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 행사 때 필자(右) 부부가 박 대통령(오른쪽에서 둘째)과 육영수 여사(左)에게 인사하고 있다.
청와대 생활은 검소했다. 생신 날에도 수석비서관 이상만 초청해서 떡과 국수, 식혜로 잔치상을 차렸다. 연말 송년회도 수석비서관 이상과 기자단을 초청, 후르츠 펀치와 다과 정도로 조촐하게 진행했다. 수출이 1억 달러를 돌파했다는 것 등이 화제였다.
박 대통령이 막걸리를 좋아했다는 것은 다 알려져있다. 골프를 친 다음에는 막걸리에 사이다를 섞은 ‘막사’를 즐겼다. 그런데 당시 막걸리에 독극물이 들었는지 검사할 장비가 없어 경호실이 매번 고심해야했다.
미국 닉슨 정부 때 백악관과 상하원 등 대미 로비를 강화할 필요가 있었다. 박 대통령이 직접 나에게 작업을 지시했는데 질투심 많은 박종규 경호실장에게 밉보였다. 한 달간 충돌하다가 결국 하지 못했다.
71년 대한태권도협회 회장이 된 뒤 국기원을 건설하고 태권도를 국기(國技)로 삼아 세계화를 추진할 때였다. 태권도가 ‘국기’라는 말에 다른 종목의 심기가 불편했다. 특히 당시 최고의 인기를 누렸던 축구와 한국 고유의 스포츠인 씨름에서 “태권도가 어떻게 국기가 될 수 있느냐”고 반발했다. 그래서 박 대통령께 “태권도의 세계화를 위해 도와달라”고 요청했다. 박 대통령은 붓글씨로 ‘국기 태권도’라는 휘호를 써줬다. 그것을 복사해 국기원과 전국 태권도장에 걸어놓았더니 국기 시비가 사라졌다. 그것이 혼란했던 태권도계의 통합에 도움을 줬고, 세계화를 위한 활력의 계기가 됐다.
이런 일도 있었다. 박 대통령이 지방 순시를 갔다가 돌아올 때 고속도로에서 국기원이 보였다. 국기원만 덩그러니 서있는데 주변에 나무가 없어 언덕이 온통 새빨갰다. 식목일을 제정할 정도로 녹화사업에도 힘을 썼던 박 대통령이 “나무 좀 심으라”고 하자 곧 5000주의 나무가 국기원 주변에 심겨졌다.
74년 육영수 여사가 돌아가신 뒤 청와대를 떠난 내가 박 대통령을 마지막 본 것은 77년 시카고 세계태권도선수권에 다녀온 뒤 청와대를 찾았을 때다. 민족의 자랑인 태권도를 발전시킨 것에 대해 격려를 많이 해줬다. 그런데 머리 긴 것을 싫어한 박 대통령이 장발이었던 한 임원을 보더니 “머리 좀 깎고 다녀”하면서 나를 발로 차는 시늉을 했던 것을 기억한다.
박 대통령은 조국 근대화에 걸림돌이 되는 것을 제거한다는 생각에 무리를 한 것은 틀림없다. 그러나 식량자급, 수출강국, 중공업발전, 자주 국방을 위해 달리다가 흉탄에 영부인도 잃고 자신도 떠났다는 생각이다. 박 대통령은 강직하면서도 인정이 있는 분이었다. 객관적인 것은 역사가 평가할 몫이다.
김운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