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기고 올림픽 30年·태권도 40年] 117. 내가 만난 박정희(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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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청와대 행사 때 필자(右) 부부가 박 대통령(오른쪽에서 둘째)과 육영수 여사(左)에게 인사하고 있다.

 군사 쿠데타로 집권을 했지만 박정희 대통령은 대통령이 된 이후 조국의 근대화와 경제개발에 힘을 쏟았다. 보릿고개를 없애고 전국을 1일 생활권으로 만들었다. 중공업을 육성하고 수출대국으로 달려갔다. 2000년 남북 정상회담 때 북쪽 군사위원들이 “박 대통령이 독재는 했지만 경제개발을 이룩한 것을 재평가한다”고 할 정도였다.

청와대 생활은 검소했다. 생신 날에도 수석비서관 이상만 초청해서 떡과 국수, 식혜로 잔치상을 차렸다. 연말 송년회도 수석비서관 이상과 기자단을 초청, 후르츠 펀치와 다과 정도로 조촐하게 진행했다. 수출이 1억 달러를 돌파했다는 것 등이 화제였다.

박 대통령이 막걸리를 좋아했다는 것은 다 알려져있다. 골프를 친 다음에는 막걸리에 사이다를 섞은 ‘막사’를 즐겼다. 그런데 당시 막걸리에 독극물이 들었는지 검사할 장비가 없어 경호실이 매번 고심해야했다.

미국 닉슨 정부 때 백악관과 상하원 등 대미 로비를 강화할 필요가 있었다. 박 대통령이 직접 나에게 작업을 지시했는데 질투심 많은 박종규 경호실장에게 밉보였다. 한 달간 충돌하다가 결국 하지 못했다.

71년 대한태권도협회 회장이 된 뒤 국기원을 건설하고 태권도를 국기(國技)로 삼아 세계화를 추진할 때였다. 태권도가 ‘국기’라는 말에 다른 종목의 심기가 불편했다. 특히 당시 최고의 인기를 누렸던 축구와 한국 고유의 스포츠인 씨름에서 “태권도가 어떻게 국기가 될 수 있느냐”고 반발했다. 그래서 박 대통령께 “태권도의 세계화를 위해 도와달라”고 요청했다. 박 대통령은 붓글씨로 ‘국기 태권도’라는 휘호를 써줬다. 그것을 복사해 국기원과 전국 태권도장에 걸어놓았더니 국기 시비가 사라졌다. 그것이 혼란했던 태권도계의 통합에 도움을 줬고, 세계화를 위한 활력의 계기가 됐다.

이런 일도 있었다. 박 대통령이 지방 순시를 갔다가 돌아올 때 고속도로에서 국기원이 보였다. 국기원만 덩그러니 서있는데 주변에 나무가 없어 언덕이 온통 새빨갰다. 식목일을 제정할 정도로 녹화사업에도 힘을 썼던 박 대통령이 “나무 좀 심으라”고 하자 곧 5000주의 나무가 국기원 주변에 심겨졌다.

74년 육영수 여사가 돌아가신 뒤 청와대를 떠난 내가 박 대통령을 마지막 본 것은 77년 시카고 세계태권도선수권에 다녀온 뒤 청와대를 찾았을 때다. 민족의 자랑인 태권도를 발전시킨 것에 대해 격려를 많이 해줬다. 그런데 머리 긴 것을 싫어한 박 대통령이 장발이었던 한 임원을 보더니 “머리 좀 깎고 다녀”하면서 나를 발로 차는 시늉을 했던 것을 기억한다.

박 대통령은 조국 근대화에 걸림돌이 되는 것을 제거한다는 생각에 무리를 한 것은 틀림없다. 그러나 식량자급, 수출강국, 중공업발전, 자주 국방을 위해 달리다가 흉탄에 영부인도 잃고 자신도 떠났다는 생각이다. 박 대통령은 강직하면서도 인정이 있는 분이었다. 객관적인 것은 역사가 평가할 몫이다.

김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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