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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먹거리의 진실’ TV만 몰랐다?

중앙일보

입력

이코노미스트 광우병 파동 이후 잠잠해지나 싶었던 식품 안전성 우려가 중국발 멜라민 사태로 다시금 불거졌다. 불안한 소비자의 눈과 귀가 예민해질 수밖에 없다. 이런 가운데 TV 방송 프로그램들은 사실을 왜곡하거나 본질과 거리가 먼 지엽적인 사실을 보여주면서 식품 공포를 퍼뜨리고 있다. 과연 무엇이 문제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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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껌이 화면에 나오는 가운데 아나운서가 말한다) 동서고금 남녀노소 불문하고 모두가 즐기는 껌, 그 재료가 무엇인지 알고 씹으셨습니까?

식품업계·전문가 “과학적인 연구·실험 결과까지 문제 삼는 접근은 문제”
왜곡되고 부풀려진 식품 안전성 우려

(TV 방송은 무언가를 본 남녀 연예인 세 명이 눈이 휘둥그래지며 놀라는 모습을 비춰준다) 네, 타르 색소 맞습니다.(오렌지색 타르 색소로 옷감을 물들이는 실험 장면이 보인다) 음료수에 첨가된 색소는 단번에 옷을 염색하는 물질이죠. 그리고 모든 가공식품에 빠지지 않는 합성착향료.

(실험자가 합성착향료를 테이블에 끼얹고 조명을 끈 뒤 불을 붙인다) 거짓냄새로 미각을 흐리게 하는 이 첨가물은 불이 닿기가 무섭게 활활 타는 고인화성 물질이기도 합니다.

지난해 12월 27일 KBS 2TV에서 방송된 ‘스펀지2.0’ 프로그램의 ‘알아야 산다’ 코너에서 방송된 내용의 일부다. 이 프로그램은 껌을 ‘100% 식품첨가물 덩어리, 식품첨가물의 결정체’라고 규정하고 “결정적으로 껌은 페인트나 접착제와 같은 성분”이라고 방송했다. 식품 안전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침이 없다.

최근 TV에서 방영 중인 관련 프로그램은 그런 면에서 사회적 감시견(Watch Dog) 기능을 효과적으로 수행하고 있는 것으로 봐야 한다. 그러나 문제점을 폭로하는 일방통행식 방송으로 인한 업체와 소비자의 피해와 인식오류가 쌓여간다면 후유증이 심각해질 수 있다. 오리온 중앙연구소의 이기정 껌 개발팀장은 이 프로그램에 대해 답답하다는 투로 말문을 열었다.

“현재 시판되는 껌 중에는 타르 색소를 사용한 게 없습니다. 그런데 현재 판매되는 껌이 타르 색소를 사용하고 있는 것처럼 방송한 것은 소비자를 자극하기 위한 것으로밖에 생각되지 않습니다.”

이 팀장의 반박은 이어졌다. 그는 “껌의 기본 원료인 ‘껌 베이스’를 무릎에 쳐서 아프다고 하며 껌 베이스가 나쁘다고 표현하는 것은 참 억지스러웠다”며 이렇게 반문했다. “무릎이 아프면 나쁜 것이고, 아프지 않으면 좋은 것인가요?” 그는 “자일리톨 함량이 60%이니까 나머지는 설탕이겠지요”라는 어느 치과의사의 말을 거르지 않고 그대로 내보낸 것도 문제라고 꼬집었다.

“무설탕 껌에 사용하는 단맛 원료는 자일리톨뿐 아니라 솔비톨, 말티톨 등이 있습니다.”

이 팀장은 “무엇보다 가장 안타까웠던 부분은 식품첨가물은 모두 나쁘다는 편견을 TV 방송에서 퍼뜨린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식품첨가물은 식품의약품안전청의 관련 법규인 식품첨가물 공전(公典)에서 규정한 한도 내에서 쓰고 있기 때문에 안전하다고 항변했다. TV 방송 프로그램들이 근거 없는 식품 공포를 부추기고 있다.

소비자 고발 프로그램은 물론 오락 프로그램에서도 식품 안전성을 따지는 코너를 만들어 내보낸다. 이들 프로그램은 식품의 원료, 가공 과정, 식품첨가물 등의 안전성을 다룬다. 문제는 그 가운데 상당수가 앞서 소개한 껌 사례처럼 과학적인 진실을 담고 있다고 인정하기 어렵다는 점이다.

식품업체들은 많은 방송 내용이 잘못됐거나 사실을 왜곡하거나 나쁜 이미지를 결부하는 등의 방법으로 식품 안전에 대한 두려움을 부풀린다고 비판한다. 전문가들은 신중하게 다뤄야 할 과학 지식을 오락 프로그램에서 단편적으로 편집해 방송하면 보는 사람이 잘못된 정보를 사실로 받아들일 위험이 있다고 지적한다.

샘표식품은 지난해 11월 TV 전파를 탄 내용 가운데 “간장이 콩으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콩에서 기름을 뺀 탈지대두로 만들어진다”는 대목에 대해 할 말이 있다고 밝혔다. 이 회사 관계자는 “방송에서는 탈지대두를 콩 찌꺼기라고 표현했는데, 이런 표현 자체가 잘못된 것”이라는 입장을 밝혔다.

콩에서 기름과 단백질을 분리한 뒤 단백질을 쓰는 것이지, 콩에서 기름을 짜고 남은 단백질이 찌꺼기가 될 수는 없다는 말이다. 이 회사 관계자는 이렇게 비유했다.

자극적인 이미지와 단어 남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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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쉬운 예로 버터를 들 수 있습니다. 우유에서 지방을 분리해 버터를 만드는데, 그럼 남은 저지방우유는 찌꺼기입니까? 오히려 그것은 다이어트를 목적으로 하는 사람들에게는 일반 우유보다 훨씬 고가에 팔리는 저지방우유가 되는 것이죠.”

샘표식품 관계자는 이름을 쓰지 말아 달라며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목적에 맞게 원료를 선별해 사용하는 것입니다. 지방을 뺀 탈지대두를 사용한 간장은 향이 좋고 감칠맛이 강한 특징을 갖게 되고, 콩을 그대로 사용한 간장은 지방을 제거하지 않았기 때문에 부드러운 맛을 냅니다. 업체에서는 다양한 소비자의 입맛에 맞추기 위해 탈지대두를 사용한 간장, 콩 그대로를 사용한 간장 등 다양한 제품을 만들고 있습니다.”

한 식품회사는 “가공 우유가 과일즙이 이나라 과일향을 첨가해 맛을 냈기 때문에 건강에 해롭다”고 내보낸 어느 방송 프로그램에 대해 조심스럽게 반박했다. 다음은 이 회사 관계자 말.

“바나나 향이 첨가된 우유를 예로 들죠. ‘바나나 우유’와 ‘바나나 맛 우유’의 차이점을 아세요? 바나나 과즙을 조금이라도 넣으면 바나나 우유가 됩니다. 그렇지 않고 바나나 향만으로 맛을 내면 바나나 맛 우유라고 표기해서 팔아야 합니다. 그런데 바나나에서 과즙을 추출하는 게 어려워요. 힘겹게 추출하더라도 극소량만 넣습니다. 바나나 우유로 팔기 위해 바나나를 넣는다고 할 때 바나나의 영양이 의미 있게 함유됐다고 할 순 없죠. 또 바나나를 극소량만 넣으면 맛과 향이 나지 않기 때문에 어차피 바나나 향을 또 첨가해야 합니다. 그렇게 해서 바나나 우유라고 판매한다면 그것은 소비자를 우롱하는 행위라고 봅니다.”

그는 “우리 회사는 바나나 맛 우유를 만드는데 법에서 정한 한도 안에서 향을 넣고 있고, 바나나 맛 우유라고 표기해서 생산·판매하고 있으며 이를 소비자도 알고 있다”고 강조했다. 이어 “마치 소비자가 모르는 것처럼 바나나 향의 유해성이 매우 심각한 것처럼 과장해 보여주는 것은 누구를 위해서도 바람직하지 않다고 본다”고 말했다.

TV 방송에서 집중적으로 도마에 올리는 식품첨가물과 관련해 전문가들은 식품첨가물은 엄격한 과학적 분석을 거쳐 안전한 사용 한도가 정해진다는 점을 무시하는 경우가 많다고 비판한다. 경규항 세종대 식품공학과 교수는 “식품첨가물 공전의 각 식품첨가물 허용 한도는 동물실험을 통해 해롭지 않다고 판단한 것보다 많게는 100분의 1, 적게는 1만 분의 1로 줄여서 정한다”고 설명했다.

우리나라의 특정 식품첨가물 허용 한도가 선진국에 비해 높다는 지적도 있다. 이에 대해 경 교수는 “나라별 음식문화 차이를 반영한 결과”라고 말했다. 그는 “우리나라에서는 치즈를 유럽보다 덜 먹잖아요. 그러면 예컨대 치즈에 넣는 어떤 식품첨가물 허용 한도가 유럽보다 높을 수도 있죠. 반면 김치는 매일 먹기 때문에 김치에 들어가는 식품첨가물 허용 한도는 다른 나라보다 낮겠죠.”

이덕환 서강대 화학과 교수는 식품첨가물이 합성물질이고 합성물질은 해롭다는 식의 TV 방송도 사실을 왜곡한 사례로 들었다. 이 교수는 한 일간지 기고에서 모든 유화제가 합성물질은 아니라고 밝혔다. 한천이나 해조류에서 추출한 것도 있고, 콩에서 추출한 레시틴도 유화제라고 예를 들었다.

이 교수는 또 방송에서 단순히 화학적 기능만 강조한 나머지 식용으로 쓰는 유화제가 기름유출 사고나 구두약에 사용하는 공업용 유화제와 똑같다는 식으로 보여준 데 대해 “황당한 것”이라고 비판했다. 이 밖에 그는 “합성 색소가 첨가된 음료로 옷감을 염색하는 모습은 충격적”이라며 “그러나 옷감을 염색할 수 있다는 사실과 독성은 아무런 관계가 없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치자나 오미자는 천연 음료로 활용되는 동시에 염료로도 많이 활용된다는 것이다. 이 교수는 “식품첨가물의 오용과 남용은 철저하게 막아야 하지만 모든 첨가제를 거부하는 것은 비현실적”이라며 “첨단 식품가공 기술의 혜택은 인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식품의약품안전청 강기후 대변인은 “의약품도 잘못 쓰면 부작용이 있을 수 있지만 효능이 있기 때문에 쓴다”며 “식품첨가물도 긍정적인 측면이 훨씬 크다”고 말했다.

강 대변인은 “공전에서 허용된 식품첨가물을 한도 내에서 쓰는 것은 안전하다는 점을 더 많은 소비자가 알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세종대의 경 교수는 가공 과정에서 화학제품을 사용하기 때문에 그 식품은 건강에 해로울 것이라는 식의 방송도 걸러서 봐야 한다고 말했다. 방송에서는 음료회사에서 귤 같은 과일의 껍질을 벗기기 위해 위험하게도 염산이나 수산화나트륨을 사용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과장보도에 소비자는 동요하지 않아

그러나 경 교수는 “염산이나 수산화나트륨을 사용하는 것은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는 “산성이나 염기성 물질을 사용한 뒤에는 그런 성분을 중화하는 처리 과정을 거치기 때문에 최종 식품에는 산성 물질도 염기성 물질도 남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여러 방송 프로그램에서 과장되거나 왜곡된, 또는 조작된 식품 안전성 우려를 내보냈지만 소비자들은 동요하는 모습을 보이지 않고 있다.

샘표식품은 “간장과 관련해 소비자들이 구매를 꺼릴 내용이 여러 차례 보도됐지만 매출에는 별 타격을 받지 않았다”고 밝혔다. 다른 식품회사도 “가공 우유 관련 프로그램이 방송된 뒤에도 판매에는 이렇다 할 변화가 보이지 않았다”고 밝혔다. 식품회사 관계자들은 “소비자들이 방송의 잘못된 정보에 휘둘릴 단계는 넘어섰기 때문”이라고 풀이한다.

서울 잠실에 사는 도선희씨는 세 아이를 둔 엄마로서 평소 식품 관련 방송 프로그램을 주의 깊게 본다. 도씨는 방송 내용이 여러모로 편향됐다고 분석한다. 그는 “식품첨가물이 저렴한 값에 풍미를 향상시켜주거나 보존 기간을 늘리는 등 장점도 있는데 무조건 나쁘다는 식으로 접근한다”고 말했다.

또 “자극적인 화면과 문구로 사실 여부를 떠나 공포심을 불러일으키는 데 주력한다”고 지적했다. 이 밖에 “방송사에서 해당 업체의 반론을 별로 반영하지 않고 있으며, 간혹 다룰 때도 실제 방송에서는 미리 정한 결론에 맞춰 편집하는 것 같다”고 덧붙였다. 방송사의 게시판에도 적절한 모니터링 의견이 눈에 띈다. 한 방송사의 게시판에는 김영완씨가 아래와 같은 글을 올렸다.

‘저는 학교 직영 급식에 납품일을 합니다. 방송에서 식품첨가물에 대한 내용을 다루면 가장 민감하게 반응하는 곳이 학교 영양사입니다. 교육청에서 공문이 내려온다네요. 하지만 영양사들은 방송에 대해 새로운 사실을 알게 돼 유익했다는 반응과 동시에 적지 않은 불만도 나타냅니다. 방송은 식품첨가물의 문제만 제기할 뿐 전혀 대안이 없습니다. 식품에 첨가물을 넣는 건 그 식품회사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사 먹는 사람들이 조미료와 첨가물에 찌들어 있고, 지금처럼 방송할 때만 반짝 관심을 가질 뿐 좀 지나면 잊어버리니까요. 식품회사들이 조미료와 첨가물을 넣지 않고 식품을 만들면 원가는 원가대로 상승하고 맛은 떨어지고 유통기한은 짧아지는데, 과연 소비자들은 이런 제품을 한눈에 알아보고 사 줄까요?’

광우병 파동은 전문 영역은 전문가들로 하여금 연구하고 분석하고 검증하도록 해야 한다는 교훈을 준 반면교사의 사례가 됐다. 요즘 식품 안전성을 다루는 TV 방송도 비슷한 사례로 남지 않을까.

백우진·임성은 기자·cobalt@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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