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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철.김기섭.이성호씨 신문조서 요약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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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검찰은 5월15일부터 6월3일까지 모두 8차례에

걸쳐 김현철씨에 대한 피의자 신문조서를

작성했으며 김기섭씨는 단 한차례만에 조사가 마무리됐던 것으로 밝혀졌다.다음은 김현철.김기섭.이성호씨의 신문조서를 요약한 것이다.

<김현철>

◇1회(5월15일)

-타인으로부터 금품을 받은 사실이 있나요.

“고등학교 선배님들인 김덕영.신영환.최승진씨로부터 받은 사실이 있고 이성호.조동만을 통해서도 받은 적이 있습니다.” -언제 얼마의 돈을 받았나요.“93년 4월부터 96년 1월까지 김덕영등 3인이 모아준 6천원만을 매월 받았습니다.다만 최승진의 우성그룹은 대기업이라 부담이 되어서 94년부터는 뺐습니다.” -김덕영으로부터 그외 다른 돈을 받았나요.“95년 4월 롯데호텔 객실에서 3억원을 받았습니다.당시 고교선배인 전세봉씨가 김덕영과 동행하여 왔습니다.”

-93년 12월부터 95년 12월까지 이성호로부터 매월 5천만원을 받은 이유는 무엇인가요.

“이성호가 저의 사회활동비 명목으로 준 것입니다.” -조동만을 어떻게 알게 됐고 어떤 내용의 돈을 받았나요.

“김기섭씨 소개로 92년 대선 이전에 만나 인사를 나눈 사이며 돈을 직접 받은 것은 아니고 김기섭을 통해 94년 6월부터 96년 12월까지 매월 5천만원을 받았습니다.”

-95년 8월 이성호에게 거액의 돈을 맡긴 사실이 있나요.

“정확히 기억나진 않지만 약 23억원정도인 것 같습니다.”

-돈의 출처는 어디인가요.“부끄럽지만 김덕영.조동만.이성호로부터 받은 돈이 쌓인 것입니다.”

-왜 이성호에게 맡겼나요.

“제3자들로부터 특별한 이유 없이 돈을 받아 거액이 됐기 때문에 그 돈을 세탁해 달라고 준 것입니다.” -맡긴 돈은 언제 돌려받았나요.

“95년 8월부터 12월까지 매월 5억원씩 현금으로 김기섭씨가 받아와 김원용교수에게 여론조사비용으로 지급했습니다.”

-타인으로부터 받은 돈을 관리하기 위해 사용한 차명계좌는 몇개나 되나요.

“10여개 이상입니다.”

-왜 차명계좌를 사용했나요.

“제 명의로 예금해 놓으면 사실상 제가 일정한 소득이 없어 자금출처가 문제가 되기 때문입니다.지금은 모두 정리해 하나도 없습니다.” -대동주택 곽인환사장을 알고 있나요.

“95년 봄 청와대 강상일 비서관이 저의 광화문사무실에 데리고 와 알게 됐습니다.” -곽인환과 강상일의 진술에 의하면 95년 6월 두 차례에 걸쳐 광화문 사무실에서 10억원을 주었다고 하는데 사실인가요.

“그들이 저를 정치적으로 매장하기 위해 허위진술한 것이 틀림없습니다.”

-수표추적 결과 대동주택에서 인출한 수표가 피의자가 차명으로 사용하던 계좌에 입금돼 있는데요.

“그 이유를 모르겠으니 다시 한번 자금추적 해주십시오.저도 답답할 뿐입니다.”

◇2회(5월16일)

-지금까지 진술은 모두 사실인가요.

“어젯밤 생각해보니 곽인환으로부터 돈을 받은 사실이 있습니다.너무 당황해 제대로 기억 못했습니다.”

-검찰이 예상과 달리 계좌추적까지 완료해 당혹스러웠다는 말인가요.

“그렇다고도 볼 수 있겠지요.”

-10억원을 어떻게 받았나요.

“95년 6월 강상일이 곽인환을 사무실로 데리고 와 1천만원권 수표 50매를 받았고 3~4일후 강상일이 혼자 와 곽인환이 주었다면서 현찰 5억원을 박스 2개에 넣어 제 승용차 트렁크에 실어 놓았다고 했습니다.” -강상일이 올 때 돈을 가져오기로 사전 약속이 돼 있었나요.

“아닙니다.강상일이 청와대 내부인사들에 대한 이야기를 하기 위해 저의 사무실에 가끔 들르는데 당연히 그러기 위해 오는 것으로 알았습니다.” -청와대 내부 이야기란 어떤 것인가요.

“청와대 내의 누구에게 어떤 일이 있었다든가 하는,잘 아는 사람들의 경조사등 근황을 알려준다는 이야기입니다.”

-두양 김덕영회장을 만난 경위는 어떻게 되나요.

“92년 9월 대선 몇달 전 처음 만났는데 고교선배인 이문석 당시 총무처장관께서 저를 도와주신다며 몇몇 동문선배와의 자리를 마련해 주셨습니다.

이 모임에는 이문석.전세봉 조달청차장.박건배 해태회장.신영환 신성회장.최승진 우성 부회장.김덕영이 있었습니다.이 모임을 계기로 이문석.박건배씨를 제외한 5인 모임이 생겨 매월 활동비를 지원받게 됐습니다.”

-5인 모임이 있었던 장소는 어디인가요.

“강남의 오죽헌.롯데호텔 일식및 중식당.코리아나호텔 일식당.역삼동 금모래.종로구 반쥴.안국동 송죽헌.신문로 난정.강남 지안룸살롱등입니다.”

-김덕영이 사람을 시켜'수신:김현철소장님,김덕영 배'라고 쓰여진 노란색 대봉투에'신한투금 소송 요약'등의 문건을 보냈는데 받아본 사실이 있나요.

“없습니다.”

-위 봉투에 보면'김영수 수석'이라고 쓰여 있고 봉투안에 들어있던 93년 3월23일 요약서의 위 여백에도'김영수 수석'이라고 쓰여 있는데 누구 글씨인가요.

“잘 모르겠습니다.”

-김덕영은 위 소송이 사실상 2심에서 패소했을 것인데 피의자가 도와줘 승소했다고 진술했는데 소송과 관련해 담당 재판부에 직접 또는 다른 사람을 통해 부탁한 사실이 있나요.

“전혀 없습니다.”

-공식적으로 직책을 갖고 있는 것도 아닌데 어째서 활동비가 그렇게 많이 필요했나요.

“여론조사에 돈이 많이 들어가고 또 정치에 뜻을 두고 있었으므로 비용이 많이 들었습니다.”

◇3회(5월17일.1차)

-이성호에게 실명전환을 부탁한 사실이 있나요.

“금융실명제 실시 이후인 93년 10월 50억원이 든 통장 2개를 주면서 부탁한 적이 있습니다.” -50억원을 차명으로 보관하다 과징금을 물 우려가 있어 이를 이성호에게 맡긴 것 아닌가요.

“당시 의무기간 10일정도를 앞두고 다소 촉박한 상황에서 부탁했던 것은 사실입니다.”

-왜 이성호에게 부탁했나요.

“실명신고때는 자금출처를 소명해야 하는데 이성호가 건설회사를 하고 있어 자금출처를 대기 쉬울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이후 이성호에게 매월 5천만원씩 받은 것은 무슨 명목인가요.“활동비 명목입니다.”

-이성호씨는 피의자가 매월 3천만원씩 지원해줄 것을 요청했다는데요.

“그런 사실이 없는 것으로 기억합니다.”

-이성호 진술에 의하면 93년 3월 피의자와 김기섭이 있는 자리에서 서초구 케이블TV사업을 해보려고 하는데 도와달라는 취지의 부탁을 했다고 하는데요.

“기억에 없지만 이성호가 그런 부탁을 했다고 한다면 그럴 수도 있다고 보입니다.”

-그후에도 이성호는 여러번 피의자를 만나 부탁했다는데 사실인가요.

“기억에 없지만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성호는 93년 12월 피의자 집에서 부부동반으로 식사하며 다시 한번 도와달라는 부탁을 했으며 피의자는 걱정하지 말라고 하면서 알아봐주겠다고 했다는데요.

“기억에 없지만 지나가는 말로 그런 대답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성호 진술에 의하면 94년 4월 자신의 회사가 공정거래위원회에서 억울하게 조사받고 있다며 도와달라고 부탁하고 95년 3월에도 양재동 만남의 광장 민자유치 사업자로 선정되도록 부탁했다는데요.“기억에 없지만 이성호 진술이 거짓이라고는 생각지 않습니다.”

◇4회(5월17일.2차)

-활동비 명목으로 받은 돈의 총액은 얼마나 되나요.“대략 60억원 내지 70억원 정도인데 수표와 현금이 반반쯤 됩니다.”

-거액인데도 현금으로 받은 이유는 무엇인가요.

“제가 받은 돈이 정상적인 노동의 대가는 아니고 남들이 알면 비난받을 수 있으며 세법상 자금출처를 댈 수 없는 돈이기 때문에 자금추적을 피해야 했습니다.”

-피의자가 자신의 명의로 계좌를 개설하지 않은 이유는 무엇인가요.

“일정한 수입이 없는 제가 많은 돈을 가지고 있으면 자금출처조사가 나올 것이고 잘못하면 엄청난 세금을 물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부동산이나 현금을 막론하고 증여를 받으면 증여세를 내야 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나요.

“경영학을 전공해서 잘 알고 있습니다.” -금융실명제 실시 사실을 미리 알고 있었나요.

“전혀 몰랐습니다.만약 미리 알았다면 다른 조치를 취했을 것입니다.”

◇5회(5월26일)

-이성호가 처남 사업자금으로 4억5천만원을 지원했다고 하는데요.

“구체적 액수는 모르고 나중에 처남이 사업을 정리하면서 전세보증금을 돌려줬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피의자가 대통령의 아들로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기 때문에 여러가지 사업상 보호를 받기 위해 이성호가 그렇게 했다고 생각한 적 없나요.

“없습니다.동생처럼 생각하고 부담없이 사귄 것입니다.”

◇6회(5월28일)

-피의자는 65억5천만원을 어디에 사용했나요.

“광화문사무실 운영비로 93년4월부터 97년1월까지 5억8천여만원,청사단운영비로 93년부터 96년4월까지 5억8천여만원,저와 제 처의 운전기사및 경호원 보조금으로 9천여만원,그외 생활비.용돈.경조사비등으로 2억4천만원을 사용했으며 나머지 50여억원은 모두 여론조사비로 사용했습니다.현재 남아 있는 돈은 전혀 없습니다.” -50억원이 넘는 돈을 모두 여론조사비로 썼다는 말인가요.

“여론조사를 93년부터 96년12월까지 거의 매달 해왔는데 평균 1회에 5천만원 정도 듭니다.

보궐선거나 지방선거.총선등 선거가 있을 때 뿐만 아니라 국가가 정책적으로 중요한 시점,

예컨대 금융실명제 실시 직후 같은 시기에 계속해 여론조사를 실시해 그 결과를 아버님께 보고드리고 의사결정에 참고하시도록 했습니다.

구체적으로 96년 총선 당시 김원용교수를 통해 여론조사를 하는데만 약 25억원이 지출됐습니다.” -월평균 지출액은 얼마나 되나요.

“사무실 운영비 1천4백만원.청사단 운영비 2천5백만원.여론조사비 5천만원.급여보조 2백40만원.생활비 3백만원.경조사비 1백만원.용돈 1백만원등으로 월 약1억원 정도를 지출했습니다.”

◇7회(5월30일)

-김기섭을 통해 매월 5천만원씩 받을 때 1백만원짜리 수표로 받다가 95년3월경부터는 왜 10만원짜리 수표로 받았나요.

“그때부터는 김기섭차장이 1백만원짜리도 불안했는지 10만원짜리 백화점 매장수표로 전달한 것입니다.” -김기섭이'헌 수표니까 안심하라'는 취지의 이야기를 했나요.

“그런 것 같습니다.”

◇8회(6월3일)

-이성호는 피의자가 실명전환을 부탁한 50억원의 자금출처에 대해 95년3월부터 12월까지 국세청 조사를 받으면서 어려움을 겪자 같은해 7월경 피의자 사무실을 찾아가 부탁했다는데 사실인가요.

“그런 사실이 없습니다.”

-그 내용을 김기섭도 알고 있는데 피의자가 이성호 부탁을 받고 김기섭에게 부탁한 것 아닌가요.

“그런 사실이 없는 것 같습니다.”

<김기섭>

(5월17일)

-이성호로부터 돈을 받은 적이 있나요.

“93년5월과 8월 두차례에 1억5천만원을 받았습니다.”

-돈을 받게 된 경위는 어떻습니까.

“이성호가 당시 유선방송사업권을 획득하기 위해 동분서주하는 과정에서 저에게 경위를 설명하며 공보처장관등 공무원들에게 영향력을 행사해 달라는 말을 여러차례 했는데 그 과정에서 돈을 줘 받게 된 것입니다.”

-오로지 사업자선정을 말하면서 돈을 줬나요.

“첫번째는'회식비에 보태쓰라',두번째는'식구옷값에 보태쓰라'는 말을 덧붙였습니다.”

-이성호가 김현철과 함께 있는 자리에서 사업자 선정을 부탁한 사실이 있나요.

“93년3월경 셋이 만난 자리에서 이성호가 공보처에서 최종결정하는 사업이니 도와달라는 말을 들은 사실이 있으며 그후에도 한두차례 더 들은 걸로 기억합니다.”

-왜 이성호가 피의자와 김현철에게 이런 부탁을 했다고 생각하나요.

“당시 저는 안기부 기조실장으로 재직하고 있어 이성호 입장에서는 공무원들에게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위치에 있다고 생각했을 것이고 김현철 역시 대통령의 아들로 저보다 훨씬 강력하게 그러한 영항력을 미칠 수 있는 위치에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이성호>

-진술인은 김현철씨로부터 돈을 받아 관리한 사실이 있나요.

“실명제 실시 이후인 93년 10월초 김현철씨가 예금통장 2개를 주면서 실명전환을 부탁했습니다.30억원.20억원이 예금된 통장과 도장을 받아 관리했습니다.”

-어떤 방법으로 실명전환을 하여 주었나요.

“대호건설 경리담당 이사를 통해 저의 부친 돈이라고 하였습니다.”

-실명전환한 돈을 어떻게 관리했나요.

“실명전환한 후 그해 11월경 50억원을 인출하여 아버지 이건(李鍵) 명의로 50억원을 입금시켜 대신증권에 계좌를 개설하여 주식에 약 30억원,채권.CD등에 20억원 정도를 투자하였다가 94년초부터 6~7개월에 걸쳐 현금으로 인출하여 집에 보관하고 있다가 96년 1월경 돌려주었습니다.” -50억원 외에 별도로 김현철씨에게 준 돈이 있나요.

“93년 12월부터 95년 12월까지 25회에 걸쳐 5천만원씩 11억5천만원을 주었습니다.” -김현철씨에게 도움을 주고 어떤 부탁을 한 사실이 있는가요.

“첫째로 93년 봄 한국전력의 발전소 설비공사를 대호건설이 하도급받도록 부탁했으나 이뤄지지 않았고,둘째로 93년 유선방송사업자 선정과 관련하여 부탁을 한 사실이 있습니다.

셋째로 94년 대호건설이 공정거래위에서 하도급 비리관계로 조사받을 때 부탁을 한 적이 있습니다.

넷째,95년 3월 양재동 만남의 광장 민자유치 사업자로 선정될 수 있도록 부탁했으나 탈락한 적이 있습니다.

다섯째,95년 8월 서울지검에서 나창주의원 관계로 대호건설을 수색,관련장부를 압수할 때

청탁했으나 제가 알기로는 별다른 혐의가 발견되지 않아 아무런 문제가 없이 지나간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여섯째,95년 11월경 제 부친이 盧대통령 비자금 사건으로 문제가 되어 부탁했으나 결국 불구속입건되어 재판을 받았으며 일곱번째 장인어른(周永福 전국방장관)이

95년 11월경 5.18사건과 관련,고초를 겪기에 선처를 부탁한 사실이 있으나 현재 구속수감되었습니다.

김현철씨에게 부탁을 한 사항은 여러가지 있었으나 정작 신경을 써서 적극적으로 개입해준 것은 별로 없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진술인이 그 이외에 김현철씨에게 어떤 도움을 주었나요.

“95년 김현철씨가 처남이 사업을 시작하는데 도와주라고 하여 사무실 임대보증금 3억3천5백만원등 4억5천만원 정도를 지원한 사실이 있으며(96년 12월경 사무실 임대보증금은 돌려받았음) 김현철씨와 4,5차례 해외여행을 다니면서 비행기 요금등 경비를 제가 부담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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