수 있었다.

한형조 교수의 교과서 밖 조선 유학

특별한 체험만이 불가해한 것이 아니다. 일상에서 타인의 ‘체험’은 쉽게 전달되거나 공유되지 않는다. 발화자와 수용자 사이에 심연이 있다. 그런데도 대체 우리는 무엇을 믿고, 감히 ‘안다’고 즐겨 말하는가. 앎으로 승인되기 위해서는 타인의 경험이 우선 내 관심의 렌즈를 투과해야 한다. 1차 관문을 거쳐 걸러진 것들은 내 수준과 눈높이에 튜닝된 다음 다시 내 가치관에 따른 품평을 거친다. 그렇게 무두질되어 ‘살아남은(?)’ 누더기가 우리가 ‘안다’고 부르는 것의 실제라면 지나칠까.

집단의 무두질을 거쳐 일정한 태그를 달고 선반 위에 진열된 가공품들, 그것을 우리는 ‘지식’이라 부른다. 그 ‘통념’이 삶을 이해하고, 역사를 보는 눈을 미리 규정하지만, 우리는 대개 그 이력과 정체를 감지하지 못한다. 통조림으로 접하는 세상, 우리는 살아 있는 꽁치와 고등어를 만지거나 기억하지 못한다. 그렇지 않은가. 사물이 그렇고, 사람이 그러하며, 역사 또한 그러하다.

‘조선’에 유학이 있었다. 그것이 무엇인지 귀가 아프게 들어왔다. 억압적 이데올로기, 가부장적 권위, 정치적 당파성과 무능, 상징적 번문욕례, 실용을 돌아보지 않는 명분의 헛기침 등. 가상의 박물관 ‘조선의 유학’ 코너에는 대체로 이런 플레이트들이 붙어 있다.

그 플레이트는 누가 작성했고, 설명문은 언제 만들었을까. 초안의 대강은 19세기 후반 서세동점의 시대, 자주 국가의 면모를 잃고 일본의 식민지로 떨어질 때 잡혔다. 일본은 식민지배를 정당화하기 위해, 조선의 우국지사들은 어이없이 나라를 잃은 것이 억울해 유교에 ‘망국의 원흉’이라는 레터르를 붙였다. 선봉에 선 단재 신채호는 백골이 된 진시황을 원망했다. “그때 왜 확실히 유생들을 묻고, 경전들을 태워 없애지 못했느냐”고.

그는 유교에 절망하고 상고사에 의탁했으나 위안이 되지 않았고, 결국 무정부주의로 망명했다. 해방 이후에도 그 ‘인식’은 변하지 않고 강화되었다. 1960년대 이후 근대화에 올인할 때 유교는 서구의 기술과 산업을 익히는 데도, 그리고 민주적 마인드와 절차를 정착시키는 데도 도무지 애물단지였던 것이다.

그런데 시대가 달라졌다. 근대화의 성취가 아이로니컬하게도 ‘동아시아적 가치’의 이름 하에 유교를 ‘재고’하게 했다. 안에서는 언감생심, 감히 말하지 못했으나 해외의 학자들이 나서서 ‘아시아의 떠오르는 용들’을 가능하게 한 문화적·정신적 에토스가, 저런, 다름 아닌 유교라고 목소리를 높인 것이다. 이때가 타당성은 차치하고 유교가 근대 이후 최초로 받은 긍정적 평가다.

그 이후 정보의 홍수 시대가 열렸다. 배가 너무 고프면 음식 맛을 모르고, 감정에 치우치면 사태를 객관적으로 읽기 어렵다. 식민지의 굴욕을 벗고 근대의 동원이 일정 궤도에 오르자 유교와 전통을 탈이념적으로, 즉 평가를 괄호 치고 실용적 전망하에 읽은 ‘객관적’ 정보들이 봇물 터지듯 쏟아지기 시작했다.

작금 서점가에는 ‘조선’이 가위 붐이다. 기생과 광대 등 소외된 사람들의 이야기에서부터 고집으로 뭉친 전문가들과 매니어, 여성들의 일상, 사주·명리·풍수 등 한때 미신이라 치부하던 것들, 정치적 격동의 현장, 책과 지식의 유통, 한가한 음풍농월과 놀이에 이르기까지 전 방위에 걸쳐 있다.

그럼에도 감히 말하건대 유교는 아직 알려지지 않았다. ‘보이는 것들’에 대한 정보들이 넘치되 그들의 삶을 규율한 ‘보이지 않은 것들’에 대한 보고서들이 여전히 미개척으로 있는 것이다. 내면과 정신, 가치와 관심을 알아야 드러난 행동을 읽을 수 있고, 그들의 삶을 진정 ‘이해’할 수 있게 된다. 다들 비판을 즐기지만 여기 함정이 있다. 비판은 기존의 통념을 정당화하고 강화시켜 줄 뿐이지만, 변화를 원하고 미래를 꿈꾼다면 나를 접고 다른 삶과 가능성을 ‘이해’하는 데 전력해야 한 발짝씩 길이 열린다.

이 연재에서 나는 ‘유교에 대한 발견과 새 지식’을 도모해 보려 한다. 오래된 통념을 바꾸려면 위에 제시했듯 두 가지 라인을 동시 공략해야 한다. 첫째, 유교를 읽는 20세기의 통념과 상식들을 ‘해부’하고 가려진 곡절을 보여 준다. 영리한 개는 공을 따라다니지 않고 던진 주인의 손을 물어 버린다고 한다. 둘째, 지금까지 렌즈에 잡히지 않았던 유교의 새 장면과 면모들을 소개하고자 한다. 정형화된 ‘이미지’를 벗기 위해서는 이 작업이 필수적이다. 루스 이리가라이 왈, “우리가 같은 언어를 쓰고 있다면 같은 이야기, 같은 역사를 반복하게 될 것이다.”

나는 이 연재에서 교과서에 적힌 유교 항목들의 통념을 폭로하고, 지금까지 알려지지 않은 유교의 면모를 발굴해 들려 드리고자 한다.
다시 말하지만 익숙한 사물들이 전부는 아니다. 그 반란이 “안다는 것은 무엇일까”를 새삼 묻게 한다. 그래서 선사들은 갈무리된 정보의 집적, 전래의 개념의 포획에 방심하지 말고 눈을 크게 뜨라고 다그치고, 그리스에선 ‘지혜’가 올빼미의 형상을 하고 있다. 어느 현자는 말했다. “낮의 세계에서 우리는 장님이다.” 이제 유교의 미지의 어둠 속으로 여행을 떠나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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