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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을 말하는 남자, 사랑을 읽는 여자

중앙선데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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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호 13면

무라카미 하루키, 무라카미 류, 에쿠니 가오리 등 큰 이름들에 가려져 있지만, 일본의 소장 소설가 요시다 슈이치(41)는 한국 독서 시장에서 앞서 언급한 거물들 못지않게 일정한 고정 독자층을 확보하고 있다. 출판업계에 따르면 『파크 라이프』『퍼레이드』 등 국내에 소개된 그의 작품들은 많게는 5만 부까지 팔리고 있다. 그는 일본 최고 권위의 문학상인 아쿠타가와상, 대중성 있는 신인에게 주어지는 야마모토슈고로상 등을 모두 받아 작품성과 상품성을 검증받았다. 특히 여성의 심리를 예민하게 드러내는 연애소설에 능하다는 평가다.

『사랑을 말해줘』, 요시다 슈이치 지음, 이영미 옮김, 은행나무, 1만원

요시다의 장편 연애소설 두 권이 최근 동시에 번역·출간됐다. 『사요나라 사요나라』(노블마인)와 『사랑을 말해줘』(은행나무)가 그것들이다. 연애소설이라지만 감칠맛 나는 핑크빛 판타지와는 거리가 멀다. 『사요나라…』는 학창 시절 집단 성폭행 사건의 가해자와 피해자 사이의 뒤틀린 애증 관계를 축으로 하고 있다. 부부가 된 남녀는 유아 살해 사건에 연루된다.

보다 정상적인 연애소설은 『사랑을…』이다. 매혹과 호기심에서 출발해 결국 ‘인간 이해’에까지 이르게 되는 사랑의 경과를 잔잔하면서도 섬세하게 그려낸다. 소설이 단순한 사랑 타령에 그치지 않은 이유는 연인 사이 소통의 문제에 집중하기 때문이다.
서른이 넘은 독신남인 방송사 다큐멘터리 PD 슌페이는 알몸으로 침대에서 뒹굴다 애인이 찾아오면 빨리 ‘하고’ 빨리 자자며 옷부터 벗을 것을 재촉하는 스타일이다. 회사 일이 잘 풀리지 않으면 여자친구에게 짜증낸다. 하지만 자신이 만든 방송물이 세상을 바꿀 수 있기를 바라며 취재 대상 사건의 본질을 집요하게 파고드는 진지한 구석도 있다.

그는 쉬는 날 집 근처 공원으로 책 읽으러 갔다가 청각장애인 여성을 우연히 만나 마음이 움직인다. 상대방 입술의 움직임을 보고 말뜻을 짐작하는 여성의 이름은 아이로니컬하게도 교코(響子). 은행나무 잎사귀가 노랗게 변해 떨어지는 가을에 만난 둘은 어렵지 않게 교코가 슌페이의 집에서 주말을 보내는 사이로 발전하고 봄·여름 계절의 변화를 겪는다.

작가 요시다는 슌페이 내면의 변화에 주목한다. 슌페이는 교코에게 짜증을 내려다가도 그 내용을 메모장에 써서 전달하려 하다 보면 감정이 가라앉고 마는 자신을 목격한다. 퇴근 후 집으로 돌아와 소리 없이 영상만으로 텔레비전을 시청하는 교쿄를 목격하고는 낯선 공간에서 길을 잃은 듯한 기분이 된다.

번역자 이영미씨는 요시다의 소설이 “잔잔하면서도 마음을 건드리는 부드러운 힘을 갖고 있다”고 표현했다. 격랑과 광풍이 몰아치는 바다가 아닌 조용하면서도 맑은 시냇물이라는 설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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